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드림> - 작품 편
누쏠: 선생님, <조디악>으로 정말 인기 절정이셨잖아요.
무하: 하하, 정말 그랬죠. 파리 전역에 제 포스터가 붙고, ‘무하 스타일’이라는 말까지 생겼으니 말이에요. 그런데, 명성이 높아질수록… 마음 한구석이 허전하더군요.
누쏠: 그 허전함이 <데이드림> 같은 작품으로 이어진 거 맞죠?!
무하: 맞아요. 1897년의 <데이드림>은 아름다움에 대해 새롭게 질문해 본 작품이었어요. 단순한 장식화가 아니라, ’이 시대를 살아가는 여성은 어떤 존재인가?’에 대한 저만의 대답이기도 했고요.
누쏠: <조디악>도 그렇고 <데이드림>도 그렇고 선생님 그림 속 여성들은 확실히 달라요. 그저 수동적인 존재가 아니라, 당당하고 고요하게 세상을 바라보는 느낌이랄까…
무하: 전 항상 그런 여인을 그리고 싶었어요. 제가 사라 베르나르에 대해 이야기 한적 있나요? 사라 베르나르(Sarah Bernhardt, 1844–1923)는 당시 ‘여신 사라‘라고 불리며 만인에게 사랑을 듬뿍 받던 프랑스의 독보적인 여배우였죠. 신의 목소리를 지닌 여인이라 평가되며 뛰어난 발성과 연기력을 갖추었던 배우였는데... 그녀와의 첫만남이 생각나네요.
(파리, 1894년 어느 늦은 오후. 연극 《지스몽다》 초연을 앞두고)
사라 베르나르: (화가 잔뜩 나서) 이럴 수가! 포스터가 없다니요? 초연이 내일인데, 도대체 누가 그릴 거죠?
인쇄소 직원: (조심스럽게) 저기… 여기 신인 아티스트 한 분이 계시는데, 한번 맡겨보시겠습니까? 이름이… 알폰스 무하라고 합니다.
무하: (살짝 긴장하며) 베르나르 부인, 제게 기회를 주신다면 후회하지 않으실 겁니다.
사라: (의심스러운 눈빛) 좋아요. 단, 딱 2주입니다. 절 실망시키지 마세요.
무하: 그녀는 그냥 배우가 아닌, 제가 추구하던 ‘주체적 예술을 실현하던 인물’이었어요. 저는 정말 열심히 작업을 했고, 그녀도 저의 작품을 맘에 들어하며 거의 6년 가량을 호흡을 맞추며 일을 했었죠.
누쏠: 아하! 아르누보의 전성기와도 맞물려 베르나르와 무하!! 두 예술가가 대중미술과 순수미술을 잇는 교두부적 역할을 했던거군요. 그것도 파리의 전성기에 말이죠. 와, 정말 멋져요.
무하: 네, 파리에서는 만국박람회가 열리고, 에펠탑이 세워지고, 모든 게 변화했어요. 저는 그 속에서 “예술은 모두를 위한 것”이라는 윌리엄 모리스의 말을 되새겼죠. <데이드림> 같은 작품은 ‘일상과 예술의 경계’를 허무는 시도였어요.
누쏠: 그러고 보면, 선생님 작품엔 정말 일상이 특별하게 그려져 있어요. 꽃을 들고 있는 여인, 흐드러지는 머리카락, 패턴과 선들까지… 마치 그 순간의 생각과 감정이 피어난 것 같아요.
무하: 맞아요. 계속해서 말하지만 전 단지 예쁜 그림을 그리고 싶었던 게 아닙니다. 사람들의 꿈, 기대, 그리고 시대의 기류를 담고 싶었어요.
누쏠: 그림 속, 여인의 눈빛이 오래 남아요. 그 시절 뉴우먼(new woman) - 당당하고 독립적인 파리의 여성들이 상상되네요.
무하: 정확해요. 당시 여성들은 사회적 변화를 꿈꾸기 시작했어요. 제 그림 속 여인들은 그냥 ‘장식’이 아니라, 시대의 징후였어요. 사라 베르나르처럼요.
누쏠: 이제 이야기를 체코로 돌려볼까요? 선생님은 결국 고향으로 돌아가 <슬라브 서사시>라는 거대한 작업을 시작하셨잖아요.
무하: 예. 프랑스에서는 명성을 얻었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늘 저의 고국 체코가 있었습니다. “내가 진짜로 남겨야 할 것은, 내 민족을 위한 예술이다.” 이 생각이 늘 마음속에 있었죠.
누쏠: 그 결심이 바로 <슬라브 서사시(Thr Slave Epic)>로 이어진 건가요?
무하: 그렇습니다. 1910년, 고향 프라하로 돌아가, 무려 20년에 걸쳐 20점의 대작을 완성했죠. 슬라브 민족의 역사, 고난, 신화, 그리고 미래에 대한 희망까지… 그 모든 걸 이 안에 담고자 했습니다.
누쏠: 20점, 20년이라니! 그야말로 ‘예술가의 서사’네요. 그런데 이 작품은 파리에서의 아르누보와는 다른 세계에요.
무하: <슬라브 서사시>가 그저 과거의 역사를 재현만 한 것은 아닙니다. 전쟁과 억압, 문화의 단절 속에서도 꺾이지 않았던 우리 민족의 정신을 기록한 겁니다. 예술은 단순한 아름다움이 아닌, 민족의 정체성과 자긍심을 형성할 수 있어야 하거든요.
누쏠: 그리고 실제로, 선생님의 작품은 체코슬로바키아 독립 이후 공공 시각 디자인까지 연결됐죠?
무하: 네. 국가 문장, 우표, 지폐 디자인까지 맡게 되었어요. 예술이 국가의 정체성을 디자인한다하는 걸 실감했고, 저는 자긍심과 함께 책임감을 느꼈어요.
누쏠: 1차 세계대전, 그리고 그 이후의 시대는 어땠나요?
무하: 모든 것이 흔들리던 시대였죠. 전쟁, 폭력, 무너지는 국경… 하지만 저는 그 속에서도 ‘예술이 사람을 연결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누쏠: 그 믿음이 선생님을 끝까지 움직이게 한 거군요.
무하: 맞아요. 저는 예술가이자, 교육자이자, 저항자였습니다. 나치 점령기엔 <슬라브 서사시>가 탄압받고 숨겨졌지만, 지금은 체코 국민의 문화적 자산으로 살아남아 있습니다. 예술은 기억입니다. 우리 민족이 존재했다는 증거이고요.
누쏠: 마지막으로 여쭤볼게요. 선생님이 꿈꾸신 예술은 무엇이었나요?
Art is eternal. It speaks to the soul, not to fashion.
Beauty belongs to everyone.
예술은 영원하다. 유행이 아니라, 영혼에 말을 건다.
아름다움은 모두의 것이다.
### 본 매거진은 크라우드펀딩 (텀블벅) 후원을 통해 제작된 아트카드에 등장한 작가와 작품 이해를 돕기 위해 해설을 위해 발행되었습니다. 곧 스마트스토어를 통해서도 구매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