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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지원 Nov 16. 2020

영화<하울의 움직이는 성>, 저주를 푸는 열쇠

영화에서 건져 올린 질문들 17

| 저주를 푸는 열쇠


하울의 움직이는 성

감독 : 미야자키 하야오

출연 : 바이쇼 치에코(소피), 기무라 타쿠야(하울)

개봉 : 2004. 12. 23 / 2014. 12. 4 재개봉


<하울의 움직이는 성>의 주인공 소피는 아버지가 물려주신 모자 가게에서 일한다. 동생 레티를 만나고 돌아온 날, 영문도 모른 채 마녀의 저주에 걸린다. 열여덟 살 소녀 소피는 갑자기 90세 노인의 모습이 되어 버린다. '사람에게는 저주에 대해 말할 수 없으니' 하울을 찾아가 보라는 마녀의 말을 듣고 황야로 향한다. 길을 걷던 중 마법에 걸린 허수아비를 발견한다. 소피가 마음에 들었는지 허수아비가 거대한 움직이는 성을 발견해 데려온다. 얼결에 성 안으로 들어오게 된 소피는 말하는 불 카루시파의 제안을 듣게된다. 자신은 하울과 계약으로 묶여있는데 이 계약의 비밀을 찾아주면 소피에게 걸린 저주를 풀어주겠다고 한다. 소피는 ‘움직이는 성’의 청소부가 되어 머물게 되는데...


소피는 카루시파와 하울의 비밀을 찾고 자신의 저주도 풀 수 있을까?


 <하울의 움직이는 성>의 등장인물은 꽤 많다.


 열여덟 살 답지 않게 현실에 찌든 듯한 소녀 소피, 강력한 마법사이지만 겁이 많은 하울, 빛나는 유성이었지만 하울과 계약으로 묶여 성을 움직이는 일만 하는 카루시파, 무서운 마법사지만 사랑을 꿈꾸며 하울의 심장을 원하는 황야의 마녀, 어린아이지만 늘 노인으로 변장하는 마루쿠루, 하울의 마법학교 스승이자 왕국의 마법사 설리번, 언니의 장래를 걱정하는 똑 부러지는 이복동생 레티, 뭣이 중한지 모르는 듯한 국왕, 숨 쉬는 것이 힘들어 보이는 노견 , 마법에 걸린 이웃나라 왕자 허수아비, 잘생긴 하울과 가십에 관심이 많은 모자 가게의 직원들, 잠깐 나오는 무례한 군인 두 명, 자신의 의지 없이 명령에만 움직이는 고무 인간들, 더 큰 힘을 원해서 괴물이 되어버린 하급 마법사들


주요 등장인물 외에 스쳐지나는 단역, 조연까지 소개하는 이유가 있다. 감독은 단 한 번 출연하는 이의 입을 통해서도 강력한 메시지를 전하기도 한다. 그리고 내 이슈와 맞아떨어지는 대사는 꼭 주인공의 입을 통해서만 듣는 것이 아니다. 때로는 생물이 아닌, 소품을 통해서도 나와 연결된다. 등장인물 소개에 공을 들인 이유다.


 <하울의 움직이는 성>을 보고 나면 여러 감정과 생각이 마음속을 오간다. 여러 은유들이 튀어 오른다. 성, 저주, 청소, 가족, 전쟁, 괴물 등. 보이는 대로 보아도 그만이지만 그 속에 담긴 은유를 찾아내어 곰곰이 머물러보고 감독의 의도를 생각해 보면 재미가 배가 된다. 좀 더 꼭꼭 씹어 영양분을 최대로 섭취하는 기분이랄까? 나의 시선으로 영화를 해석하고 그 해석을 통해 다시 나를 탐색하는 과정이 참 만족스럽다. '나는 이때 이런 것을 느끼는구나, 이런 생각을 하는구나' 감정과 생각을 따라가다 보면 현재의 '나'를 만나게 된다.


 소피는 황야의 마법사로부터 '저주'에 걸린 ‘소녀 할머니’이다. 그래서 영화의 장면마다, 분위기와 소피의 마음에 따라 외모가 젊어지기도 하고 늙어지기도 하는 등 끊임없이 변한다. 애니메이터들이 그 이유를 묻자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인간은 원래 마음가짐에 따라 90살의 할머니가 되기도 하고 50세의 아줌마가 되기도 한다.”라고 답변한다.



일단 영화를 보게 되면 모든 관객들이 그녀를 사랑하게 될 거예요.
_미야자키 하아오 감독



 하울은 ‘움직이는’ ‘성’에 살고 있다. 이름도 여러 개다. 펜드라곤, 젠킨스, 하울, 그리고 자유롭게 사는 데 필요한 만큼의 이름이 더 있겠지. 카루시파의 힘으로 움직이는 하울의 성은 그 자체로 사람의 얼굴 같기도 하고 심장 같기도 하다. 소피가 오기 전의 성 내부는 잡동사니 투성이다. 물건들이 여기저기 쌓여있고 먼지와 재가 수북하다. 이렇게도 저렇게도 결정하지 못하고 방황하며 자유를 갈망하지만 동시에 안전함을 원하는 하울의 마음속 같다. 때로는 소피에게 청소 좀 그만하라며 마치 사춘기 아들처럼 구는 하울이지만, 소피가 온 후 성도 하울의 마음도 조금씩 정리가 되어간다. 그리고 혈육이 아닌 이들이 모여 그렇게 조금씩 가족이 되어간다.


