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어도, 나는

아직 걷는 중입니다.

by MSG윤결


가족이라는 이름의 가해자



기억은 사라지지 않는다. 아무 이유 없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불쑥 끼어든다.

기억은 단편으로 끝나지 않고 꼬리에 꼬리를 물며 이어진다.

무주의 시린 산길을 지나면 제천 작은아버지 집의 기억이 기다리고 있다.

어느 날, 할머니의 부재로 언니와 나는 작은아버지 집에 맡겨졌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고소한 밥 냄새가 코끝을 찔렀다.

그 냄새가 우리를 더 허기지게 했다. 언니는 내 손을 꼭 쥐고 조심스레 입을 뗐다.


“작은엄마, 밥 좀 주세요.”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날카로웠다.


“밥 없어! 나한테 밥 맡겨놨어? 너희 줄 밥 없으니까 나가!”


우리 엄마 때문에 본인이 고생한다는 생각에 우리가 미웠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배고프다는 아이들이 불쌍해 보이지는 않았을까.

동정심조차 생기지 않을 만큼 우리가 그렇게 미웠을까.

어른들의 잘못이 아이들에게까지 고스란히 전가되는 순간이었다.

우리가 문 앞에 망연자실 서 있을 때, 사촌 언니와 오빠가 방에서 나오며 웃으며 말했다.


“우린 방금 밥 먹었는데. 햄이랑 계란이랑 고기도 먹었지롱.”


그 말이 왜 그렇게 가슴 깊이 남았는지 모르겠다.

소리를 지른 것도, 욕을 한 것도 아니었다. 그저 사실을 말했을 뿐인데,

그 말은 내 안에 지독한 독처럼 남았다. 배고픔의 고통보다 그 천진한 자랑이 더 오래도록 나를 괴롭혔다.


엄마가 돌아보지 않고 떠나던 뒷모습, 밥 없다던 작은엄마의 서슬 퍼런 외침,

방금 고기를 먹었다던 사촌들의 우월감.

이 모든 기억은 ‘버려짐’과 ‘남겨짐’이라는 하나의 감정으로 묶여 있다.

그리고 그 누구도 미안해하지 않았다는 사실까지도.


나는 아주 어릴 때부터 누군가 떠나갈 기색이나 거짓말의 냄새를 본능적으로 알아챘다.

살아남기 위해 발달한 눈치였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누군가의 말 한마디,

찰나의 표정만 봐도 그것이 진심인지 거짓인지 금방 알게 된다.


이 기억들은 평생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이 상처들이 나를 갉아먹기만 한 게 아니라,

역설적으로 지금까지 살아내게 한 동력의 일부가 되었다는 것을.

그 사실을 인정하는 데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렸을 뿐이다.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는데, 작은엄마는 빚을 갚는 대신 업을 쌓았던 걸까.



그해 겨울, 작은엄마는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