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ADHD를 싫어합니다.

by MSG윤결







나는 지독하게 그 친구를 싫어한다.

정확히는 ADHD라는 진단명 뒤에 숨어, 약을 먹으면서도

전혀 나아지려 하지 않는 그 태도를 증오한다. 내가 어디까지 이해해야 했던 걸까.

모든 ADHD 환자가 이와 같다면 나는 그들을 싫어하는 게 맞다.

물론 이것은 지극히 나의 편견일 뿐이며,

나의 이 날 선 고백이 누군가에게 상처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다만 분명한 사실은, 한쪽의 일방적인 희생으로 유지되는 관계는 결국 영영 혼자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열여섯에 만나 작년 6월까지, 25년을 절친으로 지낸 친구가 있었다.

강산이 두 번 넘게 변하는 동안 좋았던 일도 많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 친구와 마주 앉으면 나는 자꾸만 화가 많은 사람이 되어 있었다.

분명 다정한 안부를 나누려 시작한 대화였는데,

정신을 차려보면 나는 화를 내고 있고, 그 친구는 말을 무시한다.


'내가 원래 이렇게 못된 사람인가? 왜 자꾸 말이 안 통할까.'


이런 자책과 고민이 일상이 될 정도였다.

한날은 주변 사람들의 말에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


"너는 왜 자꾸 쟤한테 눈치를 줘! 그러니까 쟤가 니 눈치만 보잖아"

"얼마나 뭐라고 했으면 ~ 애가 기가 팍 죽었겠냐?" 등등....


나는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억울했다, 그리고 화가 났다.

사람들의 말을 들으면 내가 정말 나쁜 사람이었다.

하기사 그 사람들은 나와 그 친구가

겪고 있는 일을 모를 테니까 말이다.


한 번은 외출 중 화장실에 가며 가방을 맡긴 적이 있다.

돌아와 보니 가방이 사라져 있었다.

친구는 잠시 옆 가게를 구경하느라 가방을 어디 뒀는지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다.

그 안에는 갓 받은 월급봉투가 들어 있었고,

나는 그 돈과 소지품들을 영영 찾지 못했다.



함께 살 때는 더 심했다. 설거지를 하다 그릇을 깨는 건 매일 반복이고 무엇보다 조심성이 없었다.

그 친구 손에는 망치가 있는 건지 왜 손을 대면

모조리 고장이 나거나, 깨지거나, 부서졌다.

차라리 물건이 망가지는 것이 낫다 생각했다.

그런 일들로 진지한 대화를 해보려 해도 친구는 입을 다물었다.

이유를 물어도 대답도 안 하고, 고개만 푹 숙이고 있고,

자꾸 눈치만 보기 일쑤였다.

나는 너무 화가 났다. 이 친구랑 살다가는 점점 내가 괴물이될 것 같았다.


결국 나는 정신과 방문을 제안했다. 친구는 자기가 정신병자냐며 펑펑 울었지만,

나는 1년동안 설득했다.

설득 끝에 방문한 병원에서 ADHD 판정을 받았다.

불안장애와 우울증이 동반되었다는 말에 나는 오히려 미안해졌다.

저 우울함, 친구라는 내가 만들어준 건 아닐까 하는 죄책감 때문이었다.

'아파서 그랬구나'라는 생각이 들자, 그때부터 나는 친구를 이해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공부했다..


관련 책들을 사서 읽고, 인터넷 블로그나 SNS를 뒤지며 친구와 비슷한 사례들을 찾아보았다.

하지만 공부를 하면 할수록 나는 친구를 더 이해할 수 없게 되었다.

세상의 ADHD 환자들은 벗어나려고 더 메모를 하고,

알람을 맞추고, 무기력을 벗어나려 산책을 하며 필사적으로 노력하고 있었다.

반면 내 친구는 약을 먹은 지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쉬는 날이면 온종일 누워 휴대폰만 보는 게 전부였다.

엉망진창인 집 상태는 가관이었다. 그 난장판을 대신 치워주며 나는 생각했다.


'이건 병 때문일까, 아니면 그냥 아무것도 하기 싫은 걸까. 병 뒤에 숨어서 핑계를 찾고 있는 건 아닐까.'


매번 노력은 나만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나면 상처 주지 않으려 말과 행동을 조심했다.

