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지원 Nov 12. 2020

영화<나, 다니엘 블레이크>, 코코넛과 상어

영화에서 건져 올린 질문들 16

| 코코넛과 상어


나, 다니엘 블레이크

감독 : 켄 로치

출연 : 데이브 존스(다니엘), 헤일리 스콰이어(케이티)

개봉 : 2016. 12. 08


 평생을 성실하게 동료들에게 존경받는 목수로 살아온 다니엘 블레이크, 그는 지병인 심장병이 악화되어 일을 더 이상 계속할 수 없는 상황이다. 주치의의 권고로 당분간 일을 쉬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위험한 상황이 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실업급여를 받기 위해서 관공서에 찾아간다. 하지만 복잡하고 관료적인 절차 때문에 번번이 좌절한다. 전화로 신청하려니 통화가 연결되기 까지는 하루가 걸리고 담당자는 기계처럼 같은 소리만 반복한다. 디지털 난독증이라는 사람에게 절차를 안내하며 번호는 홈페이지에 나와 있다고한다. 무엇을 위한 원칙인지, 본질을 잃어버린 듯한 관료들의 태도에 심장병이 없는 나도 가슴이 답답하다. 한숨이 나온다.     


나는 연필 세대 사람이오.
그런 사람들 배려는 안 하나? _다니엘

난독증 대상 특별 상담 번호는 있어요. _관공서 직원

몇 번이오? 나는 컴퓨터 난독증인데. _다니엘

인터넷에 나와요. _관공서 직원

<나, 다니엘 블레이크>     


 나는 난임치료를 위해서 대형병원에 다녔던 적이 있다. 수많은 환자들과 함께 있어도 나는 나인데, 나를 차트 속 환자 번호, 존재가 아닌 대상으로만 대하는 병원 관계자들의 태도로 인해 불쾌했던 기억이 있다. 병원에 오는 사람들의 마음은 평상시 보다 위축되고 불안한 상태인 경우가 많다. 안 그래도 내가 문제 있는 인간인 것 같은 기분을 느끼고 있는 건강하지 않은 상태다. 힘든 마음으로 인해 더 작아진다. 내 돈 내고 내가 치료받으려는 데도 그렇다. 하물며 정부 지원금을 받으려고 신청하는 경우에는 어떨까? 정부 지원금은 국민으로서 당연히 받을 수 있는 권리이다. 하지만 세금을 낼 때와 지원을 받을 때의 마음이 같지는 않다. 도움을 줄 때보다 도움을 받을 때 위축된다.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는 영국 사회의 부조리한 복지제도와 관료주의를 겨냥한다. 약자와 소외계층을 위한 안전망이 되어야 하는, 그들에게 숨통을 튀우는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이 복지정책이다. 하지만 영국에서는 이미 인간미 없는, 운영자 위주의 효율적인 시스템으로 전락한 지 오래다. 인간미가 남아있는 직원을 향해 ‘선례를 만들지 말라’며 도움을 건네는 손길마저 꺾어 버린다. 공무원은 민원을 처리하는 중간 행정업무를 보는 것이지 자신의 돈을 내어 주는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영화 속 관료의 태도는 매우 고압적이고 무례하다. 복지정책의 혜택을 받으러 오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발 밑에 있는 냥 내려다 보는 자세가 실제가 아닌 영화 속 극적인 효과를 위한 장치이기만을 바랄 뿐이다.     


 다니엘은 자신의 문제 만으로도 힘든 와중에 이웃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는다. 너무 어린 나이에 두 아이의 엄마가 되면서 학교를 다 다니지 못하고 생활전선에 뛰어든 케이티를 그가 도울 수 있는 모든 것으로 돕는다. 목수인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으로 집 안 곳곳을 손본다. 겨울임에도 돈이 없어서 전기 신청을 하지 않은 케이티의 손에 자신이 가지고 있는 돈을 쥐어준다.   

  

 케이티는 아이들만 저녁을 해서 먹이고 자신은 사과 한 쪽으로 배를 채운다. 며칠 동안을 그렇게 끼니를 때우고 다니엘과 함께 아이들을 데리고 구호품 지원소에 간다. 지원소에는 식료품은 있지만 여성을 위한 생필품, 생리대는 없다. 결국 다음 날 케이티는 생리대를 마트에서 훔친다. 담당자가 잠시 자리를 비운 틈에 그곳에서 지원받은 토마토 통조림을 급하게 따서 허겁지겁 손에 따라 먹다가 오열한다.      


