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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다빈 Sep 22. 2021

'양념 발언'이 괴물을 낳았다


"치열하게 경쟁하다 보면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우리 경쟁을 더 흥미롭게 만들어주는 양념 같은 것이었다."(더불어민주당 문재인 대선 후보 2017.4.3)


  문재인 후보는 비문(비문재인) 진영 의원들을 향한 열성 지지자들의 ‘문자 폭탄’과 ‘18원 후원금’ 공격을 '양념'이라고 옹호한 적이 있었습니다. 당시 발언 현장에서 취재 중이던 필자는 저 말의 파급 효과를 즉각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저 문 후보 답지 않게 약간의 농담조로 비유를 써가면서 한 말에 웃음을 지었던 기억이 납니다.


  당 대표 시절 '비문' 진영에 크게 휘둘리던 문재인 후보는 2015년 당 개혁의 일환으로 온라인 권리당원 육성 계획을 밝힙니다. 그때 약 10만 명가량의 문재인 지지자들이 민주당에 당원으로 가입했고, 그때를 기점으로 민주당은 점점 친문 지자자 중심의 획일적 정당으로 변모해갔습니다. 양념 발언의 대상은 바로 이들이었죠.


2016년 8월 한 행사장에서 만난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당시  대선 후보 ⓒ필자 촬영


  물론 '그들만의 리그'로 전락한 여의도 정치에서 지지자들의 목소리를 반영하고, 참여정치를 실현한 것은 의미 있는 일이었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한 뒤 '문재인만은 지켜야 한다'며 나선 지지자들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할 바도 아닙니다. 하지만 무조건적인 문재인 옹호를 외친 그들의 목소리가 과잉 대표되면서 부작용은 커져 갔습니다. 상대당을 넘어 같은 당 의원들조차 반대 목소리를 내면 배신자로 규정됐고, 문자와 전화로 욕설이 이어졌습니다.

  

  민주당의 핵심 가치였던 민주주의가 실종되고, '나는 옳고, 너는 틀렸다'는 이분법적 사고관이 퍼져나가면서 정치에서도 점차 대화와 타협이 실종되기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소위 '조국 사태'를 거치면서 더욱 확대됐고, 대한민국은 서초동과 광화문 2개의 진영으로 쪼개지게 됐습니다. 그 사이에 합리적 의견을 가진 이들의 목소리는 묻혔고, 집단 광기에 지친 이들은 스스로 입을 다물게 됐습니다.


  문 대통령은 집권 이후에도 지지자들의 문자 공격, 온라인 상 혐오 발언에 대해 단 한 차례도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4년 반 정도가 지난 이 시점에서 돌이켜보니 당시에는 별 것 아니라고 넘겼던 '양념 발언'이 분열의 시초였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스스로를 '대깨문(대가리가 깨져도 문재인)'이라고 칭하는 이들이 거리낌 없이 활동하게 된 심리적 근거가 된 것이죠.


  문 후보가 당시 지지자들에게 "나를 비판하는 사람의 견해도 존중해줬으면 좋겠다. 그게 결국 민주주의가 성숙하는 길이다"라고 얘기했다면 어땠을까요. 어느 정치인도 자신에게 충성하는 극성 지지층의 달콤함을 뿌리칠 수 없을 겁니다. 하지만 유독 문 후보는 이를 더 자극하고, 키워간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파괴로 이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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