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줏대감, 벗어날 수 있을까?

시간선택제 채용 공무원 근무기

by 윤다서영

나는 입직 후, 자리를 옮긴 적이 없다. 육아휴직을 두 번이나 쓴 사람도 있고, 여러 과에서 근무하다 돌아온 사람도 있지만, 나는 그들이 왔다 갔다 하는 동안에도 굳건히 자리를 지켰다.


어느덧, 나는 우리 과에서 가장 오랫동안 근무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처음 시선제 근무를 시작했을 때는 다른 곳으로 옮길 수 있다는 생각 자체를 하지 못했다. 우선, 티오(일정한 규정을 통해 정한 인원)를 고려했을 때, 1을 잡아먹고 0.5가 들어가는데 다른 곳에서 받아줄 리 만무했고, 두 번째로 나 같은 경우는 일반행정직이 아니기 때문에 갈 수 있는 곳이 한정적이었다. 그래서, 애초부터 다른 곳으로 옮길 수 있다는 생각 자체를 하지 않았다.


그런데, 동기 중 한 명이 다른 기관으로 가기 위해 계속 시도하는 것을 보면서, 어느 순간 나도 해봐야 하는 건가라는 초조함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시선제 분들은 퇴직으로 우리 기관을 떠났다. (동기 9명 중에서 5명이 퇴직했다.)그런데 딱 한 분, 일방 전출로 다른 기관으로 옮긴 분이 계셨다. 그래서 희망을 가졌다.


하지만, 4~5년을 인사교류, 전출 등 여러 경로를 통해 다른 기관으로 옮기려고 시도하는 동기를 보면서, 그분이 굉장히 운이 좋은 케이스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언젠가 동기가 본인이 지원한 기관에서 온 답변 메일의 제목을 보여준 적이 있는데, "인사팀에 문의한 결과 시간선택제는 곤란...", "현재 우리가 채용하는 자리에 시선제는 어려울 것..." 등 제목만 읽어도 정중한 거절이 대부분이었다.


같은 기관 내에서도 인사이동이 어려운데, 다른 기관으로는 오죽할까. 솔직히 옮긴다고 뭐가 좋은 건지도 모르겠고. 만약, 시선제에 대해 잘 모르는 기관이라면, 예전에 겪었던 일들은 또다시 겪을 수도 있는데, 그냥 조용히 내 자리 잘 지키고 있는 게 맞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다가, 그럼 지금 이 자리에서 십 년은 더 넘게 근무해야 할 텐데...라는 생각이 들면, 마음 한편이 답답해진다.


업무? 어렵지 않다. 7년 근무에 어렵다고 하면, 무능력자란 소리 들어도 할 말 없다.

인간관계? 맞지 않는 사람은 어디에나 있다.

근무시간? 말할 필요도 없는 시간선택제 근무다.


문제 될 건 하나도 없는데, 나는 왜 다른 기관을 떠올리고 있을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아마도 가장 큰 이유는 7년이란 시간이 아닌가 싶다.


같은 공간, 같은 업무, 그리고 떠나가는 사람들.


같은 시기 들어와서 정말 친하게 지냈던 동료들이 있었다. 매주 맛집이나 새로운 놀이거리를 찾아다니면서 어울렸고, 서로 힘들 때는 위로하고, 좋은 일이 있을 때는 자기 일처럼 기뻐하면서, 직장 내에서는 만나기 어렵다는 좋은 인연을 만들었다. 나는 이분들 덕분에 힘든 시기를 잘 버텼다. 하지만, 지금 이분들은 모두 다른 기관으로 떠나갔다. 한 명씩 떠날 때마다 더 나은 미래를 꿈꾸며 가는 그분들을 축하했지만, 마음 한편으로 공허함을 감출 수가 없었다. 그러던 와중에 친한 동기마저 다른 기관으로 가기 위해 이곳저곳 알아본다고 하니 초조해진 것이다.


나만 덩그러니 남아 있을 것 같은 불안감. 그리고 도태되는 느낌.


퇴직까지 앞으로 15년 정도 남았는데, 얼마나 많은 이들이 왔다가 떠나갈까? 그리고 나는 같은 공간에서 같은 업무를 언제까지 계속할 수 있을까?


그런데 나, 지금 이런 고민을 왜 하고 있는 거지?


갑자기 글을 쓰다가 "나는 왜 이런 고민을 하고 있지?"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내가 시간선택제 공무원이 되고 싶었던 가장 큰 이유는 근무 시간에 뭘 하느냐가 아니었다. 나는 근무 외 시간이 많이 필요했고, 그 시간이 소중했기에 이 자리에 앉기 위해서 노력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직장 내에서 도태될 것을 불안해한다고? 내 미래를 위해서 더 나은 기관으로 옮기기를 바란다고?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서 시간제 근무를 선택해놓고, 정작 내 꿈을 위해서는 적극적으로 움직이지도 않으면서, 무슨 쓸데없는 고민을 하고 있는 건지, 갑자기 현타가 밀려왔다.


아마도 난 직장생활도 개인적인 생활도 둘 다 완벽하게 잘 해내고 싶었나 보다. 앞으로도 계속 이런 고민을 할 것 같은데, 균형을 잡는다는 거, 참 어렵다.


그나저나, 터줏대감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를 고민하다가, 뜬금없이 근무시간과 그 외 시간의 균형에 대한 고민으로 넘어온 걸 보면, 역시 난 파워 N인가.(--)

참, 마지막까지.. 두서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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