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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다빈 Sep 22. 2021

1년차 80% 지지율을 살렸다면


  문재인 대통령 취임 1년이었던 2018년 5월 10일 당시 더불어민주당 출입기자였던 필자는 대선 1주년의 소회를 남긴 글을 썼습니다. 남북관계를 비롯해 그때와 지금의 현실은 많이 달라졌지만 당시 글을 편집 없이 그대로 인용합니다. 그의 마크맨 출신으로서 문 대통령이 성공한 대통령으로 남기 위해 고민했던 부분을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많은 우려가 현실이 된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문 대통령이 청와대에 입성하기 전까지 마크맨으로 약 1년을 함께 했다. 그와 함께했던 기자로서 당시의 소회와 함께 지금까지의 평가를 기록을 남겨보려고 한다. 이미 여러 사람들의 복기가 있었지만 주관적 입장에서 글 하나를 보태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총평을 해보면 문 대통령은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잘하고 있다. 거의 매일 그를 따라다니고, 질의응답을 하면서 문재인이라는 사람에 대한 믿음은 있었지만 그와 그를 도왔던 이들이 집권했을 때 어떤 성과를 낼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있었다. 특히 후보 시절 남북관계에 대한 획기적인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고, 사드 문제로 입장이 조금씩 흔들렸던 것을 생각하면 남북관계를 비롯한 외교 전반에 있어서의 성과는 놀랍다. 


  파탄 직전의 남북관계에 봄바람이 불어오고 있다. 중국과의 사드 마찰도 비교적 슬기롭게 극복했다. 올 초까지만 해도 ‘코리아 패싱’이란 신조어가 유행했으나 지금은 운전대에 앉아 미국, 북한, 중국, 일본을 견인하고 있다. 북미 정상회담이 성공적으로 진행되고, 완전한 핵폐기와 평화협정으로 이어진다면 한반도의 역사는 새로 쓰이게 될 것이다.


  국민 소통도 성공적이다. 그는 국민과 눈높이를 맞출 줄 아는 사람이다. 군림하는 대통령이 아니라 내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줄 것이라는 믿음을 준다. 대통령으로서 세월호, 광주 5.18, 제주 4.3 사건 등 우리 역사의 아픔을 달래줬다. 말하기보다 듣기를 좋아하는 그의 ‘경청 리더십’은 사람들에게 신뢰와 안정감을 준다. 현상이 바람직한지를 떠나 시민들이 억울한 일이 있을 때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을 찾는 건 우연이 아닐 것이다. 일부 문 대통령을 싫어하는 사람이라도 그가 선한 사람이라는 데는 대체적으로 동의하고 있다고 본다. 



2018년 1월 대통령 취임 후 첫 생일을 맞은 문 대통령을 축하하는 지지자들의 지하철 광고. 문 대통령에 대한 시민들의 기대가 한참 높았던 시절이었다. ⓒ필자 촬영


  다만 지금같이 하늘 높은 인기가 영원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대통령의 매력과 소통, 외교 분야에서의 성과, 전임 정부의 실정 등이 지지도를 떠받치고 있지만 정치, 경제 분야에서의 미진함이 발목을 잡을 수 있다.


  정치 분야부터 보자. 야당 대표들을 청와대로 불러서 소통을 하고, 여야정협의체 구성을 제안하는 등 외형적으로 협치의 노력이 있었다. 하지만 실제 협상 과정이나 메시지에서는 옳고 그름의 관점으로 야당을 대하고 있다. 개헌, 권력기관 개혁, 추경 등이 있을 때마다 청와대의 안을 던져놓고 이것이 옳다고 여론전을 하며 야당을 압박하고 있다. 이런 태도는 위험하다. 선의가 아니라 결과의 뛰어남이 좋은 정치라는 게 필자의 믿음이다.


  물론 대통령과 청와대의 이런 태도는 야당의 허약함에서 비롯된 측면도 있다. ‘반대를 위한 반대’에 몰입하거나 전략 전술도 없이 뻗대는 태도는 박수를 받을 수 없다. ‘민주당 최고의 선거운동원이 홍준표’라는 말이 왜 나오는지 그들 또한 깊이 성찰해야 한다. 하지만 민주주의의 기본은 견제와 균형이다. 야당 없는 정치는 바람직하지 않다. 그간 숱한 선거에서 보듯 ‘권불십년’이다. 집권세력의 독주가 계속될수록 이를 견제하려는 심리도 쌓이게 된다. 한국사회의 작동원리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고 본다. 


