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어도, 나는

아직 걷는중입니다.

by MSG윤결





차라리 태어나지 말지

전라북도 무주 구천동.

지금의 거대한 스키장이 들어서기 전, 허가가 나고 막 공사가 시작되던 무렵이었다.

엄마와 아빠는 이번에야말로 정말 잘 살아보자고 약속하며 돌아왔다.

갑자기 엄마가 왜 돌아온 건지, 그 약속에 얼마나 위태로운 의미가 담겨 있었는지 그때는 알지 못했다.

어쨌거나 우리 가족은 그 깊은 산골로 이사를 갔다.


아빠는 현장 관리자로 일하며 새벽에 나갔다 밤늦게 돌아왔고,

엄마는 현장 옆에서 함바식당을 운영했다. 언니는 산길을 걸어 국민학교에 다녔고,

나는 현장 아저씨들의 차를 얻어 타며 엄마 뒤를 졸졸 따라다녔다.


그 시절의 나는 엄마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엄마가 눈에 보이지 않으면 불안해서 우는 것 말고는 별다른 말썽도 피우지 않는 아이였다.

모든 게 신기했고, 엄마와 함께하는 그곳이 마냥 좋았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마루에서 김밥을 마는 엄마 곁으로 학교에서 돌아온 언니가 다가와 물었다.


“오늘 무슨 날이야?”

“아니, 그냥 먹으려고.”


엄마는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지만, 쟁반 위에는 스무 줄이 넘는 김밥이 쌓여 있었다.

언니는 등을 돌리며 나직이 중얼거렸다.


‘저걸 누가 다 먹는다고… 또 나가려고.’


엄마가 우리를 불렀다.


“이거 저녁으로 먹고 있어. 엄마 잠깐 나갔다 올게.”


말이 끝나기도 전에 마당으로 차 한 대가 들어왔다.

언니는 내 손을 꼭 잡더니 눈을 질끈 감고 소리쳤다.


“가지 마! 우리 두고 가지 말라고!”


엄마는 돌아보지 않았다. 그대로 차에 올라탔고, 차는 어두운 산길 속으로 사라졌다.

나는 울면서 차 뒤를 쫓아 뛰었다. 맨발이었다.

작은 발로 바퀴 자국을 밟으며 “엄마, 엄마”를 불렀다. 그러다 고꾸라졌고,

쓰레기 더미 속에 있던 깨진 콜라병을 보지 못했다.

유리 조각이 다리를 파고들었다. 살이 움푹 패고 피가 철철 흘렀다.

얼마나 깊게 다쳤는지 그때는 몰랐다. 언니는 나를 붙잡고 같이 울다가,

나를 덜컥 업고 슈퍼까지 뛰기 시작했다.

300미터쯤 되는 거리.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그 길이 피 흘리는 아이를 업고 가기엔 너무나 길고 험했다.

슈퍼에 도착한 언니는 울음을 꾹 참고 말했다.


“동생이 다쳤어요.”


슈퍼 아줌마가 상처를 씻겨낼 때마다 나는 자지러지게 비명을 질렀다.

패인 살점 사이로 하얀 뼈 같은 게 보일 만큼 상처가 깊었다.

아줌마는 응급처치를 해주며 당부했다.


“아침에 어른 오면 꼭 병원 가라.”


그날 밤, 나는 울다 지쳐 잠들었고 언니는 내 곁에서 밤새 울었다.

엄마는 그날 이후로도 집에 오지 않았다. 아빠의 폭력과 시댁의 구박에 지쳤다는 말을 남긴 채,

다시 그 남자를 만나는 듯했다. 다음 날 아침, 짐을 싸는 아빠를 보며 언니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당분간 할머니 댁에 가 있어라.”

“안 돼요, 아빠. 거기 가면 우리 맞아 죽을지도 몰라요. 차라리 여기서 둘이 있는 게 나아요.”


아빠는 말이 없었다. 결국 우리는 그 산속에 남겨졌다. 전기도 끊기고 연탄도 몇 장 남지 않은 집에서,

어린 자매 둘이서 아빠 없는 시간을 버텼다. 언니는 학교에 갈 때도 나를 데려갔다.

우리는 산길을 오르내리며 찔레꽃 줄기를 벗겨 먹고 산딸기와 머루로 배를 채우며 하루하루를 넘겼다.


몇 주 뒤, 엄마가 돌아왔다. 하지만 아주 잠깐이었다.

방 안에서 엄마와 언니의 목소리가 높아지는 동안 나는 마루에서 흙을 팠다.

엄마는 다시 큰 가방을 들고 나왔다. 나는 울며 매달렸다. 그때 낯선 남자가 차에서 내렸고,

엄마는 내 손을 뿌리쳤다. 나는 또 바닥에 나동그라졌다.

언니가 절규하듯 소리쳤다.


“우리가 죽어야 끝나는 거지?”


엄마는 끝내 돌아보지 않았다. 남자는 내 손에 돈 몇 푼을 쥐여주며

“며칠 뒤에 다시 올게”

라는 무책임한 말을 남기고 떠났다. 나는 또 울며 차를 쫓아 달렸다.

동네 슈퍼 아줌마가 달려 나와 나를 붙잡고 달랬지만 소용없었다.

그 모습을 보던 언니가 세상에서 가장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울다 지칠 거예요.”


언니와 나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목놓아 울었다.

언니는 나를 데리고 버스 정류장으로 내려가는 길에 길가에 난 잡초를 머리칼처럼 땋으며 말했다.


“차라리 태어나지 말지. 그랬으면 내가 덜 힘들었을 텐데.”


나는 그 말을 아주 오래 기억했다. 고작 초등학생이었던 언니가,



여섯 살 어린 동생을 홀로 등에 업고 견뎌야 했던 그 산길의 무게가 오죽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