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하거나 부족하여 완전하지 못한 점
글쓰기는 간결화의 과정이다. 머릿속 생각을 다듬어 글로 표현해 내는 일. 표현하는 과정 속에서 군더더기들이 글에 덕지덕지 붙게 되면, 본래 전달하려는 의미가 되려 흐려진다.
글쓰기가 간결화의 과정이라면, 미니멀리스트보단 맥시멀리스트에 가까운 나의 성향은 글을 쓸 때 큰 결점이 될 수 있다. 나는 물건을 쉽게 버리지 못한다. 버리지 못하는 것을 넘어, 오히려 무언가를 수집하는 것이 취미다. 여행 기간 동안 엽서를 비롯한 기념품을 사 모으고, 공연이 끝나면 굿즈를 사고, 영화가 끝나면 포스터나 포토티켓을 챙겨 온다. 그리고 평소엔 앨범과 책을 사 모은다.
나는 모든 사물에 의미를 부여한다. 기억해두고 싶은 시간, 그 시간 속 특별했던 사건. 모든 것들이 사물이 지닐 의미나 추억이 되고, 그것을 버리지 못하는 이유가 된다. 그래서인지 기숙사를 옮길 때마다 짐의 부피는 점차 늘어만 갔다.
하지만 이런 나의 특성이 글쓰기라는 작업에서 결점이 된다고만 생각하지 않는다. 글쓰기는 간결화 이전에, 다듬을 재료가 필요하다. 소재가 없다면 퀄리티를 논할 글이 탄생할 수 없다. 그런 측면에서, 사물에 의미를 부여하는 습관은 결점이 아닌 무기가 된다. 글쓰기는 간결화의 작업이기 이전에, 남들은 무심코 지나쳤을 무언가에서 의미를 끄집어내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줄곧 결점이라 생각했던 나의 내향적인 성격도 강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박준의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을 읽다가 크게 와닿은 대목이 있었다. 외로움은 타인과의 교류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이지만, 고독은 내면과의 대화로만 해결할 수 있는 것이라고. 그렇기에 다른 사람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만큼이나,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시간도 중요하다.
우리는 살면서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느라, 자기 자신도 보살핌 받아야 하는 존재라는 사실을 자주 망각한다. 겉은 부드러우나 속마음은 강한 성질을 일컫는 '외유내강'이라는 말은 내면이 강해야 다른 사람을 부드럽게 대할 수 있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내면을 보살필 줄 아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가시 돋친 말도, 우연히 마주한 부정적인 일도 더욱 쉽게 넘길 수 있다. 즉 내면의 소리를 듣는 데 시간을 쏟는 습관은 나를 되려 단단한 사람으로 만들어준다.
글쓰기는 사유하는 과정을 전제로 한다. 무엇이든 깊이 생각해 보고, 여러 측면에서 생각해 보아야 더 많은 글감이 쌓인다. 그런 측면에서 내면의 소리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드는 습관은 글쓰기에도 도움이 된다.
이처럼 결점은 다른 측면에서 강점이 되기도 한다. 모든 일들이 그러하겠지만, 생각하기 나름이다. 중요한 것은 결점을 이유 삼아 자신을 나무라고, 상처 줄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결점이라 생각했던 것이 무기가 될 때도 있으니까.
그리고 모두가 가지고 있을 저마다의 결점은 세상을 풍요롭게 한다. 만약 모두가 더 이상 손을 댈 필요가 없는 그림과 같이 완벽하다면, 새로운 가능성이 개입될 여지는 없다. 모두 완벽하지 않은 존재라는 것은, 각자가 가지고 있는 가능성을 암시하고, 그 가능성들이 모여 풍요로운 세상을 만든다.
자신이 쓸모없게 느껴진다면, 멈춰 서서 곰곰이 생각해 봤으면 좋겠다. 결점이라 생각했던 것들이 살아가는 동안 도움이 되었던 적이 정말 단 한 번도 없었는지. 그리고 채워지지 않은 흰색 도화지처럼, 자신에게 얼마나 많은 가능성이 있는지. 고뇌의 시간을 거친 뒤에, 다시 세상을 마주하면 저마다의 결점을 갖고 있을 다양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 세상이 조금은 다르게 보이지 않을까. 이 세상을 마주하는 자신의 마음가짐은 조금은 달라지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