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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undemian Aug 05. 2018

동화라면, 너무 잔혹해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 (嫌われ松子の一生: Memories Of Matsuko, 2006)





여자라면 누구나 백설공주나 신데렐라,  그런 사랑스러운 동화를 동경하지.
그게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백조가 되고 싶었는데
어느 새 눈을  떠보면 "새까만 까마귀가 되어있었습니다"라니,
오직 한 번 뿐인, 두 번 없을  인생인데.
동화라면 너무  잔혹해.




1.  마츠코가 싫다.


잔뜩  부풀어 오른 몸,  충혈된  눈,  썩은  냄새,  한밤중  느닷없이 지르는 괴성,  아무렇게나  던져 놓는 쓰레기.  고향과 닮은 강을  바라보며 자주 울던 마츠코는 위와 같은 이유로 이웃 사람들에게 ‘혐오스런  마츠코’라고  불린다.


그녀의  이웃이 아닌 나는 다른 이유로 그녀가 싫었다.  자기의  존재를 다른 사람의 필요에 의해서만 확인하려는 바보 같은 여자.  자기애  또한 없고,  가족과  직업에 대한 책임감 없이 타인의 욕구의 도구로서만 삶을 산다는 점에서 그녀는 분명 ‘어디서나  당당하게’를  외치는 현대적 여성상의 대척점에 있는 인물이다.


마츠코는  영화 내내 자신을 버리는 남자들에게 “なんで?(어째서?)”  하고  묻는다.  그저  무한한 애정을 주었을 뿐인데,  곁에  있어주길 바라는 것뿐인데 어째서 나를 버리는 거야?  하고.  그  때마다 나는 똑같이 ‘어째서?’  하고  묻고 싶은 마음이었다.  어째서  그런 남자를 만났어?  어째서  그런 일을 시작했어?  왜  또 그런 남자를 만났어?  하고.




2.  마츠코와 닮았다.


맞아도, 살해당해도, 혼자 있는 것보다는 나아.



그런  주제에나는 이 영화를 볼 때마다 운다.  그리고  꽤 여러 사람에게 권한다.  내가  가장 닮기 싫어하는 여자인데도 자꾸 눈길이 가고 동정의 마음이 든다.  어쩌면  내가 싫어하는 마츠코의 성격에서 조금씩 내 자신을 발견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사랑받고  싶고,  혼자가  ‘되어버리는’  건  싫고,  몇  번이고 끝났다고 생각하면서도 다시 한 번 인생을 되돌릴 수 있을 거라 믿는다


누군가  그게 나쁜 거냐고 물어온다면,  나는대답할  수 없다.  


마츠코와  닮은 여자를 몇 안다.  누가  봐도 득 될 것 없는 남자에게,  혼자이기  싫다는 이유로 맹목적으로 집착한다.  그가  흘리는 가시 돋친 말에 피 흘리면서도 더 세게 그덩굴을 움켜잡는다.  왜  자신을 갉아먹는 남자를 놓지 못하는가.  나는  한동안 이 문제에 대해 골똘히 생각한 적이 있다.  부모로부터  충분한 정서적 지지를 받지 못해 자존감과 애정이 결핍되어 있다거나,  남의  시선이 두려워 선뜻 혼자임을 드러내지 못하는 건 아닐까.  이  몹쓸 병 고쳐보겠다고 여러 가지 방법을 들며 아는 척 해대는 나에게,  이  ‘바보  같은 경험’을  극복한 한 친구가 말했다.  “그거  어떻게 안 돼.  사랑해서  그런 거거든.  당사자도  다 알면서 못 헤어 나오는 거야.”



 



3.마츠코가  부럽다.


  나는 이 남자와 함께라면 지옥이든 어디든 함께 갈 거야.


  그럼에도 나는 마츠코가 부럽다.  나는  그렇게굳세게 누군가를 사랑해 보았는가.  다  타고 재가 될지언정,  내  인생 한 번쯤은 그렇게 불타봤어도 좋았으련만.내  모든  관계에는계산이 앞섰다-나의  시간,  나의  돈,  나의  꿈,  나의  기분.  물론  그 덕분에 나를 지키고 그 안에서 안전했지만,  한  번도누군가에게 순수한 애정을 주지는 못했단 말이다.  그래서  나는 나를 떠난 사람들에게 물어볼자격이 없다.“なんで?(어째서?)”  하고.




4.  어서 와,  마츠코.


おかえり(어서 와.)



 분명 부족함이 많은 사람이지만, 누가 마츠코를  비난할 수 있을까. 방법이 좀 잘못되었고 운은 좀 많이 나빴지만, 그녀는 그래도 끝까지 싸웠다.인생이 끝났다고 생각한 순간이 몇 번이고  찾아왔지만 잔뜩 맞은 몸으로, 때로는 피의 젖은 몸으로 끝까지 일어섰다. 전쟁 같은 하루를 끝내고 집에 돌아왔을 때, '어서  와' 하고 말해줄 단 한 사람과의 행복을 바라며.


마츠코의 시점에선얼마나 이해하기 어려웠을까. 그깟  열등감과 수치심, 아무 가치 없는 세간의 시선 때문에 사랑 하나 제대로 쏟지 못하는 세상 사람들이.


살면서 또 다른 마츠코를 만날 지 모르니 미리 연습해  두어야겠다. 혐오하지 말고, 한 마디 건넬 것. '어서 와'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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