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두아르 마네 (1832-1883) - 작가 편
누쏠: 마네 선생님, 안녕하세요. 오늘 이렇게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한국의 독자분들께 선생님의 인터뷰를 들려드리게 되어 영광입니다.
마네: 네. 저도 동아시아의 예술에 대해 관심이 많았는데, 이렇게 한국의 독자들을 만나서 반갑습니다.
누쏠: 선생님은 화가로서 엄청난 성공을 거두셨습니다. 그 유명한 인상주의자들도 선생님에 대한 존경을 아끼지 않았는데요. 선생님의 성공의 비결! 150년이 지난 지금 공개해 주실 수 있나요?
마네: 사실 전 성공과는 거리가 먼 사람입니다.
누쏠: 누구보다 자신의 이름을 전 세계 미술에 남기신 분이요? 에이, 지나친 겸손 아니실까요?
마네: 전 어린 시절 해군학교 입학에 두 번이나 떨어졌습니다. 뭐, 그 결과로 토마 쿠튀르(Thomas Couture, 1815-1879) 선생께 미술을 배울 수 있었죠. 6년간의 수학 기간 중 기본적인 기술을 습득했으나... 선생님과는 사이가 멀어졌지요.
누쏠: 그럼 좋은 선생님 아래에서 스스로의 미술을 찾으신 거군요! 저도 쿠튀르 선생에 대해선 들어본 적이 있습니다.
<타락한 로마인들>로 살롱에서 큰 성공을 거두셨죠. 쿠튀르 선생께 많은 것을 배우셨군요?
마네: (난감해하며) 음... 배은망덕하다고 하실지 모르겠지만... 이 시기 제게 스승은 미술관이 아닐까 싶습니다.
누쏠: 미술관이요?
마네: 네, 미술관에서 전 이미 작고하신 수많은 거장들을 만날 수 있고, 그들의 작품을 통해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었죠. 루브르 박물관에서 틴토레토 선생과 티치아노 선생과 같은 이탈리아의 거장들을, 그리고 루벤스와 같은 플랑드르 거장의 작품을 감상하고 습작하며 저만의 미술을 찾아갈 수 있었죠. 이후에도 유럽의 이곳저곳을 다니며 곳곳의 미술관과 박물관을 방문하며 제 눈으로 직접 걸작들을 마주하고 배워나갔습니다.
진실은 하나뿐입니다. 눈에 보이는 것을 그리세요. (에두아르 마네)
누쏠: 모든 작품이 선생님의 스승이었겠군요. 선생님께 가장 큰 영향을 준 예술가는 누구일까요?
마네: 뭐, 앞서 말한 틴토레토, 티치아노 선생뿐 아니라 루벤스, 렘브란트, 벨라스케스, 프란스 할스 등의 선생들이 있죠.
누쏠: (사악하게 웃으며) 정말로 쿠튀르 선생의 이름은 없군요?
마네: (입을 삐죽이며) 집요하시군요. 저는 1859년에 작품 하나를 완성했습니다. <압생트 마시는 사람>이라는 작품이죠. 벨라스케스 선생님 작품에서 큰 영향을 받았습니다. 제가 "화가 중의 화가"로 생각하는 분이죠.
하지만 쿠튀르 선생은 제 작품을 이해하지 못했죠. 제가 살롱에 이 작품을 출품했을 때, 단 한분만 그 가치를 인정해 주셨죠. 들라크루아(Eugène Delacroix, 1798-1863) 선생을 제외한 모두가 거부하여 전시가 거부되었죠.
누쏠: 음. 딱 봐도 쿠튀르 선생의 작품과는 확연히 다르군요. (안타까워하며) 그래도 전시가 거부되다니 충격이 크셨겠습니다.
마네: (대수롭지 않은 듯) 충격이라기보다는 짜증이 났죠. 제가 바라보는 시대와 그들이 바라보는 시대가 달랐다고나 할까요. 뭐... 인상주의 후배들이 나서서 제가 바라보는 세계를 옹호해 줬죠.
누쏠: 선생님은 당시를 어떤 시대로 바라보셨죠?
