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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지원 Dec 20. 2020

영화 <아더 크리스마스>,  일이란 무엇인가

영화에서 건져 올린 질문들 20

| 일이란 무엇인가


아더 크리스마스

감독 : 사라 스미스

출연 : 빌 나이(산타할아버지 목소리), 제임스 맥어보이(아더 목소리), 휴 로리(스티브 목소리)

개봉 : 2011. 11. 25


  산타는 한 명인데 어떻게 하룻밤 사이에 20억 개의 선물을 배달하는 걸까?


  어린 시절, 산타의 존재를 믿을 당시(어쩌면 지금도?) 이런 의문을 가져본 적이 있다면 애니메이션 <아더 크리스마스>가 매우 반가울 것이다. 누구도 알지 못했던 ‘산타의 선물 배달 비법’이 공개되기 때문이다. 눈 덮인 북극, 흰색 외에는 보이지 않는 그곳에는 산타의 비밀 기지가 있다. 거대한 빙산 아래 1,000년 넘도록 이어져 온 산타 나라, 산타 왕국! 산타 제국! 어쩌면 산타 회사? 현 산타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때부터 내려오는 직업 ‘산타’의 임무는 일 년 중 하루, 크리스마스이브 밤 사이에 20억 개의 선물을 전 세계의 아이들에게 배달하는 것. 그런데 사고가 발생한다. 영국에 있는 작은 마을에 사는 그웬에게 갈 분홍 자전거가 실수로 실리지 않았다. 그웬은 이번 크리스마스에 선물을 받을 수 있을까?



  산타의 가족은 3대가 산다. 은퇴한 산타인 왕산타 할배, 현 산타 부부, 아들 둘, 그리고 은퇴한 사슴들. 이 평화로워 보이는 산타 가족을 보면 왜인지 모르게 권력 암투 비슷한 느낌이 언뜻 드러난다.  왕산타 할배와 스티브는 아더가 준비한 보드게임의 ‘산타’ 피규어를 서로 갖으려고 옥신각신 한다. 은퇴한 왕산타 할배는 은퇴한 것이 불만이다. 아직 현역이고 싶은 마음이 한가득이다. 뒷방 늙은이 취급을 당하고 있다고 ‘생각’한다.(그웬에게 선물을 주러 가며 "봐라! 진짜 산타가 누군지!"라고 외친다.) 산타의 큰 아들인 스티브는 다음 대 산타가 자신이라고 확신하며 어서 빨리 산타 자리에 ‘오르고’ 싶다.



  산타는 전 세계 선물 미션을 완료(했다고 생각)하고 가족 식사 자리에서 건배를 하며 이렇게 말한다. "나를 위해! 그리고 더 멋진 내년을 위해!" 스티브는 올해 미션을 마친 아버지가 산타 자리를 물려주기를 기대하고 인사말을 준비했는데, 내년을 기대한다며 말로 마치는 아버지에게 실망한다. 대기업 후계자의 느낌이다. 아버지 자리를 어서 차지하고 싶어 하는 딱 그 마음이다. 마치 *양위를 바라는 세자의 느낌이랄까? 막내아들인 아더는 좀 이상하다. 그가 진짜로 이상한 것이 아니라 권력을 향한 이들과는 다른 세상에 사는, ‘혼자만 어린 왕자’인 듯한 느낌이라서 그렇다. 아더는 다음 대 산타가 당연히 능력 있는 형 스티브려니 생각하고 있다. 그는 산타 자리에 누가 앉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저 전 세계 어린이들이 크리스마스에 행복하기를 바란다.

*양위 : 군주(군왕)가 아직 살아 있으면서 다른 사람에게 군주의 지위를 물려주는 일을 가리킨다. 보통 같은 왕조에서 아버지가 아들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자신은 상왕(上王, 또는 상황(上皇))으로 물러나 있는 것을 말한다.(출처 위키백과)



