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하다는 말을 자주 듣던 시기가 있었다. 그리고 착하다는 평을 들어야 한다고 생각하던 시기도 있었다. 나는 사람들의 시선에 꽤나 예민한 사람이었고, 나 스스로에 대한 잣대가 엄격한 사람이었다.
언제부터 이런 성격이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제는 이런 내가 짜증이 날 정도로 한심한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화 안 나세요?"
"화요? 왜요?"
"지금 00 씨한테 업무를 다 넘기고 있잖아요."
"제가 도와준다고 한 거예요."
"그게 도와주는 거예요? 전부 다 맡아서 하는 것처럼 보이는데요?"
"아니에요. 이 부분만 해주는 거예요."
"그 부분이 다 아닌가. 뭐, 00 씨가 괜찮다는데, 괜한 오지랖이네요."
바쁜 사람 도와주는 게 뭐가 문제지? 여력이 되면 당연히 도와줘야 하는 거 아니야? 오히려 내게 화도 안 나냐고 말하는 사람들을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그들이 이기적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들은 절대 이기적인 사람들이 아니었다. 단지, 피해야 할 상대에게서 자기 자신을 지켰을 뿐. 그리고 불쌍한 중생 하나 도와주려던 진짜배기 착한 사람이었을 뿐.
직장 생활을 하다 보면, 크게 세 부류의 사람들이 보인다. (일을 잘하는지, 못하는지는 상관없다)
자기 일만 하면서, 다른 사람 일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
자기 일도 제대로 못하면서, 남의 일에만 신경 쓰는 사람
자기 일도 열심히, 남의 일도 열심히 하는 사람
가장 좋은 직원은 어떤 부류일까? 대부분이 세 번째가 가장 이상적이라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세 번째는 "그냥 호구다."
남의 시선에 예민하고 착한 사람이라는 소리를 들어야 했던 나는 세 번째 부류의 사람이었다. 이건 절대 자기 자랑이 아니다. 그동안 제대로 호구로 살아왔다는 소리다.
00 씨, 글쓰기에 관심 있다면서요? 000 관련해서 글 좀 써주시겠어요?(다른 사람이 해야 할 일) => 글을 써주고 난 후, 생각보다 대단하지 않다고 험담하는 것을 들음.
업무 담당자 대신 00 씨가 일 좀 처리해주면 안 될까요? (휴가 중 받은 연락, 타 팀으로 옮김) => 현 담당자가 업무를 맡은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잘 모를 것 같아서 나한테 연락했다고 함.
지금 어떤 일 때문에 00팀 담당자와 연락해야 되는데, 00 씨가 연락 좀 해주시면 안 될까요? (역시나 휴가 중 받은 전화) => 그동안 내가 00 관련해서 00팀 담당자와 연락을 많이 한 걸 알아서 연락했다고 함. 심지어 나는 휴가 중이고, 그분 번호도 모른다고 하니, 나보고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담당자 연락처 알 수 있지 않느냐며 친. 절. 히 알려주기까지 함.
위와 같은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났다. 나는 흔쾌히 요구를 들어줬을까? 예전에는 들어줬다. 상처를 받아도, 어이가 없어도, 짜증 나도, 이해할 수 있는 부분들이 있었기에, 해줄 수 있는 일은 다 해줬다. 나는 착한 사람이라는 타이틀을 놓치기 싫었던 것 같다.
"베풀면 반드시 돌아온다."라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던 것도 한 몫했다. 하지만, 열심히 베풀었다고 다들 나한테 고마워했을까? 베풂은 고마움을 아는 사람에게 했을 때 돌아오는 건데, 그때는 왜 몰랐을까?
오랜 호구 생활에 익숙해져 버린 나는 이 모든 일의 잘못을 내게 돌렸다. 글이 마음에 안 드는 건? 내가 무능해서, 전임자가 일을 모르는건? 내가 제대로 하지 않아서, 휴가 중에 비상식적인 요구 전화가 온 건? 내가 어리석어서, 이런 일이 생겼다고 생각했다.
이런 생각을 가지고 생활하다 보니, 어느새 나에게 비상식적인 일이 마구잡이로 생기기 시작했다.
하지만, 내게도 나름 상식선이라는 것이 존재했다. 그리고 어느 날, 그 상식선이 깨지는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나는 그 일로 엄청난 상처와 충격을 받았다.
"한심해. 한심해, 한심해 미치겠어."
그동안 나는 착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냥 누군가의 호구였던 것이다.
단칼에 그들과 정을 끊었다. 나에 대한 험담이 들려왔지만, 완벽하게 무시했다. 사람들의 험담이 더는 무섭지 않았다. 사람들의 시선이 더는 나를 찌르지 않았다. 나를 감싸고 있던 무언가가 한 꺼풀 벗겨진 기분이었다.
모두에게 착한 사람이 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드디어 깨달은 것이다.
지금은 위의 사례 같은 일이 생기면, 확실하게 말을 한다. 그들의 예의 없음에 대해 말을 해주고, 해줄 수 있는 일은 해주겠지만, 상식밖에 요구는 해줄 수 없다고 거절한다.
나는 "자기 일만 하면서, 다른 사람 일에는 관심이 없는 사람" 부류에서 "감사함을 아는 사람들은 열심히 돕는다."를 덧붙였다. 실제로 이런 부류의 사람들이 꽤 있었는데, 그동안 왜 몰랐을까?
나는 착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리고 사람이라면 당연히 고마워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고마움의 기준은 사람들마다 완벽하게 다르다는 걸 이제는 안다. 자기 시간을 할애하여 열심히 도와줬다고 생각했던 일도 상대방의 기준에는 턱없이 부족해서 해주고도 욕먹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하고, 적극적으로 도와줬던 일에 문제가 생기면 해주고도 비난을 받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그래서 내가 내린 결론은 내가 상처받지 않는 선에서 작은 일에도 고마움을 느끼는 사람과의 관계에 집중하고, 그렇지 않은 경우는 단호한 선을 그어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없는 세상은 존재하지 않기에 삶이란 내가 사라지면 사라진다. 나는 그동안 그 사실을 모르고 살았다.
누군가 내게 말한다. "도와줘서 정말 고마워요. 00 씨는 참 착한 거 같아요."
그럼 나는 말한다. "저는 당신에게만 착한 사람이에요."
(지금까지 근무한 직장 생활 중 겪은 일들을 두서없이 적어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