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나의 엄마가 되기로 했다.
세상에는 태어나자마자 공기처럼 당연하게 주어지는 것들이 있다.
살을 맞대면 전해지는 뭉근한 체온, 코끝에 닿는 정겨운 살냄새, 그리고 어떤 잘못을 해도 돌아갈 곳이 있다는 안도감 같은 것들. 사람들은 그걸 '엄마'라고 불렀다.
하지만 내게 그 단어는 평생을 풀어도 답이 나오지 않는 숙제였다.
나의 엄마는 내가 태어난 날 얼굴을 돌렸고, 나의 첫 생일엔 차가운 미역국 한 솥만 남겨둔 채 집을 비웠다.
오랫동안 나는 그 빈자리를 채우려 다른 사람들이 나를 완벽하게 감싸주길 바랐고,
내가 배우지 못한 ‘사랑받는 법’을 알려줄 사람을 기다렸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기대어 얻는 다정함은 늘 끝이 있었다.
부재의 기척이 들릴 때마다 내 몸은 어린 시절 그날처럼 차갑게 굳어버리곤 했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현실 속의 나와 마주쳤다. 그 안에는 여전히 겁에 질린 채 닫히는 문을 바라보는 작은 아이가 서 있었다. 그 아이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문득 깨달았다. 이 아이가 얼마나 아픈지,
얼마나 울고 싶었는지, 그리고 어떤 말을 듣고 싶어 했는지 가장 잘 아는 사람은 결국 나뿐이라는 사실을..
그래서 나는 결심했다. 이제는 방황을 멈추고, 스스로 나의 엄마가 되어주기로.
스스로 엄마가 된다는 건 대단한 일이 아니었다. 아주 사소한 일상에서 나를 아끼는 것부터 해주었다.
나는 이제 나를 위해 정성껏 밥을 짓는다. 대충 한 끼 때우는 게 아니라,
예쁜 접시에 음식을 담고 나에게 말해준다.
"천천히 맛있게 먹어."
이건 단순히 배를 채우는 게 아니라, 내 존재를 귀하게 대접하는 일이다.
밤이 오면 불안함에 뒤척이던 아이를 위해 불을 밝히고 이불을 포근하게 덮어준다.
"오늘 하루도 애썼어. 네가 무엇을 해냈든 아니든 상관없어, 이제 푹 자도 돼. 내가 옆에 있을게."
예전에 누군가에게 그토록 듣고 싶었던 그 말을, 이제는 내가 나에게 건넨다.
실수를 하거나 길을 잃었을 때 나를 몰아세우던 습관도 버리기로 했다.
눈치를 보느라 아프다는 말조차 못 했던 아이에게 나는 이제 가장 너그러운 편이 되어준다.
"괜찮아, 그럴 수도 있지. 다시 하면 돼. 내가 기다려줄게."
조급해하는 나에게 천천히 가도 좋다고 말해주는 엄마가 내 안에 살기 시작하자,
비로소 세상을 부정적으로만 보던 나의 시각은 긍정적인 시각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가정폭력의 기억과 누군가의 부재가 남긴 흉터는 여전히 내 몸에 남아 있다.
하지만 이제 그건 나를 무너뜨리는 일이 아니다. 오히려 그 아픔을 잘 알기에 나는 나에게 더 다정한 엄마가 될 수 있었다. 내가 되어준 엄마는 절대로 나를 두고 집을 비우지 않으며, 어떤 순간에도 내 얼굴을 외면하지 않는다.
비록 사실은 그러했다. 나의 시작은 축복받지 못했고, 보호받아야 할 시절에 나는 홀로 남겨졌다.
하지만 그것과는 상관없이, 나는 앞으로 나를 사랑해 주고 귀하게 여겨주며,
20만 원이 없어 빚처럼 태어난 아이가 아니라, 스스로를 돌볼 줄 아는 단단한 어른으로 살아가기로 했다.
내가 나를 더 귀하게 여기면 사람들도 나를 귀하게 여겨준다. 나는 무너진 뒤에도 다시 일어서서 내일의 계획을 세우는 것. 그 계획의 첫 번째는 언제나 나를 가장 아끼는 일이어야 한다.
이제야 나는 나의 생일이 축복이었음을 믿는다. 아무도 축하해주지 않았던 그 돌잔치 날의 아이에게 달려가, 지금의 내가 꽉 안아주며 말하고 싶다.
"아가, 여기까지 오느라 고생 많았어. 이제 걱정 마. 내가 너의 엄마가 되어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