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괜찮은 삶이야

by MSG윤결




도망치려 할 때마다 나를 살렸다


나는 몇 번이나 떠날 수 있었다. 아무도 말리지 않았고,

사실 말릴 사람조차 없던 날들도 많았다.

그래서 더 쉬웠다. 사라지는 쪽이..


그런데 이상하게도 나는 늘 아쉬움을 남겨두었다.

완전히 떠나지 못한 이유를 그땐 몰랐다.

미련인지, 겁인지, 책임감인지

이름 붙이기도 애매한 감정이었다.


여러 번 나무에, 옷걸이에, 끈에 몸을 맡겨 보았다.

그때마다 나무는 부러졌고, 쇠 옷걸이는 끊어졌으며, 끈은 풀렸다.

그 방법이 되지 않자 여러 번 약을 먹었다.

그런데도 나는 살아남았다.


나중에서야 알았다.

그건 겁도, 미련도, 책임감도 아니었다.


아직 끝내지 않겠다는, 아주 약한 희망이 아니었을까

무언가가 나를 도와준 건 아닐까 하는 희망,

조금 더 살아도 될까 하는 희망.


잘 살겠다는 다짐 같은 건 없었고, 다만 여기서 멈춘다면

지금까지의 아픔이 모두 의미 없게 느껴질 것 같았다.


그래서 다음에, 다음에, 라고 넘겼고

그리고 또 하루를, 또 하루를 넘겼다.




“그래도 잘 버텼네요.”

“그래도, 아주 멋진 어른이되었네요.”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속으로 생각한다.

버틴 것도 아니고, 아주 멋진 어른이라서 그런건 아니다.

다만 선택을 미룬 것뿐이다.

아주 멋진 어른이란 무엇일까?

내가 생각하는 멋진 어른이란 이렇다.


자기 인생을 과장하지 않는 사람.
불행을 훈장처럼 내세우지도 않고,
행복을 증명하려 애쓰지도 않는 사람.

아픈 기억을 지우지 않되
그 기억으로 타인을 함부로 판단하지 않는 사람.
“나는 이만큼 아팠으니 너도 견뎌”라고 말하지 않는 사람.

도망치고 싶었던 자신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사람.
그때의 나를 약하다고 몰아붙이지 않고
“그래도 살려고 했지”라고 말해주는 사람.

사과할 줄 알고,
용서하지 못하는 날도 있다는 걸
솔직히 인정하는 사람.

무너진 적이 있다는 사실을
숨기지 않되,
그 이야기를 아무 데서나 꺼내지 않는 사람.

그리고 무엇보다
자기 삶을 끝내 미워하지 않는 사람.

완벽해져서 어른이 되는 게 아니라,
흠집 난 채로도
계속 책임지고 살아가려는 태도.

나르시즘에 빠져서 인생을 낭비하는게 아니라,
나의 단점과 장점을 알아가며
사는 사람.

글을 쓰고보니, 나는 아직은 멋진 어른도,

그냥 어른도 아니다.

조금씩 어른이 되어가는 중이다.


시간이 지나고 생각해보니, 조금씩 하루만 하루만..

그 미루기가 나를 살렸다.

대단한 용기가 아니라 사소한 미룸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도망칠 준비 대신

하루를 살아가는 법을 익혔다

울고 싶은 날은 울었고,

말하기 싫은 날은 조용히 있었다.

괜찮은 척을 덜 하자 이상하게도 조금 더 괜찮아졌다.


지금도 여전히 난 괜찮은 사람은 아니다

삶을 사랑한다고 말할 만큼 낙천적이지도 않다.

다만 예전처럼 당장 사라지고 싶지는 않다.


때때로 무작정 떠나고 픈 때가 많지만


아직은 그 정도면 나에게는 충분하다.


어른이 되어간다는건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그리고 오늘도 생각한다

어른은 어떤 어른이 진짜 어른일까?

그리고 진짜 어른은 몇이나 될까?




-윤결

이전 04화그럼에도 불구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