  전 세계에 선물을 배달하면 ‘산타 할아버지’가 스포트라이트를 받는다. 하지만 하나의 선물을 전달하기 위해서 공들이는 손길은 기획부터 포장, 배달까지 어마어마하다. 이 모든 업무는 160만 명의 요정 군단이 함께하기에 가능하다. 하루 만에 전 세계 어린이들에게 선물을 배달하기 위해서는 한 집당 정확히 18.14초 머물 수 있다. 요정 군단이 세팅해 놓으면 산타는 선물을 놓고 이동한다. 정말 어마어마하게 바쁜 크리스마스이브를 보낸다. 너무 바쁘다고, 힘들다고, 이번 크리스마스 선물은 20억 개나 됐다고, 점점 힘에 부친다고 투정하는 산타는 ‘힘들면 은퇴하라’는 부인의 부드러운 말을 받아들일 수 없다. "그럼 내 존재는?"이라고 묻는 그. 자신이 빛나는 산타가 아닌 모습은 인정할 수가 없다. "그럼 나는 크리스마스에 아버지랑 텔레비전으로 산타가 된 스티브나 구경하라고?"라고 묻는 그의 말에서는 두려움마저 느껴진다. 산타는 '산타'라는 직업과 사회적 위치로 자신의 존재가치를 증명하려고 한다. 산타 자리를 내놓고 물러나면 가치 없는 사람이 될 것만 같아 겁이 난다.


지금껏 이런 허당(?)은 없었다!!!



  <아더 크리스마스>의 주인공이 누구일까? 제목에 있듯이 ‘아더’다. 산타의 막내아들인 아더는 우리 상상 속에 있는 푸근하고 흰 수염이 복슬복슬 있는 그런 외모가 아니다.(아더의 외모가 영화 말미에 짠~! 하고 바뀌는 순간이 있다. 귀여운 아이디어~!) 마른 체격에 칠칠치 못하고 고소공포증도 있다.(산타가 고소공포증이라니!) 아더가 중앙 센터에 나타나면 뭔가 크고 작은 사건사고가 생기기 때문에 아더의 형 스티브와 내근직 요정들은 아더를 빨리 들여보내려고 한다. 실없는 듯 눈치 없는 척 늘 웃지만 아더도 알고 있다. 자신은 집안의 걱정거리이며 산타가 되기에 모자란 면이 많다는 것을.



  아더는 홀로 ‘산타 사서함’ 부서에서 일하며 전 세계에서 어린이들이 산타에게 보내는 편지를 받아서 읽고 답장을 한다. 어린 시절 ‘산타 할아버지에게’로 시작하는 편지를 써본 이라면 그 마음이 얼마나 간절한지 알 수 있겠지. 아더는 그 마음 하나하나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다.(하지만 산타는 우편실에서 일하는 아더에게 "안됐구나.."라고 말한다.) 그 누구보다 아버지인 현 ‘산타 할아버지’를 자랑스러워한다. 그리고 크리스마스를 진심으로 사랑한다. 아더가 일하는 ‘산타 사서함’에는 엄청난 양의 편지가 쌓여있다. 그리고 책장에는 ‘크리스마스 선물 목록 작성법’, ‘크리스마스 연감’ 등이 꽂혀있다. 벽에는 아이들이 그려서 보내온 그림들이 붙어있다. 아더는 이 모든 것들이 하나라도 없어질까 애지중지하며 소중히 다룬다. 아더에게는 전 세계의 모든 아이들이 ‘아이들’로 퉁쳐지는 것이 아니라 한 명 한 명 '존재'로서 귀하다. 그들이 산타 할아버지의 선물을 받고 기뻐하는 모습을 상상하면 아더는 더 이상 바랄 게 없다. 그 자체로 보상받은 기분이다. 이번 크리스마스이브에도 선물을 받고 행복해할 아이들을 생각하며 아더는 완벽하게 행복하다.


  사건이 생기기 전까지는. 사건이라기에는 아무도 모르고 지나갈 뻔한, 어쩌면 사소한, 20억 분의 1에 해당하는 미미할 수도 있는 일. 0에 가까운 수. 20억 개의 선물 중 하나가 실수로 누락된다. 전 세계 어린이 20억 명 중 한 명은 이번 크리스마스에 선물을 못 받는다. 산타의 머릿속이 빨라진다. ‘20억 개 중 하나면 미션 완료라고 해도 되지 않을까?’라는 마음과 ‘이 날만을 기다린 누군가에게는 어마어마한 재난 같은 사건일지도 몰라.’라는 마음이 충돌한다. 결국 산타는 "어쩌겠냐, 불가능한 것을.."라고 말하며 잠자리에 든다. 하지만 아더는 한 아이가 크리스마스 선물을 못 받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가 없다. 그때 왕 산타 할배가 나타나 말한다. "불가능하다고? 한때는 여자에게 글 가르치는 것도 불가능하댔지." 결국 아더는 왕 산타 할배, 포장 천재 요정 브라이오니와 함께 누락된 선물의 주인공인 그웬에게 배달을 하기로 한다. (사실 브라이오니는 처음부터 함께 출발한 것은 아니고, 포장이 살짝 뜯어진 것을 볼 수가 없어서 몰래 썰매에 탑승했다.)


