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몸에서 외교부는 단연 입이다
이르쿠츠크에 있는 바이칼 호수에 가기 위해 시베리아 횡단열차 탔을 때, 58시간 동안 나는 신기한 경험을 했다. 언어가 통하지 않아도 연결될 수 있다는 것. 러시아 현지인들이 주로 이용하는 3등 칸에서는 차장과 탑승객이 이웃사촌처럼 스스럼없이 지내는 것 같다. 내가 탄 열차 객실의 차장은 두 명 다 50대 여성이었는데 기차 객실 내부를 얼마나 깨끗하게 쓸고 닦고 관리하는지 맨발로 다녀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큰 도시에서 정차를 하면 20분 정도 기차 주변에 장이 열리는데, 사람들은 내려서 간식도 사고 역 매점에서 맥주도 사 왔다. 보드카를 주로 마시는 일이 많은 러시아인들이어서인지 맥주를 물 마시듯이 마신다. 하긴, 유럽 배낭여행할 때도 물보다 맥주가 더 저렴했었지.
2리터가 넘어 보이는 페트병 2개에 생맥주를 담아온 사람들이 기차 객실 안에서 작은 파티를 열었다. 말이 파티지 사랑방 수다모임 같은 분위기였다. 한 명이 일주일 치 식료품을 가득 담은 커다란 가방에서 유리 단지 하나를 꺼내어 테이블에 올려놓는다. 연어 같은 주황색 살코기가 기름에 절여져있다. 뚜껑을 여니 짭짤하고 비릿한 냄새가 코로 훅 들어온다. 젓갈만큼은 아니지만 기름과 소금에 절여놓는 저장식품인듯하다. 모여있는 사람 중에서 단연 가장 튀는 사람인 나를, 모두가 보고 있다. 내가 먹어보기를 원하나 보다. 우리나라에 눈 파란 청년이 왔을 때 청국장이나 우리나라 전통 음식들을 먹여보고 싶은 이유와 비슷하겠지. 머릿속으로 재빨리 전략을 짠다. 입에 넣었는데 도저히 못 먹을 맛이면 그냥 씹지 않고 삼킨다.
에라 모르겠다. 입에 한 점 넣으니 비릿한 향이 아까보다 더 진하게 훅 들어온다. 짠맛이 입안 가득 느껴져 나도 모르게 오물거리며 씹었는데, 세상에, 맛있다! 쿠스네~!(맛있다는 러시아 표현) 고소하고 씹을수록 단맛이 느껴진다. 유리 단지 안에 있던 살코기들이 눈에 보이게 사라져 간다. 범인은 나다. 주위에 서서 바라보던 러시아 사람들의 눈에 꿀이 떨어진다. 자신들이 즐기는 전통 별미를 외국인이 맛있게 먹는 모습이 꽤나 흐뭇한가 보다. 예의상 먹는 시늉만 하려던 나의 계획은 대놓고 잘 먹는 것으로 급 수정, 변경되었다. 이후로 내가 기차를 내릴 때까지 우리 객실 사람들의 주요 관심사는 나였다. 가족사진을 보여주며 한 명씩 소개해주고 러시아 단어를 알려주기도 했다. 무엇보다 매 끼니마다 음식을 나눠주어 우리 테이블 위는 늘 풍성했다. 안 그래도 나와 같은 테이블을 사용하는 우리 칸의 안따니나, 샤샤, 율리아가 잘 챙겨주었는데 먹을 복이 터졌다. 풍년이다.
낯선 음식을 가리지 않는 나의 이 입성 덕분에 외국의 친구들과 빨리 친해진다. 자신이 즐겨먹는 음식을 외국인인 내가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면 마음의 빗장에 기름칠이 되나 보다. 러시아, 필리핀, 태국, 헝가리, 체코, 독일 등 어느 곳에서도 음식 하나로 금방 친해졌다. 이쯤 되면 내 몸에서 외교부는 단연 입이다. 음식은 단순히 에너지원이기 이전에 그 지역의 문화가 집결된 결정체라고 생각한다. 기후와 생활패턴, 풍습이 녹아있는 것이 바로 음식이 아닐까. 외부인이 그 지역의 음식을 잘 먹는다는 것은 어쩌면 그곳의 문화와 사람들에게 마음을 여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도 있지 않을까. 우리 집 김치를 입에 안 맞아하는 친구보다 맛있게 먹는 친구를 보면 더 정이 가고 마음이 가는 것과 비슷할듯하다. 고작 음식 하나에 마음이 그렇게 쉽게 움직이냐고 한다면, 어쩌겠나 우리 집 음식문화를 좋아하는 사람이 더 예뻐 보이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