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보다 영화같은 우리의 재회
어느덧 나는 입시의 무게를 짊어진 고등학생이 되어 있었다.
지겹도록 반복되는 일상과 힘겨운 학업 속에서 숨이 가쁘던 시절, 나를 지탱해 준 건 동아리의 한 선배였다. 선배는 경기도 이천으로 전학을 간 뒤에도 나를 살뜰히 챙겨주었다.
용인과 이천, 결코 가깝지 않은 거리를 한 달에 한두 번씩 오가며 우리는 끈끈한 인연을 이어갔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평소처럼 이천에서 만난 선배가 수줍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오늘 내가 학교에서 새로 사귄 친구 한 명 데려왔는데, 같이 놀아도 되?”
그렇게 소개받은 아이. 우리 셋은 처음 본 사이라는 게 무색할 정도로 금세 똘똘 뭉쳤다.
성격도, 대화 코드도 너무나 잘 맞아서 마치 아주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사이처럼 편안했다.
셋이 함께 웃고 떠들며 시간을 보내던 중,
우연히 각자의 고향과 어린 시절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나는 고향이 충주야, 어릴 때 충주 외할머니 댁에 잠깐 살았었어.”
나의 그 한마디에 선배의 친구가 멈칫하며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충주? 어디? 나도 어릴 때 충주 할머니 댁에 있었는데!”
“나는 현대타운 근처였어. 거기 지하상가에 맨날 갔었거든.”
순간, 정적이 흘렀다. 그 아이의 눈동자가 흔들리기 시작했고,
내 머릿속에도 잊혔던 91년의 기억이 떠올랐다.
내 말에 그 선배의 친구가 입이 커다랗게 벌어졌다.
선배는 옆에서
"너네 뭐야? 아는 사이야?"
라며 당황해했지만, 우리에겐 그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10년 전의 퍼즐 조각이 눈앞에서 무서운 속도로 맞춰지고 있었다.
“세상에... 너, 너 그때 그 언니야? 사촌 동생이랑 같이 왔던?”
“맞아! 너 그때 나한테 메롱 하고 할머니 등에 업혀 갔었잖아!”
나의 외침에 아이는 얼굴이 금세 달아오르더니 이내 깔깔거리며 웃음을 터뜨렸다.
“야, 내가 그때 얼마나 미안했는데! 사실 나 그날 할머니한테 엄청 혼났어. 친구랑 싸우고 왔다고. 근데 너 진짜... 어떻게 여기서 만나?”
“나도 고등학교 입학할 때까지 충주 갈 때마다 현대타운 지하에 갔었어. 너 있을까 봐. 근데 너 어느 순간부터 안 보이더라.”
“우리 할머니가 가게 접으셨거든. 나도 거기 가면 늘 네 생각 났어. 새콤달콤 사 먹을 때마다 네가 잘 지낼까 싶어서.”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의 손을 꽉 잡았다. 교복 소매 아래로 드러난 손은 그때보다 훨씬 커져 있었지만, 마주 잡은 온기만큼은 오백 원짜리 동전을 나누어 쥐던 그날처럼 뜨거웠다.
“야, 너 그때 울면서 그랬잖아. 국민학생 되면 꼭 다시 만나자고.”
“내가 그랬어? 와... 나 진짜 창피해! 근데 우리 진짜 만났네. 국민학생은 아니지만, 여고생으로!”
그 여자아이는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으며 시원하게 웃었다.
옆에서 지켜보던 선배는
"이게 진짜 실화라고? 영화 아니야?" 라며 혀를 내둘렀다.
그날 우리는 떡볶이 접시를 앞에 두고 밤이 깊어가는 줄도 모른 채 수다를 떨었다.
이불 가게 손녀딸이었던 아이와, 방학마다 충주로 향하던 나.
이제서야 우리는 오랜시간 잊었던 이름을 제대로 통성명하며, 10년 전 미처 다 먹지 못했던 우정의 남은 조각들을 채워 나갔다.
그 시절, 사자 싱싱카 위에서 나누었던 서툰 약속은 유효기한이 없는 마법이었나 보다.
억지 부리며 메롱을 하던 깍쟁이 소녀와 겁 많던 여섯 살의 나는,
이제 서로의 지친 학창 시절을 다독여주는 가장 든든한 ‘천군만마’가 되어 있었다.
지하상가의 눅눅한 공기 대신, 해 질 녘 교정의 시원한 바람이 우리 사이를 지나갔다. 우리는 더 이상 헤어짐이 무서워 울지 않아도 되는 나이가 되었고, 이제는 언제든 서로에게 전화를 걸어 "새콤달콤 대신 떡볶이 먹으으러 갈래? "라고 말할 수 있는 사이가 되었다.
91년, 현대타운 지하 1층. 그곳에 남겨두고 온 우리의 어린 날이 비로소 완성되는 순간이었다.
나는 너를 다시 만나서 너무 좋았다.
어릴적의 추억을 가지고 다시 만날수 있는 확률은 얼마나 될까?
그것도 충주에서도 아니고, 타 도시에서 ..
그때의 우리 표정을 기억한다.
우린, 그 누구보다 행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