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가 나의 추억
며칠이 지나 비가 그치고 소동이 잦아들 무렵이었다.
사촌 동생은 다시 구미로 돌아갔고, 나는 홀로 다시 현대타운 지하를 찾았다.
그런데 그곳에는 거짓말처럼 그 여자아이가 서있었다.
다시 싸움이 날까 봐 움찔하며 고개를 숙이려는데, 그 여자아이가 다가왔다.
"안녕? 너 충주 살아?"
고개를 들어보니 아이의 눈에는 적대감 대신 호기심이 서려 있었다.
우리는 싱싱 카 옆에 나란히 앉아 통성명을 했다.
알고 보니 그 아이도 나와 닮은 처지였다.
부모님이 일로 바빠 상가 안에서 이불 가게를 하시는 할머니 댁에 맡겨졌다고 했다.
친구도 없이 온종일 지하상가를 맴돌던 아이에게 그 토끼 싱싱 카는 유일한 탈출구였던 것이다.
첫날의 날 선 반응은 아마도 자기 영역을 지키고 싶었던 외로운 꼬마의 몸부림 아니었을까?
그날 이후, 우리는 둘도 없는 단짝이 되었다.
우리는 만나면 항상 현대타운 지하에서 번갈아 가며 사자와 토끼 싱싱 카를 탔고,
할머니가 주신 용돈으로 '새콤달콤'을 사서 정확히 반으로 나눠 먹었다.
포도맛, 딸기 맛 새콤달콤이 입안에서 찐득하게 녹아내리고, 우리는 현대타운의 귀여운 아이들로 통했다.
그리고 우리는 더 이상 싱싱 카를 두고 싸우지 않았다.
대신 한 명이 페달을 밟으면 한 명은 뒤에서 밀어주며, 그렇게 정말 친구가 되어가고 있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이별은 예고 없이 찾아왔다.
부모님이 나를 데리러 오는 날이 된 것이다.
충주를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들른 현대타운에서 나는 아이에게 인사를 건넸다.
"나 이제 엄마 아빠한테 가. 오늘이 마지막이야."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아이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고였다.
며칠 전 싱싱 카에서 떨어져 울던 소리보다 더 서럽고 깊은 울음이었다.
아이는 내 옷소매를 붙잡고 엉엉 울며 말했다.
"너 가면 나 이제 누구랑 놀아... 대신에 우리, 국민학생 되면 꼭 다시 만나자. 알았지?"
그 약속이 얼마나 지키기 어려운 것인지도 모른 채,
여섯 살과 이른 일곱 살의 아이들은 '국민학생'이라는 막연한 미래를 담보로 작별을 고했다.
연락처도, 주소도 몰랐지만 그 약속 하나면 충분하다고 믿었던 순수한 시절이었다.
지금도 가끔 비가 내리는 오후면, 현대타운 지하 1층의 노란 조명과 잉잉거리는 싱싱 카의 기계음이 들려오는 듯하다. 국민학교에 입학하고 할머니댁에 오는 날이면 어김없이 현대타운에 들렀다.
혹시라도 그 아이가 있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하지만 우리는 끝내 재회하지 못했다.
그 아이도 현대타운에서 나를 기다려본 적이 있을까. 혹은 어느 이불 가게 앞에서 멈춰 서서,
새콤달콤을 맛있게 먹으며 현대타운 상가를 돌아다녔던 우리의 추억을 회상한 적이 있을까?
비록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지만, 그 시절의 우리는 서로에게 가장 친구였다.
이제는 현대타운의 그 투박한 기계음도, 사자 싱싱 카의 갈기도 사라졌을지 모른다.
하지만 내 마음 한구석엔 여전히 오백 원짜리 동전을 꼭 쥔 채, 설레는 마음으로 지하 계단을 내려가던 여섯 살의 내가 살고 있다. 다시 만나지 못했기에 그 우정은 영원히 미완의 아름다움으로 남았다.
그때, 정말 너무 행복한 충주에서의 기억이었다.
너를 만났고, 너와 같은 추억이 있었고, 우리는 세상 누구보다 재미났다.
비슷한 사연을 지닌 너와 내가 언제 다시 만날지도 모르고 살아간다는 건 너무 마음이 아팠다.
다시 꼭 다시 만나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