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년 6살
91년, 나는 여섯살이었다. 충주에 있는 외할머니 댁에서 잠시 지내던 때였다.
할머니는 친구분의 사과 농장에 소일거리를 도우러 나가셨고, 할아버지도 매일 직장에 나가셨다.
그러다 보니 혼자 집에 남겨질 내가 신경 쓰이셨는지, 할머니는 나가시기 전마다 빠짐없이 오백 원씩 용돈을 쥐여주셨다.
그 시절, 초코하임은 1700원으로 몽쉘통통 다음 가는 고급 과자였다.
콘칩은 200원이었고, 봉지과자는 150원에서 300원 사이, 신호등 사탕이 50원, 100원이던 때였다.
나는 혼자였지만 심심하지 않았다. 할머니 집 근처에는 현대타운 상가가 있었고,
현대타운 지하로 내려가면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것들이 가득했다.
동전을 넣고 페달을 밟아 움직이던 동물 모양의 싱싱 카, 지금의 전동 자동차 같은 그것들 중에서도
나는 사자 모양을 가장 좋아했다.
할머니가 나가시면 차려주신 밥을 먹고 나는 곧장 현대타운으로 향했다.
그곳은 천국이었고, 나만의 세계였다. 가끔 시장에 장을 보러 갔다 오시던 할머니가
나를 데리러 오신 적도 있었다.
내가 그곳에서 놀고 있으면 안심이 된다며, 멀리 가는 것도 아니고 안전하다고 생각하신 듯했다.
혹시 무슨 일이 생기면 약방으로 달려가라고도 하셨다.
약방의 할아버지와 고향 친구라 무슨 일이 있으면 도와줄 거라고.
그렇게 든든한 천군마마를 등에 업고 나는 현대타운에 매일같이 출석했다.
비가 몹시도 많이 오던 어느 날,
그날은 혼자가 아니었다. 나보다 한 살 어린 사촌동생이 할머니 댁에 놀러 왔다.
그 아이는 나와 달리 몹시 깍쟁이였다. 새침하고, 삐지기도 잘 삐지고, 감정 표현도 분명했다.
한 살 차이였지만 둘 다 빠른 생이라 나이로 치면 일곱 살과 여섯 살이었다.
이모는 둘째 아이를 낳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몸조리를 해야 한다며
사촌동생을 할머니께 맡기고 다시 구미로 돌아갔다.
사촌동생이 온 날부터 할머니는 일주일에 두 번 오백 원씩 주셨다.
혼자 현대타운에 가지 말고 사촌동생과 함께 놀아주라는 말씀이었다.
어떻게 저 새침데기 계집아이와 놀아야 하나 고민하고 있던 그때,
사촌동생이 먼저 입을 열었다.
“언니야, 우리 현대타운 안 갈래?”
“네가 현대타운을 어떻게 알아?”
“나 저번에 왔을 때 할머니 따라갔다가 할머니가 태워줬지.”
“근데 나 돈 없는데?”
“언니야, 나 돈 있다! 엄마가 돈 주고 갔다!”
“그래! 그럼 가자. 근데 할머니한테는 뭐라 하지…?”
“놀고 와서 사실대로 말하면 되지.”
“그래! 좋아, 좋아!”
그 작은 여자아이 둘이 신나게 놀 생각에 들떠 있었다.
우리는 현대타운에 놀러 가는 것만도 너무 신나 있었다.
나는 사자 싱싱 카, 사촌동생은 토끼 싱싱 카를 탄다며 룰루랄라 손을 잡고 걸어갔다.
도착해서 보니, 사람이 은근히 많았다.
하지만 내가 타려 했던 사자 싱싱 카는 아무도 타고 있지 않았다.
얼른 다가가 돈을 집어넣고, 타려는데 왠 못생긴 여자아이가 나타나더니 자기가 올라타는 것이다.
나는 당황해서 내가 돈 넣었는데 왜 네가 타는 거냐고 따져 물었고, 사촌동생도 내편이 되어주었다.
하지만 그 여자애는 나를 쳐다보면서 사자 싱싱 카에 자기가 먼저 오백 원을 넣었고,
잠깐 화장실 다녀온 사이에 내가 무작정 돈을 넣은 거라서, 이건 자기 거라고 하는 것이다.
말도 안 된다 생각했지만 그 아이의 표정은 전혀 흔들림이 없었다.
그때, 사촌동생은 참을 수 없었는지, 화를 내며 그 여자애를 확 밀어버렸다.
그 여자 애는 결 싱싱 카에서 툭, 떨어지고 말았다. 순간, 정적이 흘렀고
곧이어 목청 큰 울음소리가 지하상가에 울려 퍼졌다.
사람들의 시선이 우리에게 쏠렸다. 수군수군 대는 소리에 나도 당황한 나머지
사촌동생에게 왜 그런 짓을 했냐고 화를 냈다. 사촌동생은 그저 밀었을 뿐인데 이렇게까지 될 줄은
몰랐다는 얼굴로 왜 자기한테 뭐라고 하는 거냐며 억울함이 터진 듯 따지며 울기 시작했다.
내가 뭐라고 하는 줄 알았던 동생은, 내 손을 뿌리치고 울며 혼자 집 쪽으로 돌아가버렸다.
동생이 집으로 돌아갔지만, 나는 아직 그곳에서 놀고 싶었다.
그 여자아이의 할머니가 아이가 다쳤다는 이야기를 듣고 곧장 달려왔다.
주변에 있던 어른들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전하자, 그 아이의 할머니는 일단 아이를 데리고 갈 테니까
너도 며칠 뒤에 어른을 데리고 오라는 말을 하고는 그 아이를 등에 업었다. 그런데 그 여자아이는 할머니 등에 업혀서는 나에게 메롱을 하는 것이다. 그 순간 진짜 너무 기분 나쁘고 속에서는 화가 났지만
어른을 데려오라는 그 말이 머릿속에서 계속 맴돌았다. 괜히 더 큰일 될 것 같아서 너무 무서웠다.
곧장 나도 집으로 돌아가야겠다 싶었다. 집으로 돌아간 사촌동생은 할머니에게 이 일을 말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할머니가 나를 부르셨다.
나는 이유를 묻지 않아도 이미 다 알고 있다는 얼굴을 한 할머니 앞에 서 있었다.
할머니는 왜 허락도 받지 않고 나갔느냐고, 비 오는 날은 위험하니 절대 가지 말라고 했지 않느냐고
차분하지만 단호하게 말씀하셨다.
그 말을 알면서도 내가 무시하고 나간 것이 더 큰 잘못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 동생을 데리고 나간 이상 끝까지 챙겼어야 했다고 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할머니는 내 손을 잡아 손바닥을 몇 대 때리셨다. 아프다기보다는 그 순간이 너무 낯설어서 눈물이 먼저 났다. 그날은 처음으로 할머니에게 혼난 날이었고, 처음으로 매를 맞은 날이었다.
그때는 몰랐다. 눈이 쭉 찢어지게 머리를 묶은 여자아이와 싸움이 나게 될 줄도,
내가 할머니에게 처음으로 매를 맞게 될 줄도...
그때가 가끔 생각난다. 지금도 그 자리에 있는 충주 현대타운.
나는 네가 떠난 뒤, 그 근처에도 가보지 못했다.
걸을 때마다 네가 곁에 있는 것 같아서..
-윤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