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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다서영 Dec 02. 2023

경복궁에서 토끼를 찾아라!

어린 시절 추억 하나

초등학교 4학년 때였던 걸로 기억한다. 방학 중 과제로 '국립중앙박물관에서 토끼 사진 찍어오기'가 있었다. 요즘도 이런 과제가 있는지 모르겠는데, 어린 시절의 나는 어느 장소에서 사진을 찍어오라는 과제에 펄쩍펄쩍 뛰며 좋아했었다.


"놀러 갈 수 있다!"


우체국에서 근무했던 아버지는 주말에도 바빴다. 하지만, 학교 과제와 관련해서는 적극적이었기에 나는 방학이 되자마자 "아빠, 나 경복궁 가서 토끼 사진 찍어야 해. 과제 중 하나야."라며 입버릇처럼 말하고 다녔다.


결국, 아버지는 방학이 끝나기 전에 시간을 내셨고, 나는 동생들과 함께 경복궁으로 향했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당시에는 국립중앙박물관(옛 조선총독부)이 경복궁 안에 있었다. 광화문 위로 불퉁하게 쏟아 오른 건물의 푸른 꼭대기가 어렴풋하게 떠오른다.


나는 아버지와 동생들과 함께 박물관을 열심히 돌아다녔다. 그런데 아무리 찾아도 토끼가 보이지 않았다.


"아빠, 토끼는 어디서 찾아요?"

"토끼 모양으로 된 도자기 같은 것을 말하는 건가."


우리는 도자기가 전시된 곳을 죄다 찾아다녔지만,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았다. 결국 아버지는 안내원에게 토끼를 찍어오라는 과제가 있는데, 뭘 말하는 건지 아느냐고 물었다. 안내원은 "토끼요?"라고 되묻더니, 혹시 박물관이 아닌 바깥에 전시된 해태상처럼 그런 조각상을 말하는 것이 아니겠느냐고 답해줬다.


아버지는 나에게 진짜 토끼를 찍어오라는 거 맞느냐고 되물었고, 나는 자신감 넘치는 태도로 답했다.

"확실해요. 선생님이 토끼 사진 찍어오라고 했어요."


하지만, 우리는 결국 토끼를 찾지 못했고, 아버지는 눈에 보이는 동물 조각상은 죄다 찍는 걸로 과제를 마무리했다. 사진을 다 찍은 후, 나랑 동생들은 아이스크림 하나씩 물고 박물관 앞마당을 신나게 뛰어다녔다.


내 기억 속의 그날은 화창한 날씨에 달콤한 아이스크림, 비록 땀을 뻘뻘 흘리며 찾아다녔지만, 과제를 마쳤다는 뿌듯함이 있었다. 하지만, 가장 좋았던 건 아버지와 함께 한 나들이었다.


그해 가장 행복한 하루였다.


하지만, 내가 수십 년이 지났음에도 이 날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는 건 행복한 하루라서만은 아니다.


바로, 토끼를 찍어오라는 과제!


방학이 끝나고 제출한 내 과제를 보며 선생님이 물었다.

"이게 뭐니?"

"아무리 찾아도 토끼가 없더라고요. 그래서 비슷해 보이는 동물들은 다 찍어왔어요."

뿌듯해하는 내 얼굴을 보며 선생님이 황당한 표정으로 말했다.

"토끼라니. 선생님이 분명히 적어줬을 텐데. 토기 사진을 찍어오라고."


선생님의 말을 듣자마자 어린 나는 생각했다. 아빠한테는 절대 말하지 말아야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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