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리기간이 준 선물(?)
2019년 말, 처음 코로나가 나타났을 때, 나 역시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코로나에 걸릴까 봐 전전긍긍했었다. 모두 알고 있듯이, 당시는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으니까.
하지만, 3년의 시간이 흐르고, 사무실 직원의 3분의 2가 코로나에 걸리는 동안에도 나는 아무 문제가 없었기에, 마음을 완전히 놓고 있었다.
코로나 시국에 오후 출근이라서 다행(?)이었던 점 중에 하나가 밖에서 점심을 먹지 않는다는 것이었는데, 나는 점심도 집에서 먹었고, 코로나가 심해진 시기에는 저녁 약속도 거의 잡지 않았기에 코로나로부터 안전할 수 있었다.
그리고 사무실 안에서도 꼭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물론, 잠깐씩 마스크를 내리고 커피나 간식을 먹긴 했는데, 3년 동안 아무 문제가 없었는데, 그깟 커피 한잔, 빵 한 조각 마스크 벗고 먹었다고 별 일이 생길까 싶었다. 어느덧, 코로나는 나와 상관없는 먼 나라 이야기가 되어 있었다.
그런데! 그런 내가 코로나에 걸리고 만 것이다.
처음에는 코로나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초반에는 체기가 있을 때와 증상이 비슷해서 그냥 체한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목 아픔이 달랐다. 코로나를 심하게 앓은 지인들 말로는 죽다 살아났다고 했는데, 불행 중 다행으로 나는 인후통만 있었다. 하지만, 3년을 피해온 내가, 코로나 막바지인 거 같은 이 시기에 걸려버리다니, 진심 충격이었다.
우선, 부모님이 가장 걱정이었다.
사무실 안에서 (최근 일주일은 집 -> 사무실 -> 집 -> 사무실 반복이었다. 밖에서 다른 사람을 아예 만나지 않았다.) 잠깐 마스크 벗은 걸로도 걸렸는데, (가까운 사무실 직원이 내가 확진되기 하루 전에 확진되었다는 소리를 들었다.) 한 집에 살고 있는 나이도 많은 부모님은 어떡하지? 확진되고 며칠 동안 혹시 부모님이 코로나에 걸렸을까 봐 나는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다. 걱정으로 인후통을 아파할 정신도 없었다.
최근 들어서 정신적으로 가장 힘든 시기였다.
나는 내 방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진료는 닥터나우(신세계였다.)라는 앱을 통해서 비대면으로 받았고, 약도 택배로 받았다. 방에서 나갈 일이 있을 때는 꼭 나간다고 먼저 말을 하고, 거실에 있는 부모님이 마스크를 쓰도록 했다.
방에서 식사 후에는 남은 음식을 밖에 내놓지도 않았다. 부모님이 방으로 다 들어간 늦은 시간, 마스크와 비닐장갑을 끼고 나와서 재빠르게 설거지를 하고 내가 먹은 그릇들은 따로 정리를 해서 올려놓았다.
방에서 한 발자국도 나오지 않았지만, 워낙에 집에 있는 걸 좋아하는 집순이였기에, 솔직하게 말하면 겉으로는 평상시와 다를 바 없는 나날이었다.
백신의 효과가 아직 남아있는 것인지 어쩐 건지는 모르겠지만, 인후통 외에 아픔도 심하지 않았고, 초반에 부모님이 걸릴까 봐 걱정했을 때를 제외하고는 밥도 잘 먹고, 잠도 잘 잤다.
그렇게 7일이 지난 후, 격리 해제가 되었지만, 나는 혹시 모르는 마음에 이틀을 더 격리했다. 총 9일을 격리한 셈이다. 그리고 마지막 9일째, 나는 처음으로 밖에 나가서 사람들을 만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격리 9일 만에! 슈퍼 내향형인 내가 밖에 나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예전에 14일 격리하셨던 분들 어떻게 버티셨는지...)
나는 방에 혼자 있어도 할 일이 산더미처럼 많을 거라고 생각했다. 책도 읽고, 글도 쓰고, 평상시 못 봤던 영화나 드라마도 보고, 편할 줄 알았다.
하지만, 오히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점점 무기력해 갔고. 손하나 까딱하기 싫을 정도로 아무것도 하기 싫어졌다.
그리고 하나를 알게 되었다.
나는 머리 복잡한 세상사 뒤로 하고, 아무도 없는 곳에서 홀로 사는 것을 꿈꿨었다. 쓸데없는 부담감과 책임감, 그리고 죄책감에서 벗어나면, 몸도 마음도 지금보다는 훨씬 여유롭고 편안해질 거라고 믿고 있었다.
그런데 세상과 단절된 지 9일 만에, 생각이 달라진 것이다.
물론, 복잡한 세상 속에서 힘겹게 사는 걸 바라게 됐다는 건 절대 아니다! 다만, 복잡해서 힘들다고 믿어왔던 세상이 진짜 그렇게도 힘겨운 세상이었던가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된 것이다.
방 안에 콕 처 박혀서 바라본 바깥세상은 그냥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한 편의 영화 같았다. 그 속에서 내가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는지는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느껴졌다. 그냥 내가 그 안에서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기쁠 것 같았다. 이게 무슨 감정인지는 잘 모르겠다.
사람의 눈을 보고 대화를 나눈 지 오래되어서 그런 건가. 앞으로는 누구를 만나던지, 어떤 상황 속에 있던지, 쓸데없는 감정 속에서 나를 괴롭히지 않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어느 순간 세상을 살아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져 있었다. 그래서 밖에 나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격리 후, 처음 출근하는 날, 사람들을 만난다는 생각에 작은 설렘마저 느꼈다. 길거리 지나가는 사람들의 웅성거리는 소리들이 굉장히 선명하게 느껴지고, 생소하게 다가왔다. 새로운 세상에 발을 디딘 느낌이었다. 꼭 호기심 가득한 어린아이가 된 기분이었다. 그렇게 룰루랄라 나는 경험한 적 없는 즐거운 출근을 했다.
그리고, 사무실 내 자리에 앉은 지 채 두 시간도 지나지 않아서, 나는 혼잣말로 웅얼거렸다.
"집에 가고 싶다."
일주일 동안 못한 밀린 일을 하면서, 사람들과의 불필요한 감정싸움에 휩쓸리고 있는 나를 보면서, 나는 다시 세상과 단절된 혼자만의 삶을 꿈꾸고 있다.
나란 인간, 정말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