  아더는 세상의 모든 것이 무섭다. 고소공포증도 있다. 하늘을 나는 것은 꿈도 못 꿀 일이다. 그래서 그는 거대한 북극 기지 중, 작은방 MAIL AGENT 3776이라고 적힌 안전(하다고 생각하는)한 곳에서 아이들에게서 온 편지를 읽고 답장을 쓰고 아이들이 적은 것들을 산타에게 전달하는 일을 한다. 아더에게 세상은 무서운 것 천지인데, 그런 그를 움직이게 한 것은 과연 무엇일까?



  일 년 중 단 하루에 어마어마하게 일이 몰리는 산타 그룹의 해프닝을 보며 ‘일이란 무엇인가’ 생각하게 된다.



힘든 노동일까?
생계를 위한 수단일까?
아니면 삶의 의미와 보람을 주는 무언가 일까?



  어떤 답을 떠올리더라도 틀리지는 않다. 단지 앞의 두 가지를 떠올렸다면 조금 슬플 뿐. 같은 강도의 노동이라면 자부심 혹은 뿌듯함이 번지는 마음이면 더 좋지 않을까?



  교회를 짓는 세 일꾼의 일화가 떠오른다. 햇빛이 뜨거운 어느 날 벽돌 일을 하고 있는 세 사람을 보며 무슨 일을 하냐고 묻는다. 한 사람은 “보면 모르오? 일하고 있잖소, 뙤약볕에서.” 또 한 사람은 “가족들 위해서 돈 벌고 있죠. 내가 일해야 우리 가족들이 먹고 사니까요.” 마지막 한 사람은 “하나님께 예배드릴 교회를 짓고 있습니다. 이곳에서 사람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을 생각하니 기쁩니다.”라고 대답한다. 같은 일을 하고 있는데 각자의 마음이 다르다. 어떤 사람의 대답에 눈길이 가는가?



  나는 같은 일을 하며 하루를 살아도 삶의 의미와 보람을 주는 마음이고 싶다. 내가 하는 이 일이 나를 둘러싼 환경과 세상에 영향을 미칠 것을 상상하며 일하고 싶다.



도스토옙스키가 이런 말을 했다.

한 인간을 완전히 뭉개버리고 파괴하고 싶다면 무시무시한 살인자라도 벌벌 떨만한 가장 끔찍한 형벌을 내려라. 전혀 무익하고 의미 없는 일을 하게 만드는 것이다.



  의미 없는 일, 의미 없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는 것은 그야말로 형벌과도 같다는 말이다. 어쩌면 우리가 창살 없는 감옥을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일이다.



  산타 가족 중 세 번째의 마음(일이란 삶의 의미와 보람을 주는 무언가)으로 일을 하는 사람은 내 눈에 딱 한 명, 아더뿐이다. 아더는 그야말로 산타의 본질에 가장 가까운 마음을 가지고 있다. 산타가 잘 못하는 나머지 일들은 160만 명의 요정 군단이 분담해서 할 것이다. 지금 산타도 요정 군단과 스티브, 아더, 그리고 아내에게 많은 부분 도움을 받고 있다. 한 사람이 모든 것을 잘할 수도 없고 잘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잘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알고 그 일을 맡기면 된다. 그래서 그 분야의 전문가가 필요한 것 아닐까? 예를 들어 브라이오니 같은? 브라이오니는 포장 전문가이다. 그웬에게 가는 길에 포장지 롤 3개로 자전거 하나를 포장한다. 그리고 포장지 가운데에 있는 심지는 그 바쁜 와중에도 분리수거를 제대로 한다. 포장 없는 선물은 절대 안 된다며 포장을 하는 브라이오니의 표정은 급박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신나 보인다. 포장한 상태의 선물을 받는 이를 상상하는 마음이겠지. 그래서 브라이오니는 아무리 바빠도 꼭 빨간색 리본을 묶는다. "아무리 바빠도 리본 묶을 시간은 있어요~!"라고 말하며.



