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스니에르에서의 물놀이> - 작품 편
누쏠: 안녕하세요, 쇠라 선생님. 지난번 인터뷰 끝나고 서울 구경은 잘 하셨나요? 오늘은 선생님의 초기 대표작, <아스니에르에서의 물놀이>에 대해 이야기 나누기로 한 날이죠. 아스니에르가 파리 외곽 지역이라 들어서, 오늘은 특별히 서울 외곽에 있는 조용한 카페에서 인터뷰를 준비했습니다. 마음에 드시나요?
쇠라: 네, 이 앞 북한강 풍경이 파리 못지않게 아름답네요. 하하. 이렇게 배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누쏠: <아스니에르에서의 물놀이>, 선생님께서 스물네 살 때 그린 작품이죠. 1884년의 파리는 꽤나 역동적인 시기였다고 들었어요.
쇠라: 네, 맞습니다. 당시 파리는 빠르게 산업화가 진행 중이었고, 아스니에르는 파리 외곽의 산업지대였어요. 그곳 강가에서 여름날 한때를 보내는 노동자들의 모습 속에서, 저는 도시화된 삶의 또 다른 풍경을 보았습니다.
누쏠: 그림 속 인물들이 노동자들이었다니 새롭네요. 당시 르누아르나 모네 같은 화가들이 무도회나 뱃놀이 등의 부르주아 계층의 일상을 그린 것과 대조적이에요. 선생님께서 노동자의 모습을 주제로 삼은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쇠라: 저는 어릴 적부터 파리의 급변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자랐습니다. 자연스럽게 도시에 사는 사람들, 그들 사이의 계층, 그리고 그들이 머무는 시간과 공간에 관심을 갖게 되었죠. 저는 다른 화가들이 조명하던 상류 사회가 아닌, 말 없이 존재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싶었습니다. 특히, <아스니에르에서의 물놀이>에서는 그들이 마주하는 햇살, 피부에 닿는 바람 - 그런 것들을 그리고 싶었어요.
누쏠: 스케치도 참 많이 하셨던걸로 알고 있어요. 인물 자세나 구도 등이 매우 계획적이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중앙에 앉아 햇빛을 온몸으로 받는 소년이 특히 인상 깊어요. 그런데 주변 인물들은 서로 대화도 없고, 시선도 교차하지 않더라고요.
쇠라: 일부러 그렇게 구성한 겁니다. 그들은 같은 공간에 있지만 서로 연결되어 있지 않죠. 마치 도시 속 군중처럼요. 각자 고요함 속에서 쉬고 있는 사람들. 저는 그 고요한 단절을 그리고 싶었습니다.
누쏠: 색감도 독특해요. 인상주의 화가들과는 또 다른, 맑고 균형 잡힌 느낌이랄까요.
쇠라: 그건 물감을 섞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혹시 감산혼합과 가산혼합이라는 말을 들어보신 적 있나요?
감산혼합은 물감을 섞을수록 색이 탁해지고 어두워지는 현상이고, 가산혼합은 빛을 섞을수록 밝아지는 현상이죠. 저는 물감을 섞을 때 생기는 탁함을 피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색을 팔레트에서 섞지 않고, 작은 점들로 나란히 찍는 방식을 택했죠.
섞지 않은 색을 병치시켜 관람자가 멀리서 볼 때 눈에서 자연스럽게 혼합되도록 한 거예요. 색은 ‘붓’이 아니라 ‘눈’으로 섞는다고 생각했죠. 그게 바로 제가 실험한 광학적 혼합입니다.
누쏠: 와, 이 기법을 발견하셨을 때, 정말 기쁘셨겠어요. 정말 획기적인데요.
쇠라: 그렇지는 않았어요. 사실 이 방법이 과연 통할 수 있을까, 확신이 없었거든요. 그래서 무수히 많은 습작들을 그리기도 했어요. 하지만 <아스니에르에서의 물놀이>를 그리면서 점 하나하나가 만들어내는 빛의 조화를 직접 보게 되었고, 그 경험이 제 안에 확신을 심어주었습니다. 그래서 다음 인터뷰에서 다룰 작품인 <그랑드 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에서는 이 기법을 훨씬 더 뚜렷하고 본격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었죠.
누쏠: 다음 작품도 기대됩니다. 그럼데 이 작품, 살롱전에 출품하셨다가 거절당하셨다고요?
쇠라: 네. (웃음) 1884년, 사람들의 반응을 기대하며 프랑스 공식 살롱전에 이 작품을 출품했지만 거절당했어요. 아마도 너무 낯설었던 모양이에요. 색도, 구도도, 표현 방식도 기존과는 전혀 달랐잖아요. 저는 그저 새로운 시각 언어를 제안하고자 했을 뿐인데, 당시 사람들은 생소하게 받아들이더라고요. 그래서 할수 없이 독립미술가협회인 앙데팡당 전 (Société des Artistes Indépendants)에 출품했죠.
누쏠: 아, 서운하셨겠어요.
쇠라: 아니에요. 오히려 그 전시에서 뜻깊은 인연을 만났죠. 폴 시냐크(Paul Victor Jules Signac, 1863~1935)라는 젊은 화가는 제 그림을 보고 깊은 인상을 받았고, 우리가 곧 가까운 동료가 되었어요. 그는 제 기법을 진심으로 이해해 주었고, 나중에는 함께 신인상주의의 방향을 구체화하는 데 큰 역할을 하게 됩니다. 그와의 만남이 없었다면, 제 실험이 이렇게까지 확장되긴 어려웠을 거예요. 말하자면, 저의 시도를 지지해 준 첫 번째 동료이자 후계자라 할 수 있겠네요.
누쏠: 살롱전 출품에 거절 당했던 이 그림이 지금은 런던 내셔널 갤러리에서 가장 사랑받는 작품 중 하나로 꼽히고 있잖아요. 감회가 새로우시겠어요.
쇠라: (조용히 웃으며) 네, 제 그림이 누군가에게 오래 남는다면 그걸로 충분합니다. 점 하나하나를 찍을 때마다, 언젠가 누군가가 이 빛의 조합을 이해해주길 바랐거든요.
누쏠: 마지막으로, 이 작품에서 선생님이 가장 애정하는 디테일이 있다면요?
쇠라: 구석에 조용히 앉아 있는 강아지요. 아무도 주목하지 않지만 햇살을 받으며 조용히 잠든 그 모습, 어쩐지 저 자신을 닮은 것 같거든요. 소음에서 한 발짝 물러나, 나만의 리듬으로 살아가는 것. 그게 제 회화의 시작이었습니다.
누쏠: 정말… 이 그림이 더 깊고 풍성하게 느껴져요. 선생님의 침묵이 만들어낸 새로운 시선, 오늘 잘 들었습니다. 다음엔 <그랑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 에 대해 이야기 나눠볼게요.
쇠라: 좋아요. 그 작품에서는 점 하나하나의 실험이 더 확장되어 있을 겁니다. (멋쩍게 웃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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