 소피는 하울을 위해 자신의 진짜 목소리를 낸다. 왕궁의 마법사 설리번의 앞에서 하울을 변호하는 소피의 모습이 점점 젊어지며 원래 나이로 돌아간다. 스스로를 위해서는 목소리를 내는 것이 두려웠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는 용기가 생긴다. 마법을 푸는 열쇠 하나가 던져졌다. 소피가 마음이 시키는 대로 용기를 내고 의지를 드러내는 순간 소피의 마법이 일시적으로 풀린다. 영화 초반에 소피가 짓궂고 무례한 군인 두 명을 만나는 장면, 골목 벽에 붙어있는 포스터에 ‘용기와 의지라는 글자가 적혀있다. 감독은 숨은 그림 찾기처럼 우리에게 저주를 푸는 열쇠를 미리 보여주었다. 모두가 볼 수 있는 벽에 붙어 있는 그것을 알아보는 사람과 보고도 그냥 지나치는 사람이 있을 뿐이다.


 우리에게 닥친 많은 고난과 고비들도 마찬가지인지 모른다. 해결할 수 있는 열쇠가 인생의 어떤 순간순간마다 이미 놓여있다. 그것이 열쇠라는 것을 알아보는 눈과 열쇠를 가지고 문을 여는 용기와 의지가 필요하다.


 고무 인간을 피해 하울과 소피는 하늘로 날아오른다. 놀라는 소피에게 하울이 말한다.

그렇지, 잘하고 있어.
그대로 계속 걸어.

_하울 <하울의 움직이는 성>    

소피에게 필요했던 응원의 말이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다. 계속 걷는 것. 하울처럼 말해주는 이가 없다면 나 스스로 토닥이고 응원해야 한다. 잘하고 있다고, 계속 걸으라고.

 소피와 하울은 각자의 저주를 푸는 실마리를 보지 못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향한 눈으로는 열쇠를 발견한다. 하울은 소피를 지키고자 하는 마음에서 우러난 책임감을 장착하게 되고 소피는 불확실한 미래를 향해 용기 내어 한 걸음 나아가는 의지를 새긴다.


하울, 네가 괴물이라도, 어떤 모습이라도 너를 사랑해.

_소피 <하울의 움직이는 성>


 이 말은 소피가 스스로에게 하는 말과도 같다. 스스로를 돌보지 않았던 소피는 하울을 만나 그에게 하는 말들이 곧 자신에게 해야 하는 말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어떤 모습이어도, 어떤 순간이라도 나를 사랑한다고 나에게 말해줘야 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살리기 위해 소피는 자신을 다잡는다. 소피로 인해 하울은 지키고 싶은 것(소피)이 생겼다.  불완전한 둘이 만나 하나가 된다.

 카루시파와 하울의 계약, 그리고 소피의 저주가 풀리고 성은 날아오른다. 싱그러운 초록의 식물들이 자라는 성은 그 자체로 살아있는 듯하다. 계약으로 묶여있던 이전의 모습은 단지 ‘움직이는’ 성이었다면 이제는 ‘살아 숨 쉬는’ 성이다. 굴뚝도 더 이상 검은 연기를 내뿜지 않는다. 건강한 모습이다. 마루쿠루도 더 이상 노인으로 변장하지 않고 아이처럼 뛰어논다. 욕망에 사로잡혀 정작 중요한 것을 잃었던 사람들이 본질을 회복한다. 현실에 안주하고자 했던 소피의 마음도 결국은 욕망이다. 하울, 소피, 마루쿠루, 성 모두 본질을 회복한 모습이다. 성의 외관에 얼굴같이 보이던 여러 방들도 정면을 바라보는 얼굴 하나만 남았다. 이제는 여러 얼굴이 필요 없어진 모양이다. 하울도 더 이상 하울 외의 다른 이름이 필요하지 않아 보인다. 진짜 자유함은 이름이나 조건에서 오는 것이 아니니까!




영화 <하울의 움직이는 성>에서 건져 올린 질문들     


* 나는 누구로 살고 있나?

* 나에게 '지키다'는 어떤 의미인가?

* 나에게 늙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 내가 지키고 싶은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

* 나에게 '자유'는 어떤 의미인가?

* 나에게 '청소'는 어떤 의미인가?

* 나를 자유하게 하는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

* 내 안에서 충돌하는 것이 있다면 무엇과 무엇인가?

* 나는 어떤 두려움을 가지고 있나?

* 내가 간절히 원하는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

* 내 마음에는 어떤 문들이 있나? 그중에서 내가 열고 싶은 문은 무엇인가? 문을 열었을 때 무엇을 보고 싶은가?

* 나에게 '저주'가 걸려 있다면 그것을 푸는 열쇠는 무엇인가?

* 나는 어떤 '용기와 의지'가 필요한가?

* 원해서가 아니라 책임감으로 하고 있는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

* 나는 어디를 향해 걷고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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