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같은 사이
'가족 같은 사이'라는 말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평소에는 허물없이 지내며 온갖 속내를 다 끄집어내고,
기쁠 때나 슬플 때나 평생 곁에 있을 것처럼 어깨를 다독이다가 정작 결정적인 순간에는 너무도 쉽게 ‘남’의 얼굴로
돌아섭니다.
그 온도 차 앞에서 내가 느낀 건 단순한 실망이 아니라,
가슴이 텅 비어버리는 듯한 허탈함과 가슴이 먹먹해지는 상처였습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까 사람들은 한 번도 나에게 '가족'이 되어주겠다고 약속한 적이 없었습니다.
나에게 그런 헌신을 강요한 적도 없었죠.
그저 다른 사람들처럼 다정했고, 조금 더 친절했을 뿐이죠.
그 적당한 분위기에 혼자 들떠 '가족'이라는 이름을 붙인 건 다름 아닌 나였습니다.
내 안의 빈자리가 만든 환상이었습니다.
내 안에는 늘 메워지지 않는 '가족'이라는 빈자리가 있었습니다.
그 그리움이 너무 깊어서였을까요.
누군가 조금만 따뜻하게 대해주면,
나는 기다렸다는 듯 그 사람을 내 마음속
가족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혼자서만 허물없이 비밀을 털어놓고,
혼자서만 영원히 편이 되어줄 거라 믿었습니다.
상대는 그저 좋은 지인으로서 곁에 있었을 뿐인데,
나는 혼자서 선을 넘어가 놓고는 왜 내 마음만큼 돌아오지 않느냐며 서운해하고 있었던 겁니다.
결정적인 순간에 ‘남’처럼 행동했던 건 배신이 아니라
그저 자기 삶을 지키려는 자연스러움 아닐까요?
사람들에게는 지켜야 할 각자의 우선순위가 있고,
감당해야 할 자기만의 삶이 있으니까요.
나를 당혹스럽게 했던 그들의 현실적인 태도는
사실 진정한 타인의 거리감이었습니다.
내가 기대했던 '가족 같은 사이'가 돌아오지 않았을 때
느꼈던 그 처절한 실망감은 사실 상대가 준 상처가 아니라 내 오해가 빚어낸 착각이었죠.
내가 만든 프레임에 상대를 가둬두고
그 틀에 맞지 않는다고 서운해했던 나의 욕심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남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나니 오히려
마음이 홀가분해졌어요.
채워지지 않을 기대를 품고 상처받는 그 자리에서
벗어나야겠다 싶었어요.
누구를 탓하기보다, 내 마음부터 살펴보기로 했죠.
내 결핍 때문에 타인을 가족이라는 무거운 역할로 몰아넣지 않기로 했고요.
상대가 주는 만큼만 고마워하고, 내가 줄 수 있는 만큼만 내어주는
'적당한 타인'의 관계가 얼마나 홀가분한 것인지 이제야 조금 알 것 같습니다.
진정한 유대감은 내가 보고 싶은 대로 상대를 생각하지
않는 것입니다.
상대가 나에게 ‘남’ 임을 명확히 인정할 때
비로소 그가 건네는 작은 배려가 얼마나 귀한 것인지 보이기 시작합니다.
나는 여전히 가족이 그립기도 하고 가족의 그 빈자리가 쓸쓸하지만,
이제는 그 부족함을 타인에게서 채우려 하지 않으려 합니다.
남은 남으로 남겨둘 때 가장 아름답고,
나는 나로서 홀로 설 때 비로소 타인과 건강하게 마주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우리는 너무 외로워서 타인에게 가족이라는
무거운 옷을 억지로 입히려 했던 건 아닐까요.
이제는 그 옷을 벗겨주고, 있는 그대로의 '남'으로 마주해 보려 합니다.
가족은 가족이고, 남은 남이 니까요.
당신의 곁에도, 혹시 당신의 무리한 기대를 묵묵히 견디고 있는 '남'이 있지는 않나요?
한번 잘 생각해 보는 하루가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