마네: 쿠르베 (Gustave Courbet, 1819-1877) 선배가 시도한 '사실주의(Realism)'의 시대죠. (웃으며) 쿠르베 선배는 출품을 거절당하는 쪽에 있어서도 '선배님'이시죠. 허허.
누쏠: 어쩐지 선생님의 <압생트 마시는 사람>이 쿠튀르 선생과는 다르게 일상적인 모습을 주제로 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인상주의 예술가들이 '일상'을 주제로 삼은 것이 선생님의 영향이 컸겠군요.
마네: (어깨를 으쓱하며) 그건 그분들께 여쭤보시죠.
누쏠: 나눌 이야기가 너무 많지만 한 가지만 더 여쭙고 다음 시간에는 작품에 대해 다루어야겠습니다. 너무 아쉽네요.
마네: 기회가 되면 또 만날 수 있겠죠.
누쏠: 마지막 질문은 '스캔들'입니다. 다음 시간에 다룰 <풀밭 위의 점심식사> 뿐만 아니라 <올랭피아>는 당시 엄청난 스캔들을 일으켰습니다. 선생님은 이 작품들로 엄청난 비난과 조롱을 받으셨는데 어떠셨나요? 좀 민감한 질문인가요?
마네: (여유 있는 웃음으로) 프랑스에는 이런 속담이 있죠. "멍청한 질문은 없다. 다만 멍청한 대답이 있을 뿐." 질문은 늘 환영입니다. 위의 두 작품은 당연히 살롱에 출품하지 못했죠. 당시엔 출품이 거부된 작품을 전시하는 낙선전(Salon des Refusés)이라는 것이 있었죠. 그곳에서 비평가들은 "저속하며 부도덕"하다고 비난했습니다. 제 그림에서 전통적인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없었을 테니까요.
누쏠: 그래도 상당히 힘드셨을 거 같습니다. 어떻게 이겨내셨죠?
마네: 저도 낙담했습니다. 저를 지지해 준 이들의 도움도 컸습니다. 들라크루아 선배와 샤를 보들레르와 같은 시인은 누구보다 제 미술의 가치를 알아줬습니다. 특히 보들레르가 보내 준 편지는 감동이었습니다.
나는 당신의 가치를 보여주고 싶습니다.... 당신이 이런 상황에 처한 첫 번째 사람이라고 생각합니까? 당신은 샤토브리앙과 바그너보다 천재적인가요?... 그들은 그것으로 죽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다양한 세계에서 모범이 되는 사람들입니다. 당신이 이제 예술적 쇠퇴의 첫 번째 단계에 있을 뿐입니다. 제가 당신을 무례하게 대하는 것을 원망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당신이 제 우정을 알듯이 말입니다.
누쏠: 매운맛의 위로 같습니다.
마네: 젊은 작가 에밀 졸라라는 친구는 한 일간지(L'Événement)에 제 그림을 옹호하는 기사를 올려주기도 했죠. 저에 대한 전기적, 비평적 연구를 할 정도로 진지한 친구였습니다.
누쏠: 그 에밀 졸라 선생님이... 뭐라고 옹호하셨을까요?
마네: (쑥스러워하며) 직접 찾아보시는 게... 제 입으로 말하긴 민망하군요.
누쏠: 네. 그러면 에밀 졸라 선생님의 평으로 오늘 이 시간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참! 선생님도 한마디 남겨주셔야죠!
마네: 네.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나는 기분이 좋아지려면 일을 해야 해요.
누쏠: 여러 번의 실패와 타인의 비난에도 즐겁게 자신의 일을 해나가는 것이 선생님의 성공의 비결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마네는 시대의 취향이나 도덕적 감성을 고려하지 않고 오로지 진실만을 추구하는 예술가이다. (에밀 졸라)
타협하지 않는 기질을 지닌 사람이자 동시에 "시대의 아이", 과학자처럼 사실에 대한 정확한 관찰에 의지하는 "분석적 화가" (에밀 졸라)
### 본 매거진은 크라우드펀딩 (텀블벅) 후원을 통해 제작된 아트카드에 등장한 작가와 작품 이해를 돕기 위해 해설을 위해 발행되었습니다. 곧 스마트스토어를 통해서도 구매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