  우리는 요즘 꿈에 대해 많이 얘기한다. 꿈이 뭐냐고 자꾸 묻는다. 그런데 그 질문에는 간혹 함정이 있다. 꿈을 물으면서 실은 어떤 직업을 생각하는지를 요구한다. 꿈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다. 꿈과 직업은 다르다. 직업은 삶을 위해 돈을 버는 지속적인 행위이다. 나는 여기에 하나를 더하고 싶다. 사명 혹은 소명, 하고 싶은 일을 하며 가치를 실현하는 것이다.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다. 거창한 게 아니다. 내가 이 일을 하는 것이 세상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에 대해서다. 아더는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고 기뻐할 아이를 생각한다. 그러면 20억 명의 선물을 배달하는 일이 괴롭지 않다. 육체적으로 힘들 수 있지만 마음은 벅차다. 스티브가 과업으로 생각하는 것과는 결이 조금 다르다. 일을 하는 과정 자체가 기쁜 것과 해낸 후의 성취감을 느끼는 것은 다른 차원이다.(성취감을 느끼는 일이 잘못되었다는 얘기가 아니다.)



세상에 중요하지 않은 아이는 없어요. _아더 <아더 크리스마스>



  아더는 꿈, 직업, 사명, 이런 단어를 떠올리지는 않는다. 그저 자신의 마음을 따를 뿐이다. 세상에 중요하지 않은 아이는 없다고, 모든 아이는 중요하다고 외치는 마음의 소리를. 이 글을 읽은 분들이 자신이 하는 일이 어디까지 영향을 미칠지 세상과 어떤 화학반응을 일으키고 싶은지 생각하면 좋겠다. 나는 그것을 상상하며 글을 쓴다. 나의 글이 단지 흰 바탕에 적힌 검은 글자가 아니라 누군가의 마음에 노크하고 질문하는 살아있는 촉매가 되면 좋겠다. 나는 사람들이 자신에게 감동받기를 원하며 강의하고 글 쓰고 코칭한다. 나와 만나는 모든 분들이 자기 내면의 빛나는 보석을 발견하기를 원한다.



평생 단 한 번도 만나지 못할
이 끝과 저 끝의 사람들이 만나서
때로는 사랑을 하고
때로는 평생을 같이 살아간다는 게 신기해요.

어쩌면 만나지 못했을 사람들을 만나게 해주는 일,
어쩌면 사랑하지 못했을 사람들을 사랑하게 해주는 일,
제가 하는 일은 그런 일입니다.

_서도재 <뷰티 인사이드>



  내가 하는 일과 그로 인한 영향을 한 번 더 생각하면 직업이 사명이 되기도 한다. 드라마 <뷰티 인사이드>의 서도재의 대사처럼, 같은 일을 하지만 돈만 버는 것에서 가치까지 실현하는 일로 내 영향력의 범위를 넓힌다. “나는 지금 지구의 한 모퉁이를 깨끗하게 하고 있다네.”라고 말하는 청소부를 기억한다. 사람을 살리는 마음으로 식당을 하면 좋겠다. 미래의 학자를 키우는 마음으로 문구를 만들면 좋겠다. 아이들의 웃음으로 가정을 살리는 마음으로 장난감을 만들면, 그러면 정말 좋겠다. 우리는 모두 세상을 향한 촉매다.



영화 <아더 크리스마스>에서 건져 올린 질문들


* 나에게 일은 어떤 의미인가?

* 나에게 몰입을 경험하게 하는 '일'은 무엇인가?

* 무엇이 나를 일하게 하는가?

* 내가 생각하는 내 일의 본질은 무엇인가?

*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는 무엇인가?

* 나는 일을 하며 나의 어떤 강점을 발견하는가?

* 나는 일을 함으로써 세상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싶은가?

* 나는 일로 세상과 어떤 화학반응을 일으키는가?

* 나는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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