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전, 지인의 소개로 구매한 전주 상가. 경원동 상가는 나에게 특별한 의미였다. 당시에는 인기가 없어서 싼 매물로 나왔지만 나어릴 적 경원동은 전주의 중심이었다. 용머리 고개를 넘어 경원동으로 오면 그곳은 문화의 중심이었다. 그때만 해도 효자동은 논밭이 많았고 학교가 모자라 한 반에 아이들이 90명이나 되었다. 완전 옛날이야기 같다.
여하튼 경원동은 전주의 중심이었다. 매입 후 건물 보수 작업을 하고 임대를 내주었다. 지인은 오랫동안 카페를 하고 안 하고를 반복하며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계속 비워둘 수는 없었고, 매매냐 임대냐의 기로에서 나는 무모한 선택을 했다. 바로 서점을 시작하겠다는 의지였다. 지인에게 권리금을 주고 카페를 인수했고, 그리고 카페를 서점처럼 바꾸는 작업을 시작했다. 기본 골격은 그대로 두고 책과 테이블로 서점의 공간을 재창조했다.
과거에는 헌 책방이 많았다. 그런데 헌 책방은 조금씩 줄어들기 시작했고 지금은 얼마 남지 않았다. 그만큼 헌 책은 장사가 안되고 이윤이 적다. 가게를 운영하는데 쉽지 않았을 것이다. 거리는 점점 쇠퇴하기 시작했고 서점거리는 점점 그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다. 물론 홍지서림이라는 전주의 명소가 있기에 아직 서점 거리는 유지되고 있었다. 홍지 서림마저 사라진다면, 이곳은 그저 그런 골목길이 될 것이다.
다행히 홍지 서림은 계속 존재할 것 같다. 그런데 홍지 서림을 중심으로 주변에 더 많은 책방들이 생겼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요즘 유행(?) 하는 연남동 거리나, 연희동 거리, 상수동 거리처럼 이곳에도 작은 동네 책방들이 각자의 개성을 가지고 들어섰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물론 쉽지 않겠지만, 만약 이런 현상이 이뤄진다면, 동문길은 예전과는 다른 문화의 거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동문 서점은 3층 모습을 그대로 남겨 둠으로써 과거와 현재의 공존을 표현한다. 옛 모습의 흔적을 남겨 두는 것이 오히려 더욱 아름다운 가치가 아닐까? 그래야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 대해서 상상을 할 수 있지 않을까? 과거만을 집착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과거를 기반을 두어 현재를 보고 미래를 보자는 이야기가 맞는 이야기일 것이다.
이 한 겨울, 전주 동문길 114에서는 서점 실험을 하고 있다. 이곳에서 서점이 생존할 것이냐 아니면 그냥 사라질 것이냐는 무모한 실험이다. 비즈니스적으로 따지면 굳이 서점을 할 필요는 없다. 시세차익만 노리고 건물을 팔면 끝이었다. 하지만 가족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서점을 꼭 하고 싶었다. 마치 홍보 글이 무슨 주문 같은 기도나 되는 것처럼, 서점이 살아났으면 하는 작은 바람으로 연일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 염불을 한다.
많이 부족하지만, 작은 불씨의 노력이 누군가에게 장작불이 된다면 그건 분명 가치가 있는 일이다. 또한 현대인들은 책이 필요함을 절실히 느끼기 때문에 서점의 시작은 사회 운동과도 연장선 상에 있을 수도 있다. NGO 워커로서 일한 어쭙잖은 마인드 때문에 시작했는지도 모른다.
뉴스가 범람하고 유명 인사의 강연이 줄기차는 시대이다. 많은 사람들이 글을 쓰고 많은 책들도 쏟아져 나오는 시대이다. 하지만 정작 "읽는"사람은 부족하고 사실 "읽을"시간도 부족한 시대이다.
