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예의 길 / 집단 속에서 지키는 개인의 자유

by HR POST



노예의 길. 자유 경제 체제의 선구적인 경제학자이자 철학자 하이에크. 그의 책을 읽어 본다.

그의 책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집단'이라는 개념을 이해해야 한다. 집단의 목표 아래 개인의 자유가 얼마큼 보장되는지, 집단의 도덕성은 개인의 도덕성과 일치하는지, 집단 속에서 개인의 보상은 얼마나 이뤄지는지, 집단의식이 배타성을 띠고 있지는 않는지, 집단의 부정적 함의가 크지는 않는지, 집단 속에서 개인의 목표는 인정이 되는지, 이 모든 질문의 끝에 사회주의 사상이 가져다주는 "노예의 길"이 예견된다.


노예의 길


노예의 길이란 무엇인가? 간단히 말하면, 집단의 패러다임 속에서 잃어버리는 개인의 의미다. 1900년 초반에 있었던 역사적 사실을 근거로 집단의식이 어떻게 민족 사회주의로 이어지는지, 독일과 영국 비교를 통해 설명한다. 경쟁 없는 사회주의가 가져다주는 개인의 자유 제한은 오히려 경제를 후퇴시킨다고 그는 말한다. 그가 말하고자 하는 심오한 내용을 한번 읽어서는 이해할 수 없다. 하지만 자유와 연결되는 부분들을 이해하고 시장에서 개인의 자유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느낀다면 책의 의미는 충분할 것이다.


이 책이 현대 사회에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


'사회주의다. 자유주의다. 신자유주의다.' 등 다양한 의견이 분분하다. 그런데 '과연 어떤 것이 맞을까?'라는 의문점에 답을 내릴 수 없다. 신문 보도에서 연일 신자유주의는 비난받아야 한다고 말하지만, 왜? 비난받아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이야기하는 사람은 드물다. 빈부격차. 기득권. 가진 자들의 횡포. 등의 다양한 수식어가 붙지만, 그 반대편 이야기를 들으면 또 다른 합리적인 기준과 의견들이 존재한다. 그래서 자유주의를 비판하는 부정적 인식에 설득력을 느끼지 못할 때가 있다.

책 내용 중에 기억에 남는 구절이 있다. "사회주의 자체가 배타성을 띨 때, 과연 이 사회주의가 사람을 위한 것인지, 집단의 통일된 목표를 위한 노예의 길인지 분별해야 한다."라는 내용이다. 집단의 통일된 목표는 개인의 사상과 개인의 자유를 인정하지 않는다. 그만큼 위험한 사회는 없다. 집단의 도덕성이 마치 무조건 상위에 있는 것처럼 여기고, 개인의 도덕성을 제단하고 처벌한다면, 그것은 무서운 전체주의로 사회가 이어질 수 있다.

세상을 살다 보면, 집단 속에서 갈등하는 '나' 자신을 만날 일이 있다. 집단의 목표에 대항하면 개인을 상실하는 경우가 있다. 이때 집단에 새로운 목표를 제시하거나 딴지를 걸면, 집단 속에서 개인의 자유는 상실된다. 사실 집단 속에 개인이 갖는 가장 큰 스트레스가 아닐까?

'사회주의다. 자유주의다.'라는 큰 담론의 장을 떠나. 개인에게 단순하게 "너는 자유롭니?"라고 물을 때 "응 자유로워"라고 말하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현재에 와서 이 책이 갖는 가장 큰 의미는, 지금 나를 위한다는 집단의 목표나 국가 정책, 대중 철학이 과연 나의 자유와 얼마나 연결되어 있냐는 의문점을 갖는데 있다.


계획하다?


궁극적으로 국가나 사회에 있는 알레르기가 있다. 그건 바로 무언가를 그들이 계획하고 그들의 계획 아래 나 자신을 몰아붙이는 것이다. 나의 개인적인 생각이나 자유로운 생각이 그들의 규제와 그들의 계획 아래서 막힐 때, 그것이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지를 생각해 본다. 가끔 사회 내부 구조를 들여다보면, 거대한 국가 밑에 존재하는 또 다른 집단의 힘이 새로운 시장의 진입을 막는 것을 보았다. 표면적으로는 사회를 위한(?) 규제라고 하지만 그 규제 안에 존재하는 집단의 이익을 대변할 뿐 나를 위한 공평한 규제는 아니었다. 그 모습을 보면 과연 국가의 계획이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는지 의심스러울 때가 많다.

전체를 위한다는 국가의 도덕성이 개인에게 너무도 잔인하게 폭력적일 때, 사람들은 그 계획 아래서 "노예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결국 나 자신이 공통된 사회의 목표를 위해 희생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사회의 노예가 되지 않기 위해 개인은 집단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날카롭게 가지고 있어야 된다.


