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엔 형제의 <시리어스 맨>
계획했던 일이 완벽하게 이루어졌던 적이 있는가.
이 질문에 확신에 찬 대답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순탄하게 잘 흘러가던 인생에 예상치 못한 불행이 연이어 덮칠 수도 있고, 반대로 비관만 가득하던 인생에 행운이 찾아올 수도 있다. 우리는 인생을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대부분의 일들은 우연의 힘 없이는 완벽하게 설명되지 않는다. 인생의 매 순간, 우연의 힘이 개입된다. 칼 세이건이 <코스모스>에서 이야기했듯, 우연의 힘 없이는 인간이라는 존재의 탄생조차도 명확하게 설명할 수 없다.
영화의 힘은 체험과 공감에 있다고 생각한다. 잘 만들어진 영화는 관객들로 하여금 화면 속 상황을 체험할 수 있게 하고, 많은 사람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의 힘을 가지고 있다. 즉 좋은 영화는 관객이 겪어보지 못한 상황, 심지어 매우 비현실적인 이야기를 카메라에 담으면서도 영화와 현실 사이의 괴리감을 일정 부분 지운다. 롱테이크 씬을 계속 제시함으로써 체험의 힘을 극대화하는 영화도 있지만, 대부분의 영화는 이야기의 힘으로 영화와 현실 사이의 공백을 메운다.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가 영화 속 이야기에 온전히 공감하지 못하는 것은 너무나 잘 짜인 극 중 이야기와 달리, 실제 삶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 세상은 너무나도 복잡해서 행동과 결과 사이에 행운과 위험이 언제든 개입할 수 있다. 코엔 형제의 <시리어스 맨>은 앞서 이야기한 것과는 다른 영화이다. 이야기가 치밀하게 얽혀있지 않고, 인과관계를 설명할 수 없는 일들 투성이다. 하지만 나는 이 영화가 어느 영화보다도 실제 삶과 많이 맞닿아있다고 느꼈다.
영화가 우연의 힘을 너무나도 잘 보여줬던 것이 그 이유라 생각한다. 물론, 지나치게 많은 불행이 극 중 주인공인 래리에게 닥쳐오긴 하지만, 극단적 상황을 이용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더욱 효과적으로 전하는 게 가능한 공간이 영화 아니겠는가. 그런 면에서, <시리어스 맨>은 실제 세상을 잘 반영하면서도 매우 영화적이다.
래리는 순탄한 인생을 살아왔다. 물리학 교수라는 안정적인 직종의 종사자로서, 그리고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하지만 예상치 못한 폭풍우들이 그의 인생을 갑작스럽게 덮친다.
순탄한 인생이라 앞서 언급했지만, 실은 래리의 가정엔 그가 모르는 문제들이 조금씩 피어나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래리가 모르는 문제들이 이미 가정에 도사리고 있었지만, 그를 난처하게 만들 정도는 아니었기에 순탄한 인생을 살아왔을 거라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래리의 아내가 그에게 갑작스럽게 이혼을 요구하고, 그의 친구와의 바람이 이유라는 것을 당당히 밝히면서, 집에서 나가 달라한 것은 래리가 감당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사소한 문제는 평소에는 쉽게 털어버릴 수 있지만, 감당하기 힘든 큰 문제가 나타나고 난 뒤에는 더 이상 사소한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 아내의 이혼 요구라는 큰 문제가 찾아온 이후, 자신의 지갑에 손을 대는 딸, 몰래 대마초를 피고, 자신의 돈으로 레코드 구매 비용을 결제했던 아들과 같은 문제들은 평소보다 타격이 더 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런 와중에 말썽을 일으키는 동생과 이웃과의 뒷마당 경계 문제까지. 골머리를 앓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시련은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직장에서도 여러 문제를 마주한다. 낙제를 면하고자 성적을 올려달라 부탁하러 온 학생이 책상에 올려놓은 돈 봉투와 종신 재직권 심사를 앞둔 그를 음해하는 편지까지. 끝없는 불행이 래리를 계속해서 덮친다.
유대인인 래리는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얻고자 랍비를 찾아간다. 하지만 원하는 답을 얻지 못한다. 뻔한 답을 듣거나, 생각하느라 바쁘다는 이유로 만나지 못한다.
랍비도 결국 같은 사람이었다. 아무리 뛰어나거나 현명한 사람이라도 세상의 일을 통제할 수는 없다. 칠판에 빼곡히 수식을 채우며 문제의 풀이 과정을 학생들에게 설명했던 그가 현실에서 마주한 문제들을 해결할 어떤 실마리도 찾지 못했듯이, 우연의 힘으로 인해 논리로는 설명될 수 없는 일이 복잡한 세상을 늘 채우고 있다.
랍비로부터 원하는 답을 얻지는 못했지만, 래리의 아내와 바람이 난 그의 친구가 갑작스럽게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으면서, 그는 갑작스럽게 문제로부터 벗어나게 된다. 그리고 종신 재직권 심사에서 통과되었다는 이야기도 듣는다.
그렇게 모든 것이 끝난 것처럼 보였지만, 불행은 끝나지 않은 듯 보인다. 아마 앞으로도 많은 행운과 불행이 그의 인생에 찾아올 것이다.
찾아온 문제들로부터 고통스러워하고, 랍비들을 찾아가 답을 갈구했던 래리는 종신 재직권 심사에서 통과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매우 태연한 태도를 보인다. 마치 당연하다는 듯이. 많은 사람이 찾아온 행운은 당연하다는 듯이 여기면서, 불행이 찾아왔을 때는 이유를 찾으려 애쓴다. 인간의 심리를 가장 잘 보여주는 곳이 주식시장이라 생각하는데, 주가가 상승할 때 사람들은 자신의 실력을 이유로 들며 당연하다는 듯이 여기지만, 주가가 하락할 때는 이유를 찾느라 바쁘다. 주식시장을 단편적인 예시로 들었지만, 다른 곳에서도 그런 경우를 쉽게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앞서 이야기했듯, 세상은 너무나도 복잡하다. 그렇기에 행동과 결과 사이에는 행운과 위험이 언제든 개입될 수 있다. 개인의 노력만으로 항상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없다는 것과 같은 우울한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성공에 개입되는 행운의 힘과 실패에 개입되는 불행의 힘을 이해함으로써 너무 자만하거나 좌절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한 치 앞을 모르는 세상을 현명하게 헤쳐나가려면 이 행운과 위험의 힘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시리어스 맨>은 '당신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을 단순하게 받아들여라.'라는 문장과 함께 시작하는데, 영화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압축해서 잘 보여준다 생각한다. 성공과 실패의 이유를 내부에서 찾으려고 너무 애쓰지 않았으면 좋겠다. 어떤 우연이 결과에 영향을 미쳤는지는 알 수가 없으니까. 앞으로도 행운과 불행이 우리의 인생을 계속해서 덮칠 것이고, 그 파도에 휩쓸리지 않는 힘은 우연을 간과하지 않는 태도로부터 나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