여행을 가서도 어디서 무얼 먹을지 전혀 찾아보지 않는 친구를 대신해 내가 모든 계획을 짰다.

"너도 가고 싶은 곳 좀 찾아봐"라고 하면 그제야 마지못해 인터넷을 뒤적이다가,

"내가 찾은 곳이 맛없으면 네가 뭐라 할까 봐 못 정하겠다"는 비겁한 대답이 돌아왔다.


가장 견디기 힘들었던 건 반복되는 거짓말과 약속 파기였다.

친구는 자기 기분이 좋을 땐 신나게 약속을 잡았다.

그러다 약속 전날이 되면 어김없이 연락해 몸이 아프다거나 병원에 가야 한다는 핑계를 댔다.

나는 알고 있었다. 그 애가 전날 전화를 걸어 내 컨디션을 묻는 건 나를 걱정해서가 아니라,

약속을 깨기 위한 구실을 찾으려고 나를 떠보는 것이었다는 걸.

정말 아픈 게 아니었다. 그저 귀찮았던 거다.

일주일간 쌓인 피로를 풀기 위해 누구도 만나기 싫어지자,

나를 기만하며 빠져나갈 핑계를 고르고 있었다.


나는 친구의 휴무일엔 푹 쉬라며 약속을 펑크 내도 매번 괜찮다며 집에서 쉬라고 말을 했다.

결국 나의 배려가, 당연함이 되었고 나를 그래도 되는 사람으로 만들어준 격이다.

친구를 만나기 위해 휴일을 비워두고 기다렸던 시간들이

"미안, 잊어버렸어" 혹은 "알고 있지만, 네가 기억하나 물어본 거야"

같은 말도 안 되는 무책임한 말 한마디에 그동안의 노력과 배려 우리의 우정이 쓰레기처럼 버려졌다.


그 순간 깨달았다. 친구를 이해해 보려 책을 뒤지고 마음을 졸였던 나의 노력들이 얼마나 별 볼 일 없던 것이었는지. 그럴 필요조차 없던 나의 배려는 25년이라는 우정을 쓰레기통에 처박게 만들었다.


이제 더 이상 그 친구를 이해해 줄 필요가 없었다.

나는 25년 동안 친구와의 우정을 노력과 이해로만 맺으려던 관계를 끝내고 말았다.

나를 나쁜 사람으로 몰아넣으며 유지했던 이 관계를 끝내고 나서야, 나는 비로소 숨을 쉴 수 있었다.


사람들은 묻는다. 왜 그 친구와 인연을 끊었냐고.

딱히 설명할 말이 마땅치 않아 대충 얼버무리면 결국 돌아오는 건 '겨우 그것 때문에?'라는 말이다.

그 '겨우'라는 말에 마음이 덜컥 내려앉는다.

25년 동안 내가 읽어 내려간 ADHD 관련 서적들, 친구의 엉망진창인 집을 보며 느꼈던 참담함,

엉망인 집을 깨끗하게 정리하고 치워주던 나의 모습,

약속 전날마다 반복되던 비겁한 떠보기와 기만. 그동안의 나만하고 있던 노력들,

그 수만 가지 감정의 파편들을 사람들은 알 리 없다.


정말 미안하다면 왜 그 친구는 연락할 생각이 없을까.

왜 늘 화해의 시작은 나의 몫이어야만 했을까.

나는 전혀 연락을 하고 싶은 마음이 없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친구가 사라진 지금,

내 마음은 더없이 편하다. '겨우' 그런 일로 헤어진 게 아니다.

나는 나를 지키기 위해 비로소 그 무거운 관계에서 걸어 나온 것이다.


25년의 끝에서 내가 배운 건, 우정보다 중요한 건 나 자신의 평온함이라는 사실이다.


나와 맞지 않는 사람과의 인연은 감히 이어가는 것이 아니다.

끊어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

내가 병들어가면서 까지 관계를 이어갈 이유는 없다.

우정도 사랑도 쌍방노력으로 이어지는 사이인데,

한쪽만 매달리고 노력한다 해서 그 관계를 유지할 수 없다.


나는 25년이라는 시간 동안 돈주고도 못 배울 인생을 배웠다.




-윤결


화, 수, 금, 토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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