너무 배가 고파서 그랬어요. 죄송해요. 죄송해요. _케이티
     
케이티, 자네 잘못이 아니야. 자네 잘못이 아니야. _다니엘

<나, 다니엘 블레이크>  


 다니엘이 무릎을 꿇고 케이티에게 눈을 맞추며 말한다. 삶이 고달픈 케이티에게 우리에게도 잠시 기대어 쉴 바람이 필요하다며 그녀의 바람이 되어 주고자 한다. 정작 자신은 실업급여 신청이 반려되어 집 안에 있는 대부분의 물건들을 팔아서 생활비를 마련하고 있으면서도 인간미를 잃지 않는다. 심장을 제외하고 다른 곳은 이상이 없기에 매뉴얼대로라면 다니엘은 ‘노동 가능‘으로 분류되어 구직활동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실업급여가 나오지 않는다. ’제대로‘는 구직활동을 하고 있다는 증거물을 제출하는 것이다. 다니엘의 구직활동은 증거자료 미비로 채택되지 않는다. 복지국 직원은 ’매뉴얼대로‘ ’기계적으로‘ 다른 선택지를 제안하지만 다니엘에게 근본적으로 필요한 것이 아니다. 다니엘은 심장병이 실업 이유로 인정되어 일정기간 실업급여를 받으며 쉬어야 한다. 심장병으로 언제 쓰러질지 모르는 다니엘에게 실업급여는 생명줄이다.     

“더 팔 것 없어요?”     

 다니엘의 집에서 가구 대부분을 사가는 중고품 매입상의 말이 비수 같다. <레 미제라블>에서 판틴의 이를 모두 뽑아서 사 가는 뒷골목의 장사치가 떠오른다. 팔 것이 없는 케이티는 아이들을 먹이기 위해 결국 몸을 판다. 물고기 모양의 모빌하나만 덩그러니 남은 다니엘의 집은 물이 모두 빠져나간 메마른 연못 같다. 영국의 습도 높은 겨울, 난방이 안되는 다니엘의 집은 사람의 온기마저 느껴지지 않는다.   

   

코코넛이 죽이는 사람이 많을까, 상어가 죽이는 사람이 많을까?   

 다니엘이 케이티의 아들 딜런에게 넌센스 퀴즈처럼 건네는 질문이다. 정답은 코코넛이다. 위협을 주는 상어보다 인간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 예상하는 코코넛에 맞아 죽는 사람의 수가 훨씬 많다는 것은 의미심장한 말이다. 코코넛은 정부의 복지 정책을 빗댄 단어라고 생각한다. 노동의 쓸모가 없는 인간은 죽어 없어지게 하는 것이 복지 정책의 실제 목적인가 싶을 정도로 다니엘과 케이티 머리 위의 코코넛은 위협적이다.     


영화를 보면서 그리고 보고 난 후에 많은 생각이 스친다. 

    

나의 이웃은 누구인지, 나는 누구의 이웃일지.

내가 누리고 있는 안락함에 익숙해져서 보고도 깨닫지 못하는 것은 없는지.

내가 원하는 인간적 존중은 무엇인지.

나에게 ‘인간답게 산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지.

시스템에 사각지대가 없을 수는 없는지

정책과 제도가 인간성을 지키는 사회일 수는 없는 것인지.  

    

나는 의뢰인도 고객도 사용자도 아닙니다.
나는 게으름뱅이도 사기꾼도 거지도 도둑도 아닙니다.
나는 보험 번호 숫자도 화면 속 점도 아닙니다.
나는 묵묵히 책임을 다해 떳떳하게 살았습니다.
난 굽실대지 않았고 이웃이 어려우면 그들을 도왔습니다.
자선을 구걸하거나 기대지도 않았습니다.
나는 다니엘 블레이크, 개가 아니라 인간입니다.
이에 나는 내 권리를 요구합니다.
인간적 존중을 요구합니다.
나, 다니엘 블레이크는 한 사람의 시민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감사합니다.

_ 다니엘 <나, 다니엘 블레이크>     


 다니엘은 단지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인간적 존중을 받고 싶었을 뿐이다.    

 

“'가난은 너의 잘못이다'라고 말하는 우리의 잔인함이 문제이다.“라는 켄 로치 감독의 말이 가슴을 흔든다. 시스템의 사각지대를 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에 앞서 우리 눈과 마음의 사각지대는 없는지 먼저 살펴야겠다.

     

켄 로치 감독은 영화인생 50여 년의 시간 동안 한결같이 영국을 포함한 전 세계의 사회적 약자, 소외 계층, 이주민, 노동자 들에 대한 이야기를 묵직하게 필름에 담아냈다.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에서 건져 올린 질문들     


* 내가 생각하는 인간성의 본질은 무엇인가?

* 내가 생각하는 ‘인간성이 지켜지는 사회’는 어떤 모습인가?

* ‘인간성이 지켜지는 사회’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실천은 무엇일까?

* 나는 언제 존중 받는다고 느끼나?

* 나는 존중을 어떤 방식으로 표현하나?

* 나의 이웃은 누구인가?

* 나는 누구에게 이웃인가?

* 나에게는 누가 ‘영웅’인가?

* 인간중심적인 시스템이란 어떤 것일까?

* 내가 생각하는 ‘인간 답게 산다는 것’은?

* 내가 생각하는 ‘복지’란 어떤 것인가?

* 분노는 어떻게 우리에게 힘이 되나?



매거진의 이전글 영화 <코코>, 기억해줘 Remember Me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