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제를 고발하다.
담담한 일상 속에서 북한 현실에 대한 고발을 시작한다. 책은 화려한 전개를 보여주지도 않고, 심각한 이야기를 자극적으로 서술하지도 않는다. 매우 일상 속에서 일어날 수 있는 차별과 억압 그리고 거짓을 말한다.
약간의 지위를 이용하여 자신의 힘을 부정에게 사용하려는 사람, 당원이라는 지위가 필요한 세상에서 가장 불평등한 북한의 사회, 100만 군중도 지도부의 한 마디에 우르르 모이는 평양의 모습, 열심히 일해도 누군가의 시기로 인해 하루아침에 반동분자가 되는 사업 현장, 북한의 일상을 7편의 단편을 통해서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프롤레타리아 독재
책에서 새로운 단어를 제시한다. "프롤레타리아 독재", 부르주아 독재가 아니라, 프롤레타리아 독재라는 새로운 용어다.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체재라는 공간 안에서 자신의 권력을 향유한다. 그리고 누군가를 억압하고, 착취한다. 그것이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정의다.
화려한 수식어와 프로파간다, 그리고 유토피아를 꿈꾸며 협동하기를 원하는 공산주의, 하지만 그 결과는 개인의 이기심으로 가득 찬 프롤레타리아 독재라는 괴물 같은 개념을 만들었다. 과연 북한은 처음에 그들이 주장한 데로 "더 좋은 세상"이 되었을까?
북한 체제는 매우 비정상적이다. 개인의 자유는 제한되며(이동의 자유가 없다.), 성공은 출신 성분에 따라 정해졌다. (노동당, 출신 성분) 이런 사회 속에서 사람들은 협동보다는 또 하나의 계급이 되기 위해 비열해진다. 자신의 작은 힘으로 아녀자를 성폭행 하려고 하고, 중앙당에서 시킨 커튼을 바꾸지 않았다고 살고 있던 평양에서 쫓겨나기도 한다. 어머니를 보기 위해 열차를 타지만, 끝내 어머니를 보지 못하고 만다. 빨간 독버섯처럼 자라난 북한의 모순은 사람들을 비극으로 몰아넣는다.
북한 주민들은 이 북한 체제를 스스로 고발한다. 하지만 이 체재 안에서 지금도 신음하고 있다. 과연 북한의 체재는 무엇일까?
북한의 변화
정권이 바뀌고, 올림픽을 치르면서 남북화해 모드는 점점 좋아지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북한과 남한 그리고 미국과의 관계는 오리무중이다. 북미 회담을 통해 많은 기대를 가지고 살게 되었지만, 실질적인 변화의 모습은 매우 더디기만 하다.
북한은 핵무기를 포기하는 대신, 체재 보장과 경제적 지원 약속을 원한다. 하지만 선 핵 포기, 후 핵 포기라는 서로 다른 기조 때문에 여전히 평화 모드의 진전은 모호하다.
과연 북한 체재 변화는 어떤 것일까? 한 나라의 주권을 인정해 주지만, 남과 북의 통일이라는 개념이 불쑥 들어오면, 그곳엔 북한 체재에 대한 이해가 결여된다. 북한 체재는 어떤 체재일까? 북한 주민들은 목숨을 걸고 탈북을 하고, 대외적으로 북한을 고발하고 있다. 북한은 어떻게 생각할까? 그들의 체재는 공포와 억압, 차단과 차별로 유지할 것인가? 그리고 그것이 언제까지 가능할 것인가?
"고발"을 읽으면 가슴 깊은 곳에 솟구쳐 오르는 뜨거운 감성이 있다. 애국심인지? 인류애인지 몰라도,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북한 체재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개인적 시각이다. 과연 그 체재가 옳은 것일까? 변화 가능성이 있을까? 누군가 내게 체재에 대한 이해를 구한다면, 그 사람에게 반디의 "고발"을 추천할 것이다.
가슴 아픈 북한 주민들 이야기에 마음이 먹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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