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에서도 힘든 구직활동
50번의 어플라이
캐나다로 떠나기 전, 어떻게든 일을 먼저 구하고 가겠다는 일념하나로 한국에서부터 링크드인을 통해 어플라이를 하기 시작했다. 금방 일을 구할 수 있을 거라는 허황된 꿈을 가지고 시작하였지만 허술하기 짝이 없는 나의 레쥬메는 아무런 기회를 가져오지 못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너무나 당연한 결과였다. 캐나다와 관련된 것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레쥬메를 보고 쉽게 연락을 줄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렇게 기대와 달리 어떠한 연락도 어떠한 합격도 받지 못한 채 캐나다로 오게 되었다.
도착과 동시에 한 일은 어김없이 어플라이였다. 모든 게 낯설기만 한 첫 해외살이임에도 적응은 안중에도 없고 어플라이에만 몰두했다.
지하철도 서투르게 탈 정도로 이곳의 문화를 아무것도 모르는데 어떻게 어플라이만 끊임없이 할 생각을 했는지 불과 몇 개월 전인데 그때의 패기가 참으로 대단하게 느껴진다.
그렇게 두 달 동안 수십 군데에 어플라이를 했다. 하루에도 몇 십 번씩 레쥬메를 고치고 어플라이를 하고 오지 않는 결과를 기다렸다. 지원 분야도 다양했다. 조금이라도 비슷한 경험이 있거나 할 수 있을 거라 생각되는 일은 망설이지 않고 무조건 지원을 했다.
5번의 인터뷰
운이 좋았다고 할 수 있을지 나쁘다고 할 수 있을지 캐나다 온 지 나흘 만에 인터뷰가 잡혔었다.
한인 잡은 절대로 지원하지 않을 거라고 다짐했지만 어떻게 해서든 오피스 잡을 구하고 싶었던 나는 캐나다에 도착하자마자 그 결심을 무너뜨리고 로컬잡과 한인 잡을 가리지 않고 지원을 했고 그 결과 바로 인터뷰 기회를 얻게 되었다.
하지만 너무 얼떨떨했던 건지 나머지 레쥬메를 통과했다는 사실이 너무 기뻤던 건지 거의 준비를 하지 않은 채 인터뷰를 보았고 며칠 뒤 받은 결과는 너무나 뻔하게도 탈락이었다. 겨우 잡은 기회를 허무하게 날려버린 나 자신이 많이 원망스럽고 너무나 큰 좌절감도 느꼈다. 캐나다에 와서 왜 이렇게 고생을 하는 건지 후회도 됐다.
첫 번째 인터뷰 이후에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두 번째 인터뷰가 잡혔다. 이번에도 운이 좋다고 해야 될지 아닌지 모르겠다. 이렇게 연달아 인터뷰가 잡히기 쉽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그 이유는 두 번째 잡힌 인터뷰도 한인잡이었는데 첫 번째 인터뷰보다 더 혹독했기 때문이다. 첫 번째 인터뷰에서 자기소개와 경력 사항, 능력 여부에 대한 내용을 얘기했었는데 두 번째 인터뷰는 이와 거의 비슷했다. 다만, 다른 점은 굳이 하지 않아도 될 말을 한다는 것이었다.
“캐나다에 왜 오셨어요?”, “이 나이까지 경력이 이 정도예요?”, “제가 본인은 왜 뽑아야 되는지 더 어필해 보세요”, “본인은 동물에 비유한다면 어떤 거에 비유하실 거예요?”
겨우 최저시급을 주고 일을 시키려고 하면서 인터뷰는 거의 인신공격에 가까운 수준이었다. 인터뷰를 진행하는 동안 계속 절실함을 어필하라는 질문을 했는데 거의 빌고 제발 뽑아달라고 사정을 해야 뽑아주려고 했던 것일까? 지금도 알 수 없다. 캐나다에 온 지 5일밖에 안 돼서 시차적응도 제대로 못했던 입장에서는 얼마만큼의 절실함이 필요한지 알 수 있을 리가 없다. 지금도 그 일을 하는데 지구를 다 바칠 만큼의 절실함이 필요한지는 모르겠다.
또 다른 인터뷰도 한인잡이었다. 그렇게 외면하고자 했던 한인잡이었는데 유일하게 잡히는 인터뷰가 한인잡이어서 외면할 수가 없었다. 사실 로컬 잡을 도전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캐나다에 와서 마주한 처참한 영어 실력에 그나마 약간 남아있던 용기도 다 사라졌다.
그런데 세 번째 인터뷰는 더 황당했다. 사람을 불러놓고 한다는 말이 “결혼하면 딱 좋은 사람이 있는데 결혼할 생각 없냐”였다. 이 말만 삼십 분 듣고 끝이 났다. 그리고 탈락했다. 이유는 비자가 짧다는 것이었다. 이미 비자 기간을 레쥬메에 적어놓았고 확인을 해놓고도 사람을 불러놓고 탈락시키는 황당한 일이 어디 또 있을까? 심지어 외모 평가도 했다. 살다가 머릿결과 이에 대한 평가를 처음 당해보았다. 숨 쉬듯이 남의 외모를 헐뜯고 비난하는 사람이었다. 심지어 인터뷰 시간에 10분 정도 일찍 도착했음에도 왜 50분이나 늦게 왔냐고 물었다. 이런 사람들 때문에 다른 한인 분들이 욕을 먹는구나라는 생각 밖에 들지 않았다.
이후에는 로컬 파트타임 잡을 구하게 되었다. 오피스 잡은 아니었지만 시즌으로 진행되는 만큼 흔히 할 수 없는 일이기도 했고 무엇보다도 근무 환경이 만족스러웠다. 시간이 너무나도 길어서 몸은 힘들었지만 정신적으로는 굉장한 만족감을 느꼈다.
시즌으로 진행된 로컬잡이 끝난 이후에는 다시 한인 잡을 구하게 되었다. 하지만 코워커의 가스라이팅과 욕설 등으로 인하여 결국 얼마 못 버티고 다시 그만두게 되었다. 트레이닝 기간이었다고 돈을 주지 않은 곳도 있었다. 한인잡에 대한 편견이 강해지면서 캐나다는 한국보다 더 정신이 강한 사람이 살아남을 수 있는 나라라는 걸 몸소 느끼게 되었다.
앞으로 어떤 일을 할지는 모르겠지만 이제는 좋은 잡을 구해서 오래도록 일을 해보고 싶다. 이제는 오피스 잡이 아니어도 좋으니 어떤 일이든 좋은 사람들과 함께 할 수만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더 바랄 게 없는데 좋은 동료를 만나는 게 너무나도 힘든 거 같다.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이 어플라이를 하고 인터뷰를 봐야 될지는 모르겠지만 언젠가는 나에게도 기회가 올거라 믿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