커다란 자본


개인적 의견으로는,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는 상대적인 개념이기보다는 별도의 철학에서 출발한 별개의 개념같이 보인다. 자본의 구조, 즉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차이로 인해, 사회는 사회주의 노선을 택해야 했고, 그 사회 주의 노선에서 분배의 정의를 이뤄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이 주장의 원칙은 자본의 한정적 통화량에 제한되어 분석하는 느낌을 받는다.

즉 하이에크가 말한, 사회주의는 '사회주의 체제 틀 안에서 배타성을 갖는다.'라는 말과 연결되는데, 즉 사회주의는 다른 사회의 모습을 인정하지 못하는 스스로의 모순에 봉착하게 된다. 그것은 모두를 위한 체제라고 하지만, 결국 배타성을 가진 체제라는 한계를 드러낸다. 그래서 그 배타성 속에서 발생하는 공통된 목표에 대한 집단의 움직임은 개인의 자유를 제한할 충분한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음을 깨닫는다.

결국 신 자유주의나, 자유주의가 비난받는 가장 큰 이유는 "왜 너만 잘 사냐?"라고 압축될 수 있는데, 그 안에는 "차이"라는 개념. 즉 "계급"이라는 개념을 주장한다. 마르크스가 주장하는 "계급론"이 여기에서 적용된다. 하지만 이 "계급"이라는 용어도 자본의 많고 적음을 이야기하는 것이지 사람의 존엄성에 대한 계급으로 정의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결국 사람의 계급이란 누군가 만들어낸 용어에 불과하다는 느낌을 지우지 않을 수가 없다. 오히려 계급이라는 단어에 매몰된 사람들은 자신이 자본을 더 가지고 있을 때 자본을 덜 가지고 있는 사람을 '너 나보다 계급이 낮아'라는 천한 우월성을 보인다. 또한 반면에 자본이 없는 사람들이 열등감을 가지고 자본가에 대해서 분노하기도 한다. 결국 계급 차이 인정은 열등감과 우월감의 공존되는데, 이 계급의 차이라는 기준이 결국 '돈'이라는 관점이라는 것이다.

절대적 빈곤을 제외한 모든 사람의 존엄성은 자본의 많고 적음에 있지는 않기에 이 계급에 대한 정의는 필요하지 않다. 오히려 자본의 많고 적음에 관계없이 인간 존엄성이 존중되고 스스로 존재감을 높여야 한다. 하지만 사회주의가 스스로의 자존감을 낮추는 경향이 있는데, 바로 자본 소유에 대한 계급론에 기반한 생각 때문이다. 인간의 존엄성은 자본에 평가되어서는 안 되고, 자본에 의해 평가하는 사람들에게 당당히 존엄성을 주장해야 한다.


개인의 자유


그렇다면 개인의 자유라는 입장에서 모든 독점기업과 자본은 자유로울 수 있을까? 그렇지는 않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정부와 권력, 그리고 기업의 관계는 늘 유기적인 관계로 존재한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점은 '개인의 자유가 얼마큼 보장되는가'이다. 여기서 개인이란, 단 '한 사람'을 의미한다. 기업이라는 집단도 아니고, 국가라는 상위 개념도 아니다. 그저 단 '한 사람. 그 한 사람'에 대한 시선이다.

과연 오늘날 개인의 자유는 얼마나 보장되고 있을까? 나의 삶에서 보장되는 자유란 무엇인가? 집단의 통일된 목표 속에서 자아를 잃어버리고 있지는 않은가? 자본이라는 굴레 속에서 자신을 발견하지 못하고 있지는 않은가? 어쩌면 자유를 잃어버린 노예의 길로 가고 있지는 않은가? 잘 생각해야 한다.

'노예의 길'은 오래된 책이지만, 인간 자유에 대한 사회, 경제, 정치적 철학 책으로 현재에 읽어 볼 가치가 충분하다. 현대 사회의 다양한 문제를 더 넓은 시각으로 분석할 수 있는 힘을 준다. 동문 서점에 몇 권 없다. 지금 다시 책을 입고하려고 해도 쉽지가 않다. 그래서 고민된다. 좋은 책이지만, 이윤이 남지 않는 책. 그 안에서 과연 서점은 어떤 책을 고객들에게 제시해 줄 것인가? 책을 파는 출판사에서 조금만 더 공급률을 준다면 좋겠다. 그 점이 좋은 책을 소개하지 못하는 동네 서점의 한계로 다가오기도 한다. 인터넷을 통해서라도 구입하길 추천드린다.


동문 서점






keyword
작가의 이전글출판사가 사는 길... 동네 서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