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색 볼펜으로 플래너에 날짜를 쓰고 있었다. 일요일은 빨간색으로 토요일은 파란색으로 평일은 검은색으로 쓰려고 마음먹었다. 일요일을 다 쓰고 토요일을 쓰는데 파란색이 아니라 검은색이다. 이면지에 동그라미를 그리면서 색을 확인하는데 검은색이 맞다.
에잇! 불량이네!
혹시 옆에 있는 검은색이랑 볼펜 심이 바뀌었나? 검은색 볼펜으로 바로 옆에 나선을 둥글게 둥글게 그리는데 방금 확인했던, 불량이라고 생각한 파란 심이 이제야 파란색으로 보인다. 세상에! 사람은 시력에 많이 의존하지만 사실은 많은 부분 속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검은색이라고 확신했는데 진짜 검은색과 나란히 비교하니 그제야 파란색으로 보이는 현상이 비단 필기할 때만 있는 일은 아닐 것이다. 적어도 나에게는.
사람을 이해하려고 배우는 여러 성격유형 도구들을 알면 알수록 내가 정말 아는 게 맞는지 의문이 들기도 한다. '이 사람은 이렇고, 이러니까 이럴 거야'라는 거의 확신에 가까운 이런 생각이 수없이 오답인 것을 확인하며, 더 이상 나는 사람을 잘 '본다'는 말을 할 수가 없게 되었다. '촉'이 뛰어나다는 말도 이제는 섣부르게 말하지 못하겠다. 사람은 우주만큼 넓고 깊어서 아무리 들여다보아도 한눈에 다 볼 수가 없다. 나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내 생각이나 감정을 필터링 없이 읽을 수 있는 나 자신에 대해서도 확신할 수가 없다. 내가 어떤 사람이라고.
파란색이 검은색 옆에서 파란색임을 알 수 있듯이 우리는 어쩌면 내 곁에 있는 사람들 덕분에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가는지도 모르겠다. 비교와는 다르다. 사과 혼자만 있을 때보다 사과, 배, 바나나, 딸기가 한 자리에 같이 있을 때 각자의 다름이 더욱 드러난다. 혼자만의 시간에 '나는 누구인가'를 고민하는 것도 분명 중요하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나라는 우주를 다 알 수 없다. 내가 A라는 사람과 있을 때, B와 있을 때, C와 있을 때, 2~3명 소그룹에 있을 때, 다수와 함께 있을 때 등 여러 상황에서 다양한 '나'를 발견한다. 어쩌면 나다움을 알게 되는 것은 타인과의 화학작용을 통해서가 아닐까? 나는 한 사람을 알아가는 일이 미확인 물질을 알아가는 과정과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여러 시약에 반응하는 것을 확인하며 다양한 데이터를 모으는 면에서 그렇다. 사람을 아는 것이 훨씬 더 복잡하고 변수가 많기는 하지만.
12월 계획을 쭉 훑어보다가 삼색 볼펜에서 얻어낸 오늘의 성찰이다.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다. 감각은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늘 진실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내일은 어떤 '나'를 누구를 통해 발견할지 기대된다. 어쩌면 세상은 각자의 '나'라는 사람을 알게 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