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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지원 Feb 17. 2021

내가 글을 쓰는 이유

상징과 알레고리 그리고 칸트와 헤겔

 상징은 상관관계를 통해 어떤 것을 드러내는 데 필요한 그림이나 기호를 말한다. 주로 말로 하기 힘든 추상적인 것, 즉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도록 나타내는 대상물을 의미한다. 주로 문학, 미술, 영화 등에서 사용한다. 과거에 글을 읽을 수 있는 이가 극히 드물었을 때 대중에게 의미를 전달하기 위해 만들었고 이후로 인간 내면의 복잡한 정신세계를 표현하기 위해 주로 사용되었다. 그래서 상징을 알면 그림이나 조각이 의미하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모래시계는 시간 혹은 인생의 유한함을 의미하고 해골은 죽음을 상징한다. 칼은 무력 혹은 권력을 나타낸다.

 알레고리는 상징을 이용해서 어떤 현상이나 상황을 표현하는 기법이다. 알레고리는 그리스어 알레고리아 allegoria로부터 왔다. '다르다'는 의미의 알로스 allos와 '말하다'는 의미의 아고레우에인 agoreuein의 합성어다. 일차적으로 전하는 이야기 속에 다른 의미가 숨어있다는 뜻이다.

 즉, 상징은 의미를 위해 사용되고 알레고리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작가가 의도한다. 그래서 알레고리는 겉으로 드러나는 이야기와 그 속에 담긴 또 다른 메시지의 이중 구조를 갖는다. 마치 암호문 같다.

 나는 영화에서 이런 상징과 알레고리를 발견하면 뿌듯하고 짜릿하다. 마치 감독과 DM을 주고받는 기분이랄까? 그 순간 영혼의 연결과 같은 지적 자극을 느낀다. 그런데 한편으로 이런 생각도 든다. 작가가 말하지 않은 것을 알 수 있을까? 혹은 감독이 의도하지 않은 것을 관객이 알 수 있을까? 나의 의문은 여기서 시작되었다. 영화 인문학 글을 쓰며 감독의 의도와 메시지 부분을 쓰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감독이 정말 이런 생각을 하고 일부러 이런 시도와 연출을 했을까?, 라는.

 칸트 혹은 헤겔의 시각으로 본다면 이렇게 해석할 수 있을 듯하다. 먼저 칸트의 시선으로 보면 감독의 손을 떠난 작품인 영화를 관객인 내가 어떻게 해석하든 그것은 감독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다. 내가 말하기 전까지 감독은 내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모를 테니. 그가 나에게 영향을 주었는지 아닌지 그는 알 수 없다. 인식할 수 없는 것에 대해 칸트는 무의미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헤겔의 시선으로 보면 달라진다. 헤겔은 생각 자체가 곧 세상이고 정신이 궁극적인 실재라고 말한다. 그래서 헤겔의 관점으로 보면 관객인 내가 영화를 보고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것을 감독은 물론 누구도 모른다 해도 의미 있다고 할 수 있다. 감독이 의도하지 않았을지라도 내가 영화를 보고 영화의 이중 메시지인 알레고리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실재하므로.

 사실 이 글을 쓰는 이유는 감독의 의도와 상관없을 수 있는 나의 해석과 발견들이 의미 있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영화 속 상징과 알레고리에 대해 생각하는 과정이 결국은 헤겔이 말하는 절대정신에 닿기를 원한다.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로 영화 인문학 강의를 몇 년 동안 하면서 놓쳤던 부분과 오류를 최근에 글을 쓰다가 발견하고 유레카를 외쳤다. 시간은 걸리겠지만 해석하고 오류를 발견하는 과정들을 통해 내가 가닿을 그곳을 상상하며 나는 오늘도 글을 쓴다. 나의 글이 누군가에게 전해져 정신적 화학반응을 일으켜 그의 삶에 좋은 영향을 줄 수 있기를 바란다. 그 결과를 내가 직접적으로 모를지라도 그 자체만으로 나는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우리 같이 쓸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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