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어도, 나는

아직 걷는중 입니다.

by MSG윤결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1986년, 설 연휴가 지난 정월 초이틀에 내가 태어났다.

명절 직후라 병원엔 사람이 많았고, 돈 구하는 일은 그보다 훨씬 어려웠다고 했다.

병원비 20만 원이 없어서 외할머니는 여기저기 전화를 돌려야 했다.

하필 명절 끝자락이라 다들 바쁘다는 핑계를 댔지만,

아마 누구도 선뜻 돈을 빌려주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그 자리에 아빠는 없었다. 그날 아침, 회사가 부도났고 아빠는 순식간에 망한 사람이 되었다.

엄마의 출산보다 눈앞의 파산이 더 급했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렇게 아빠의 부재 속에서 태어났다.

분만실에서 들린 건 아기의 울음보다 엄마의 통곡 소리였다고 한다.


“예쁜 공주님이에요.”


간호사의 말에 엄마는 내 얼굴을 보지 않았다. 아니, 보고 싶지 않아 했다는 게 맞을 거다.


“저리 치워요. 또 딸이야?”


얼굴 좀 보라며 내미는 간호사의 손을 엄마는 거칠게 쳐냈다.

아들을 원했던 엄마에게 둘째마저 딸이라는 사실은 받아들이기 힘든 현실이었나보다.

그때 엄마가 너무 세게 밀치는 바람에 내가 바닥으로 떨어질 뻔했다는 이야기를,

아주 나중에야 할머니를 통해 들었다.

눈이 크고 예쁜 아기라고, 머리도 까맣고 참 곱다고,

간호사들이 엄마를 달랬지만 소용없었다. 엄마는 그 응원조차 듣기 싫어 하염없이 울기만 했다.

얼마나 울었는지 그때 시력이 다 나빠졌을 정도였다고 하니,

엄마에게 나의 탄생은 곧 슬픔이었던 모양이다.


여섯 살 위의 언니가 있다. 첫째인 언니는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아이였다.

노란 모자를 쓰고 유치원에 다녔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면,

내가 태어나기 전 그 집의 공기가 어땠을지 짐작이 간다.

하지만 내가 태어난 뒤 집안은 폭싹 망했다. 엄마는 나를 잘 안아주지 않았고,

배고파 울어도 젖을 물리지 않은 채 내버려 두는 날이 많아졌다.

사람들은 엄마를 보며 정신이 나갔다고 수군거렸다.

친가 어른들도 내가 태어난 뒤부터 집안이 기울기 시작했다고 입을 모았다.


“네가 태어나서 이 모든 불행이 시작된 거야.”

“너는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어.”


그 모진 말들이 언제부터 들렸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아주 어릴 때부터 나는 내가 태어난 게 문제라는 말들을 숨쉬는 날 만큼 들었다.

태어난 게 내 잘못은 아니라는 걸, 누가 말해주지 않아도 나는 이미 알고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 누구도 그 사실을 인정해주지 않았기에, 나는 늘 내가 태어난 이유를 찾아 헤맸다.



내가 태어나지 않았다면 정말 모든 것이 달라졌을까. 정말 내가 모든 불행의 시작이었을까.

그 질문은 마흔을 훌쩍 넘긴 지금까지도 끝나지 않았다.




왜, 감당하지도 못할 거면서 나를 낳았을까. 그럴 거라면 왜 굳이 자식을 낳은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