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스케치북을 펼쳤습니다. 그런 다음 스케치용 연필을 집어 들었습니다. 낙서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들어서야 "무엇을 그려야 할까?"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부드러운 호를 그릴까?
아니면
날카로운 선을 그릴까?
- H 마에스트로
1977년 8월 20일에는 특별한 이벤트가 있었습니다. 인류가 성간을 탐사할 목적으로 탐사선을 발사했기 때문입니다. 먼저 출발한 탐사선은 보이저 2호였고, 1호는 며칠이 지난 9월 5일에 발사되었죠.
2호가 먼저 발사된 이유는 두 가지로 나뉘는데 1호의 발사체 고장이라는 말과 좀 더 멀리 돌아가는 2호를 1호의 이동과 맞추려는 의도가 있었다는 의견입니다.
칼 세이건은 보이저 탐사 프로젝트의 화상 팀을 이끌었입니다. 그는 천문학자이기도 했습니다. 명왕성을 지나던 보이저 1호에게 선체를 돌려 지구를 찍어보자라고 의견을 제시한 인물이었죠.
그의 의견이 최종 결정되어 그 유명한 '창백한 푸른 점' 사진이 완성됩니다.
칼 세이건은 그의 저서 '창백한 푸른 점'에서 아래의 글을 남깁니다.
이렇게 멀리 떨어져서 보면 지구는 특별해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 인류에게는 다릅니다. 저 점을 다시 생각해 보십시오. 저 점이 우리가 있는 이곳입니다. 저곳이 우리의 집이자, 우리 자신입니다. 여러분이 사랑하는, 당신이 아는, 당신이 들어본, 그리고 세상에 존재했던 모든 사람들이 바로 저 작은 점 위에서 일생을 살았습니다. 우리의 모든 기쁨과 고통이 저 점 위에서 존재했고, 인류의 역사 속에 존재한 자신만만했던 수 천 개의 종교와 이데올로기, 경제체제가, 수렵과 채집을 했던 모든 사람들, 모든 영웅과 비겁자들이, 문명을 일으킨 사람들과 그런 문명을 파괴한 사람들, 왕과 미천한 농부들이, 사랑에 빠진 젊은 남녀들, 엄마와 아빠들, 그리고 꿈 많던 아이들이, 발명가와 탐험가, 윤리도덕을 가르친 선생님과 부패한 정치인들이, "슈퍼스타"나 "위대한 영도자"로 불리던 사람들이, 성자나 죄인들이 모두 바로 태양빛에 걸려있는 저 먼지 같은 작은 점 위에서 살았습니다.
칼 세이건 - 창백한 푸른 점에서
그렇습니다.
칼 세이건이 말한 대로 우리는 우주에서 보면 티끌만 한 지구라는 행성에서 살고 있습니다. 우주에서 보이는 지구는 - 매일 서로 싸우고 헐뜯으며 미워하고 살아가는 - 정말 작은 먼지 같은 점에 불과합니다.
그 지구에서 우리는 또 작은 섬 크기에 불과한 반도 지역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 안에서 다시 영역을 나누고 살며 하나라도 더 가지려고 발버둥 치고 있죠.
이 작은 공간에 태어난 이상 내가 누구이며, 무엇을 하는 것을 좋아하는지조차 모르고 세상과 이별하는 만큼 서글픈 일이 있을까 싶더군요.
올해 들어 연필을 잡아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잡은 연필을 다시 놓고 싶지는 않습니다.
스케치를 배워 그림을 그리고 싶습니다. 그림을 그리지 못한다면 켈리그라피를 배워 멋진 글씨를 그려보고 싶습니다.
내가 성장하면서 화가가 되든 멋진 글자를 그리는 켈리 그라퍼가 되던 하나라도 이뤄보고 싶습니다.
그런 삶을 살기 위해서는 단단한 마음을 먼저 만들고 부여잡을 줄 알아야겠죠?
사랑, 감사, 나눔, 행복, 동행은 마음의 성장을 이루는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합니다. 한 분이라도 더 이런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서로 격려하고 응원하며 이끌어주는 실천을 해야겠습니다.
그렇게 한다면 각자 자신만의 색깔을 찾게 될 테니까요.
우리는 지금 자신의 그림을 그리고 색깔을 채우는 여행을 시작했습니다. 그런 지금이 좋습니다. 그런 삶이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