간편하게 정리된 핵심적인 내용만 필요하지 구구절절한 문장은 삶의 사치가 되어가고 있다. 그렇게 짧은 문장에 익숙해져갈 무렵, 사람들은 점점 읽는 것에 어려움을 느낀다. 읽는 것에 어려움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타인의 말을 듣는 것도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그렇게 사람들은 단편적 지식에 서로에 대한 적대감만 키울 뿐 그들의 내면에 존재하는 무의식의 세계는 들여다보지 않는다. 따뜻한 마음은 점점 사라지고, 자신만 살면 된다는 이기주의적 마음이 자리 잡게 된다. 문제는 이 이기주의가 물질과 만나면서 갑질의 형태를 보이기도 하고, 때로는 상황에 따라 분노의 공격성으로 드러나기도 한다. 그렇게 사람들은 자신의 내면과 타인의 내면을 보기보다는 사회에 대한 적대감과 자기 공격적 태도로 스스로를 파괴하고 있다.
책은 우선 정리가 된 글이다. 어떤 사람도 책을 정리가 안 된 상태에서 출고하지 못한다. 그런 책을 출고할 출판사도 없다. 정리가 된 책은 사유를 하는 힘을 길러준다. 그래서 무언가를 바라볼 때 한번 더 생각하게 하는 힘을 길러 준다. 설령 그 순간에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할지라도 언제 가는 다시 자기 자신을 돌아보는 거울을 들이내민다. 인간이 저승에 가며 자신의 '업경'을 통해 과거를 돌아 본다고 하듯이 책은 살아생전에 자신을 돌아 보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굳이 저승까지 가지 않아도 된다.
분노는 정치인의 가장 좋은 수단이다. 정치인은 대중의 분노를 이용하여 자신의 권력을 잡고 그 권력을 자신의 욕망을 채우는데 사용한다. 적절한 선에서 그것을 제어한다면 매우 좋은 정치를 하겠지만, 그것이 개인의 나르시즘과 연결되어 권력을 남용한다면 그것은 파시즘으로 몰아가기 쉬운 비극을 낳게 된다. 역사는 이를 충분히 증명하고 있고, 현재에도 이 위험한 수단은 모든 정치인들의 마음속에 꿈틀댄다.
그렇다면 왜? 책이 필요할까? 책은 우선 분노하기 전에 생각에 잠기게 한다. 그리고 문제를 보는 시선에 있어 비판적 사고 능력을 길러 준다. 그것은 단순히 사회적 경제적 관점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개인의 정서나 일상의 심리, 대인 관계 등 삶의 영역에서도 사유할 수 있는 비판적 사고를 길러 준다. 그래서 인간은 스스로 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고 그 해답을 중심으로 삶을 영위해 나간다.
많은 콘텐츠가 쏟아져 나오지만, 생각을 하게 하는 콘텐츠보다는 그저 스쳐 지나가는 정보의 스킵만을 요구하는 콘텐츠가 대부분이다. 이는 많은 지식을 가진 것 같은 헛배를 부르게 한다. 결국 시간이 조금만 지나도 금방 배가 고파지는 음식처럼, 진정한 영양소들은 제대로 구성되지 않는 정보들의 집합이다. 결국 내면의 자아와 사회를 보는 비판적 사고가 그만큼 줄어들게 된다.
그래서 책이 필요하다. 책상에 앉아 책을 읽는다는 것. 쉽지 않다. 일상의 바쁨 속에서 책을 읽는 과정은 고뇌다. 그리고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는 행위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 조금씩 양파 껍질처럼 벗겨지는 자신의 모습을 만날 수 있다. 그래서 책은 사실 하기 힘든 운동처럼 처음에는 쉽지 않지만 결국에는 중독이 되는 운동이 될 수도 있다.
동문 서점은 책 문화에 대해서 관심이 많고, 그래서 시작한 서점이다. 비록 지금은 많은 분들이 오지 않고, 구경만 하시고 가시는 분들이 많지만, 언제 가는 진짜 인간이 필요한 지식에 대한 갈증으로 동문 서점에 사람들이 붐비는 상황을 기대한다. 그런 기대심으로 오늘도 책에 대한 생각들을 나열하고 있지는도 모른다.
동문길 114, 전주 객사 거리 근처. 홍지서림 길. 전주 동문 서점이 열려 있다.
동문 서점
동문 길 114
전주시 완산구
오후 11시~09시 저녁 서점 (화~토 운영, 일 월 휴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