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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지원 Jan 20. 2021

글 쓰는 과정에 대하여

비명을 지르면서도 나는 웃고 있다

 나에게 글 쓰는 과정은 미켈란젤로가 말한 조각하는 것과 닮았다. 형상은 이미 화강암 덩어리 안에 있고 자신은 단지 불필요한 부분을 제거한 것뿐이라는. 일본 만화 <유리가면>에서도 비슷한 장면이 나온다. 나무로 불상을 만드는 조각가는 나무를 덩어리 상태로 두고 기다린다.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하고 기다리면 어느 시점에 나무 안에서 불상이 자신에게 말을 건넨다고 한다. 자신을 꺼내 달라고. 그러면 조각가는 신들린 듯 쉬지도 않고 나무를 파서 불상을 만들어낸다. 생각을 눈으로 볼 수 있도록 세상에 꺼내는 모든 작업들이 비슷한 과정을 거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의식하지 않는 순간에도 머릿속에서는 계속해서 회로가 돌아가고 있다.      


 때로는 인풋을 요구하기도 한다. 내가 영화를 보고 나서 바로 글을 쓰지 않는 이유는 글감이 머릿속 다른 방에 들어있는 여러 영역의 재료와 만나고 반응해서 새로운 무엇인가가 만들어지는 데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번에 책을 쓰면서 깨달았다. 내 안에 반응할 재료들이 부족하다는 것을. 어떤 재료가 더 필요한지 알았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겠다. 게임 스타듀밸리를 했을 때가 생각난다. 무기 또는 농기구 등을 만들려면 철광석, 구리, 이리듐 등의 원석이 필요한데 용광로 개수 늘리는 데에 집중하다가 막상 원석 재료가 부족해서 용광로가 멈추는 경우가 발생한다. 게임에서도 글쓰기에서도 글감이 될 재료가 필요하다. 나의 경우는 철학, 심리학, 예술 영역이다. 영화 속 나의 감정과 생각들을 연결할 재료다.     


 글쓰기 직전까지의 괴로움을 생각하면 나는 왜 이렇게 괴로운가, 이렇게까지 힘들 일인가 싶다가도 글감이 준비되었으니 글을 쓰라는 신호를 뇌에서 보내면 나는 또 신나서 쓰기 시작한다. 괴로움의 정체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왜 이렇게 답답하고 심장이 빨리 뛰는지, 이 해결되지 않았음을 알리는 부정 감정들은 나의 어떤 욕구를 드러내고 있는지.      


 나는 욕심이 생긴 것이다. 더 잘 쓰고 싶다는, 더 좋은 문장을 쓰고 싶다는. 그리고 나는 이제 적당히 만족이 되지 않는 상태가 되어버렸다. 내 실력과는 별개로. 열지 말아야 할 문을 연 기분이다. 한편으로는 기분이 좋기도 하다. 내가 가야 할 방향을 알았으니. 괴롭고 힘들지만 흥분되고 기대되는 기분, 충만함이다. 양가감정 속에서 정신이 분열되는 게 아닌가 걱정이 된다. 하지만 이 긴장감을 나는 이미 즐기고 있다. 힘들다, 가슴이 답답하다, 명치가 쪼그라들 것 같다는 비명을 지르면서도 나는 웃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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