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진호 감독의 <8월의 크리스마스>
만약 살 수 있는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면 난 어떤 마음가짐으로, 또 무엇을 하며 내게 주어진 마지막 시간을 보낼 것인가란 생각이 영화를 보는 내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어느 날 택시를 타던 중, 아무 생각 없이 라디오를 듣다가 격언 하나가 갑자기 내 귀에 들렸다.
"매일이 마지막 날인 것처럼 살아라."
누가 했던 이야기인지도, 앞뒤로 어떤 내용이 있었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지만, 저 격언만큼은 머릿속에 선명하게 남아있다. 아마 많은 사람이 죽음을 동떨어진 외딴섬과 같이 여기며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바쁜 일상에 죽음을 맞이할 순간을 걱정할 여유가 끼어들 틈은 없다. 하지만 한 치 앞을 모르는 것이 삶이고,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것이 죽음이다. 죽음은 언제 찾아올지 모르기 때문에 만약 오늘이 내게 주어진 마지막 날이라고 해도, 후회하지 않을 삶을 살아라는 것이 저 말을 내뱉은 사람의 의도가 아니었나 싶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노르웨이의 숲>은 죽음이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님을 상기시켜 줬다. 그리고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원더풀 라이프>는 죽음을 맞이 한 뒤를 멋진 상상으로 그려내며 삶 속 소중했던 순간에 대해 계속해서 생각하게 했다. 이 영화도 죽음에 대해 생각하게 했지만, 그걸 보여주는 결이 다른 작품과는 달랐다.
죽음을 다루는 다른 작품과 이 영화를 구별 짓는 지점은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는 정원의 마지막 순간을 평범한 일상과 비슷한 온도로, 되려 사랑의 따스함까지 담아서 보여준다는 것에 있다고 생각한다. 아마도 그랬기 때문에 감동이 파도처럼 나를 덮쳤다 금세 사라진 것이 아닌 물에 잉크가 퍼지듯 서서히 내게 스며들 수 있었고, 덕분에 영화가 끝난 뒤에도 짙은 여운이 남아있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처음에는 여느 사람과 같은 삶을 살고 있는 정원이 보였고, 여느 사람과 같은 사랑을 하고 있는 정원이 보였다. 그러다가 정원이 고통에 괴로워하는 모습, 마지막을 준비하는 모습을 보며 이내 싱숭생숭해지더니 환한 미소 밑에 가려져 있던 그의 마음이 궁금해졌다. 어떤 마음가짐으로 마지막 순간을 살아내기에 저렇게 아무렇지 않아 보일 수 있을까. 자신에게 찾아온 마지막 사랑을 그는 어떤 마음으로 대했을까.
사랑을 간직한 채 떠날 수 있게 해 준 다림을 향해 감사함을 표하는 그의 마지막 말은 나의 질문들에 대한 답변을 던져주었고, 동시에 되려 내게 질문을 던졌다. 무엇을 간직한 채 떠나고 싶은가.
영화가 끝나자마자, 빈지노의 <If I Die Tomorrow>를 찾아들었다.
노래는 '오늘 밤이 만약 내게 주어진 돛대와 같다면'이라는 가사로 시작한다. 마지막 남은 한 개비의 담배, 돛대에 불이 붙여지고, 점점 짧아지는 담배와 함께 사라져 가는 마지막 시간. 그 시간 속에 놓여 있던 영화 속 정원의 모습을 보며 많은 생각이 들었다. 만약에 당신이 그 마지막 시간 속에 놓인다면 어떤 삶을 살고 싶은가.
앞으로 살아갈 날이 많이 남았을 사람에게 던지는 질문치고 너무 가혹한 것 같으니, 질문을 바꿔보겠다. 어떤 것들을 당신의 삶에 채워 넣고 싶은가. 지금의 삶에는 죽어서도 간직하고 싶은 게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