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랑드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 - 작품 편
누쏠: 두근두근. 오늘은 예고해 주신 대로 <그랑드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 이야기하는 날이에요. 이 작품은 정말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는 그림 중 하나거든요. 저도 오늘을 정말 기다렸습니다.
쇠라: 아 그런가요. 감사합니다. 저에겐 전환점 같은 작품이었어요. <아스니에르에서의 물놀이>에서 점묘법을 실험하면서 확신이 생겼고, 더 체계적으로 밀어붙였죠.
누쏠: 아 그렇군요. 일단 그림 속 인물들이… 한 명, 두 명, 세 명, 네 명… 아이고 도대체 몇 명이에요. 선생님이 그림 속 장면을 직접 설명해 주실 수 있나요?
쇠라: 하하, 좋죠. 파리 근교 ‘라 그랑드자트 섬’에 일요일 오후를 보내는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산책하는 사람, 강가에 앉아 있는 사람, 놀고 있는 아이들… 일요일 오후를 보내고 있는 사회 다양한 계층의 인물들이 정적인 자세로 배치돼 있죠.
누쏠: 이 그림 가로 3미터, 세로 2미터가 넘는 대형작품인데도, 화면은 굉장히 정적이에요.
쇠라: 일부러 그랬어요. 저는 점들이 만들어 낸 이 풍경 안으로 사람들이 빨려 들어가길 바랐거든요. 하지만 사람들은 저의 이 실험을 낯설어했고, 어떤 비평가는 ‘죽은 인형 같다’ 고도했습니다.
누쏠: 순간의 움직임에 집중했던 인상주의 화가들과는 확실히 대조적이네요. 여기선 모든 인물이 마치 멈춰 선 것처럼 느껴져요. 꼭 조각상처럼 말이죠.
쇠라: 혹시 고대 그리스나 이집트 미술을 본 적이 있나요? 저는 순간의 찰나보다는, 영원한 시간의 이미지를 그리고 싶었어요. 마치 고대 그리스 프리즈 조각처럼 말이죠. 인물들은 움직임 대신 형태의 안정성과 조화, 그리고 시선의 질서를 이야기하죠. 그래서 화면 전체가 정적인 동시에 기이한 긴장감을 갖고 있습니다. 저는 당시 파리 사람들의 모습을 그렸지만 시대를 초월한 새로운 감각을 자극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캔버스 속 사람들의 모습을 그리스 프리즈 조각처럼 엄격하게 배열하고, 과학적 연구를 바탕으로 한 색을 입혔던 겁니다. 점으로 말이죠.
누쏠: 정말… 회화가 수학, 광학, 철학, 심지어 정치적 시대감각까지 품을 수 있다는 걸 이 작품이 보여준 것 같아요. 혹시 그림 속에서 특별히 애착 가는 인물이 있으신가요?
쇠라: 그림 오른쪽, 여인이요 긴치마를 입고 원숭이를 끌고 있죠. 사회의 질서와 유희, 인위와 본능, 인간과 동물 - 모두가 공존하는 이 장면 속에서 도시인의 복합적 삶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고 생각해요. 사실 원숭이는 당시 인기 있는 애완동물이기도 했지만, 매춘부를 뜻하는 속어로도 사용되었거든요.
누쏠: 이 그림, 당시 파리 사람들의 모습을 풍경화로 담기만 한 게 아니라, 정말 실험의 집합체네요.
쇠라: 맞습니다. 순색의 점들을 하나하나 찍어 화면을 채웠죠. 눈앞에서 색들이 섞이도록요. 이전 작품보다 훨씬 더 과감하게 실험했습니다. 자신이 있었죠. 지난번에 이야기했던, '여러 색으로 병치된 작은 점들이 감상자의 눈에서 시각적으로 혼합되게 했던 실험'을 기억하나요? 서로 다른 색의 점들이 가까이 있을 때, 관람자의 눈에서 자연스럽게 혼합되어 더 밝고 생생한 색채 효과를 만들었죠.
누쏠: 와 대단하세요. 이 작품을 위해 60개 이상의 습작도 남기셨다던데.. 그런 다양한 시도가 있었던 거군요.
쇠라: 네, 이 작업을 하는 동안은 매일같이 공원에 가서 습작을 하며 2년에 걸쳐 완성했죠.
누쏠: 당시엔 정말 혁신적이었을 것 같아요. 이 작품 이후, 또 변화가 있었나요?
쇠라: 이 그림이 시작이었죠. 이후 <샤유의 무도회>, <서커스>에서는 좀 더 동적인 구성을 시도했습니다. 도시의 색채와 리듬의 질서를 더 과감하게 밀어붙였어요. 특히 <서커스>에서는 동적인 장면과 색의 대비까지 극대화하려 했죠.
누쏠: 지난 시간 폴 시냐크(Paul Signac, 1863~1935)에 대해서도 말씀해 주셨어요. 그와의 협업도 중요한 전환점이었던 거죠?
쇠라: 그렇죠. 제 작업을 깊이 이해해 준 정말 고마운 동료예요. 제가 지난 작품을 살롱전에 출품했다가 거절당했다고 했잖아요. 시냐크는 당시 저와 같이 실험적인 젊은 화가들이 작품 심사 없이 누구나 출품할 수 있는 '앙데팡당 전'을 함께 만들기도 했어요. 그도 역시 화가였는데요. 모네(Claude Monet, 1840~1926) 님의 영향으로 인상파 풍의 작업을 하다가, 저를 만난 이후, 점묘법과 색채 이론을 함께 연구한 신인상주의의 리더라 할 수 있죠. 그는 특히 바다와 항구의 빛을 좋아했어요.
누쏠: 그런데..... 인상주의는 알겠는데요. 후기인상주의, 신인상주의... 이런 게 또 있잖아요. 이 신인상주의(Neo-Impressionism)이라는 말은 또 어떻게 생긴 거예요?
쇠라: 평론가 펠릭스 페네옹(Félix Fénéon, 1861~1944)은 저와 시냐크의 작업을 보고 ‘신인상주의’라는 이름을 붙여줬죠. 페네옹은 우리의 점묘법이 미술의 과학적 접근을 보여준다고 평가했습니다.
누쏠: 다른 작가들도 많은 영향받았을 것 같아요.
쇠라: 네. 반 고흐, 고갱, 마티스 같은 후기 인상주의 작가들은 점묘법 자체를 직접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색채 분할과 화면 구성의 질서, 실험정신에 있어 영향을 받은 건 분명해요. 또, 입체주의나 오르피즘 같은 20세기 초 미술 운동에도 저희의 과학적 색채 이론과 구조적 접근이 영감을 주었고요.
누쏠: (웃으며) 이 모든 실험과 변화의 중심에 ‘점’이 있었네요. 예술가로서 이런 실험, 두렵진 않으셨어요?
쇠라: 두려움보다 확신이 컸어요. 예술은 늘 새로워야 하니까요. 세상을 보는 방식도 바꿔야 하고요.
누쏠: 오늘도 깊은 이야기 감사합니다. <그랑드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 시카고에서 직관할 날을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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