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가을, 옥천
첫 차가 생기면 꼭 하고 싶은 것이 있었다. 좋아하는 노래를 틀어 놓고 도로 위를 달리는 것, 그리고 내 차에 친구들을 태우고 여행을 떠나는 것. 운이 좋게도 전역 이후 2022년 늦봄, 삼촌이 타고 다니셨던 차를 받았고 내가 꿈꾸던 그림은 생각보다 빨리 현실이 되었다.
개강 직전, 진해에서 대전으로 차를 몰고 갔다. 혼자 운전한 것은 처음이었다. 3시간 반 정도 되는 긴 거리를 이동하는 동안, 내가 듣고 싶었던 노래들을 원 없이 들었다. 그전엔 항상 부모님이 차에 타 계셔서, 좋아하는 노래를 틀어 놓고 달리는 것도 처음이었다.
차가 생기면 여기저기 많이 놀러 다닐 줄 알았는데, 운전대를 잡기 전에 두려움이 앞서던 때라 차는 거의 주차장에서 자리를 지키고 있었던 때가 많았다. 친구들이 아니었다면, 아마 차를 주차장에서 끄집어내는 일이 더 적지 않았을까. 그랬으면 운전 실력이 더 쉽사리 늘지 않았을 것이다. 비교적 먼 거리에 있는 식당들로 운전을 해서 간 것이 시작이었고, 그다음으로 우리는 여행을 계획했다.
2020년 겨울, 맛있는 녀석들을 보다가 생선국수에 마음이 이끌려 인턴이 끝난 뒤에 옥천 여행을 계획했다. 분명히 가까운 거리였는데, 대중교통을 통해서 가려면 시간이 많이 걸렸다. 그럼에도 생선국수를 먹겠다는 일념 하에 옥천으로 가려했지만 코로나 확진자가 한 명만 나와도 겁을 먹던 당시에, 옥천에서 확진자가 나왔다는 뉴스를 접했고, 나는 마음을 접었다. 그때의 아쉬움이 생각이 나기도 했고, 아직 먼 거리는 부담스러워 옥천을 목적지로 정했다.
친구들을 차에 태우고, 점심을 먹기 위해 찐한식당으로 바로 향했다. 도착한 뒤, 먹고 싶었던 생선국수와 도리뱅뱅이, 생선튀김을 모두 주문했다. 도리뱅뱅이와 생선튀김도 맛있었지만, 생선국수의 진한 국물이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다. 영상 속의 비주얼만으로도 확신이 섰던 음식이었지만, 이렇게나 진한 국물일 줄은 상상하지 못했다. 음식의 맛도 훌륭했고, 가고 싶었던 식당에서 친구들과 함께 점심을 먹고 있다는 것도 좋았다.
더할 나위 없이 완벽했던 점심 식사였다. 단 한 가지, 차를 가져왔기에 술을 곁들이지 못한다는 점만 제외하고. 차가 생기고 나서 이동반경이 넓어진 것은 좋으나, 차를 가져간 날에는 좋은 음식에 술이 함께하지 못한다는 것이 항상 아쉽다.
배를 든든히 채우고, 상춘정으로 향했다. 어디를 갈까 검색해 보다가 상춘정을 찍은 사진이 마음에 들어 저장해 뒀는데, 역시 멋있었다. 잔잔하게 일렁이는 강물에 실루엣이 비치는 장면이 특히 마음에 들어 카메라에 담았다. 은하수 촬영을 위해 이곳을 많이 찾던데, 은하수와 별들이 밤하늘을 채웠을 때의 모습을 잠시 상상해 봤다. 조금 주위를 걷다가, 걸을 길이 마땅치 않아 금세 차로 돌아왔다. 다음에는 은하수를 담으러 와야겠다 생각하며 차에 시동을 걸고, 다음 목적지인 둔주봉으로 향했다.
둔주봉은 한반도를 닮은 지형이 마음에 들어 저장해 뒀던 곳이었다. 주차장에 차를 세워놓고 사진에서 보았던 전망을 찾아서 걷는데, 생각보다 멀었다. 날이 흐려서 쌀쌀하지 않을까 하고 두께감이 있는 후드티를 입고 왔는데, 날씨도 예상했던 것보다 더워서 땀을 뻘뻘 흘렸다. 산책보다는 등반에 가까웠지만, 사진 속 풍경을 마주한 뒤에 힘들었던 것들이 말끔히 씻겨 내려갔다. 우리나라에도 참 예쁜 곳들이 많구나.
땀도 흘렸으니 저녁 먹기 전에 쉴 겸, 부소담악 근처 카페로 향했다. 초보운전자에게는 벅찬 굽이진 길의 연속이었으나, 차창이란 프레임을 꽉 채우는 녹음과 슬쩍슬쩍 보이는 강 덕분에 힘들진 않았다. 푸르른 풍경들이 쌓이는 만큼이나, 옥천에 대한 애정도 점차 커졌다.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면서 휴식을 취한 뒤, 무탈한 여행에 안도하던 찰나에 문제가 생겼다. 다른 차가 굽이진 길을 따라 올라오는 것을 보고 차를 급하게 빼다가 길가의 벽에 부딪혔다. 쾅하는 소리를 듣고, 마음이 덜컥 내려앉았다. 그 순간 여러 걱정들이 머리를 순식간에 스쳤다. 두려운 마음을 안고, 길가에 차를 세운 뒤에 뒷면을 확인했다. 다행히 차는 너무나도 멀쩡했다. 운전대를 잡고 나서 처음 마주한 상황이라 차의 멀쩡한 뒷면을 확인한 뒤에도 당혹감이 쉽사리 가시지 않았는데, 옆에 있었던 친구들 덕에 마음을 금방 추스를 수 있었다.
감명깊게 봤던 드라마 <괴물>의 촬영지가 있어서 들렀는데, 친구들이 드라마의 존재조차 몰라서 이야기를 꺼냈다가 머쓱했던 기억이 난다. 목포에 있었던 영화 <1987>의 촬영지, 연희네 슈퍼를 생각하고 갔었는데 관리가 잘 안 되어 있어서 외관 사진만 몇 장 찍고 바로 저녁을 먹으러 갔다.
옥천초량순대에 가서 순대 작은 접시와 순댓국을 주문했다. 순대가 먼저 나왔는데 양이 너무 많아서 놀랐고, 내장을 집어서 먹었는데 잡내도 없고 식감도 좋아서 한 번 더 놀랐다. 정말 잘 삶긴 내장이었다. 순댓국이 뒤이어 나왔는데 얼핏 봐도 양이 많아 보였다. 여쭤봤더니 학생들이라 특으로 줬다고. 덕분에 배와 마음 모두 든든히 채울 수 있었다. 정말 배가 터질 때까지 먹었다. 저녁도 정말 완벽했다. 다만, 이번에도 소주의 부재가 아쉬웠다.
대전과 가까운 곳으로의 당일치기 여행이었지만, 내 차에 친구들을 태우고 떠난 첫 번째 여행이었기에 그 시간 이상으로 값졌다. 옥천으로의 여행 이후에 차와 함께한 시간들이 많이 쌓였고, 그 시간만큼이나 이야기들도 수북이 쌓였다. 앞으로도 내 차와 함께 어딘가로 떠날 시간들과 늘어갈 이야기들이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