  또 야당의 실책을 지적하려거든 존재감 없는 민주당의 상황도 짚어야 한다. 높은 정당 지지율 이면에 숨겨진 민주당의 허약함을 봐야 한다. 민주당에서 정치를 하는 의원이 사라지고 있다. 대통령의 우산 속으로 들어가 안온함을 즐기려 한다. 치열함이 사라진 거수기가 되고 있다. 대통령이 당을 대하는 태도도 비슷하다. 문 대통령은 당선 직후 국회를 찾아 ‘민주당 정부’를 선언했었다. 1년이 지난 지금 현 정부가 민주당 정부라고 믿는 여의도 사람은 없는 것 같다.


  민심을 읽고, 해답을 내놓는 것은 청와대보다 정당이 빠를 수밖에 없다. 민주당이 자체적인 정책 이슈를 만들어내고 민생의 현장에서 치열하게 뛰어야 한다. 사안이 있을 때마다 청와대의 뜻을 묻는 게 아니라 내부에서 가열차게 토론하고 답을 찾아야 한다. 열린우리당 시절 분열과 당 내부 갈등으로 지탄을 받았던 트라우마가 있는 것을 알겠지만 그렇다고 열정까지 식어서는 안 된다.


  경제는 이 정부의 성패를 좌우할 핵심 분야다. 이제 취임 1년인 만큼 평가가 이를 수는 있지만 현재까지 성적표는 썩 만족스럽지 않다. 소득주도 성장, 일자리 중심 경제, 공정 경제, 혁신 성장. 문재인 정부가 내놓은 4대 방향에서 아직 성과가 난 것이 없다. 대통령의 높은 인기로 인해 가려져 있을 뿐 현장에서는 경제정책에 대한 불만이 제법 존재하는 것 같다. 


  소득주도 성장의 핵심인 ‘최저임금 대폭 인상’은 선의를 가진 정책이 나쁜 결과를 낳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일률적인 적용으로 자영업자, 중소기업에서 아우성이 나오고 있다. 공공 분야 신규 채용을 확대하고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했지만 일자리 여건이 나아졌다는 증거는 없다. 세계 경기회복에 힘입어 지난해 3년 만에 3%대 성장을 회복했지만 취업자 수는 1.2% 증가하는 데 그쳤다. 청년 실업률은 역시 11.6%로 이후 2년 만에 가장 높다. 


  혁신성장은 사실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만큼이나 허황돼 보인다. 철강, 자동차, 조선업 등 한국사회를 지탱해온 엔진이 꺼지고 있다. 반도체 정도만이 선전하고 있는 상황에서 신성장 동력을 찾아야 하지만 요원하다. 돈을 쓰는 정책은 계속 나오지만 버는 정책은 쉽게 찾기 힘들다. 앞으로의 전망도 그리 밝지 않은 이유다.


  어쩌면 이런 결과는 예고된 것일 수 있다. 경제 분야에서 경험을 쌓고 실력이 있는 사람들이 문재인 캠프에 많지 않았다. 그나마 있던 사람도 떠났다. 대표적인 예가 김종인 전 대표다. 그는 당대표 시절 야당임에도 조선업 구조조정을 선도적으로 주장하고, 영국의 브렉시트 당시 금요일 밤에 기자들을 불러 시장에 큰 영향이 없다고 강연을 할 만큼 경제 분야에 식견이 탁월하다. 문 대통령이 당대표 시절 그를 영입했지만 결국 그는 ‘친문 패권’을 비판하며 문재인의 곁을 떠났다. 경제 분야에서의 인재 부족이 정부의 발목을 잡게 될 것이라는 걱정이 든다.


  문재인 정부의 성공을 진심으로 기원한다. 그의 바람대로 ‘성공한 대통령’이 돼 역사의 한 페이지에 남길 희망한다. 그가 퇴임한 후에도 그의 마크맨이었다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이야기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정치 분야에서 품을 넓혀야 한다. 권력은 나눌수록 커지는 법이다. 친문 세력의 폐쇄성을 극복하고, 야당과의 협치를 말뿐이 아니라 행동으로 실천해야 한다. 더 자주 만나고, 그들의 요구를 일정 부분 수용하는 여유를 가져야 한다. 민주당이 청와대의 하부기관이 되지 않고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공간을 열어줘야 한다. 


  경제 분야에서도 결국 인재와 철학의 문제다. 선의만으로 경제가 좋아지지 않는다. 실력 있는 인재와 함께 해야 한다. 쓴소리를 해줄 수 있는 사람이 더 필요하다. 경제를 실험 대상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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