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묘한 이야기

처음 꺼내보는 나의 기묘한 일

by MSG윤결




고등학교 때부터 내게는 풀지 못한 숙제 같은 꿈이 있었다.

이유 없이 쓰러질 때면 나는 늘 어느 깊은 산길을 올랐다.

오르고 또 오르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올라 이제 그만할까 싶을 때면,

어디선가 한 할머니가 나타났다. 할머니는 내 손을 억세게 쥐고는 더 올라가야 한다며 나를 거칠게 이끌었다. 쓰러지는 횟수가 늘어날수록 내가 오르는 산의 높이도 점점 높아져만 갔다.


그러던 어느 날, 평소처럼 다시 쓰러진 꿈 속에서 나는 산 밑바닥에 서 있었다.

그날은 할머니가 산 아래서부터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할머니는 평소와 달리 산을 오르지 말고 저 앞의 물가를 건너자고 했다.

본능적인 거부감에 싫다고, 오늘은 안 가겠다고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인자해 보이던 할머니의 눈빛이 순식간에 변했다.

할머니는 내 목을 콱 틀어쥐고는 숨통을 조여왔다.


꿈에서 깨어났을 때, 옆에 있던 언니가 다급하게 나를 흔들며 괜찮냐고 물었다.

하지만 나는 대답할 수 없었다. 누군가 목구멍을 꽉 막아버린 듯, 아무리 애를 써도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엄마는 내 상태를 보더니 얼굴이 하얗게 질려 어디론가 급히 전화를 걸었다.

엄마의 먼 친척 중에 무당 할머니가 계셨다.

상황을 전해 들은 할머니는 내일 아침 당장 아이를 데려오라고 했다.

그날 밤, 엄마는 나를 차에 태우고 무작정 시골로 향했다.

시골집으로 가는 동안에도 엄마는 내게 끊임없이 말을 시켰다.

나는 소리 없는 눈물만 흘리며 엄마와 수화로 대화를 했다.

어릴 적 이모에게 배워두었던 수화가 이런 순간에 쓰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

내 생에 처음 보는, 엄마의 가장 두려움 가득한 얼굴이었다.


다음 날 아침, 무당 할머니의 집으로 향했다.

가기 싫어 버티는 나를 엄마는 무섭게 화를 내며 끌고 갔다.

할머니는 나를 보자마자 얼굴을 험하게 일그러뜨리더니 다짜고짜 방으로 밀어 넣었다.

방 안에는 생전 처음 보는 무구들이 가득했다.

할머니는 엄마에게 한숨 섞인 어조로 말했다.

굿을 할 상황도 아니고 부정을 쳐낼 수도 없지만, 일단 최후의 수단으로 향을 삶은 물을 써보자고.


할머니는 가마솥에 향을 잘라 넣고 물을 끓이고 있으니,

그 끓인 물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씻고 오라고 했다.

욕실로 따라 들어온 엄마가 물의 온도를 맞추더니,

내가 옷을 벗자마자 내 머리 위로 물을 사정없이 부어버렸다.

순간 너무 놀라고 화가 나 나도 모르게 "꺄악!" 하고 소리를 질렀다.

"싫어!"라고 외친 것이 그곳에서의 마지막 기억이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이었다. 엄마는 다 왔으니 더 자라며 담요를 덮어주었다.

다시 잠이 든 순간, 나는 또 그 산길 위에 서 있었다.

할머니는 냉담한 표정으로 내 손을 잡아끌며 산 중턱을 향해 올라갔다.

제발 손을 놓아달라고, 엄마에게 가고 싶다고 애원했지만 할머니는 요지부동이었다.


그때였다. 캄캄한 산속을 뚫고 엄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윤결아! 윤결아! 어디 있어? 가면 안 돼!"

엄마가 무릎을 꿇고 있는 모습과 애타게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그때, 절대 손을 놓지 않겠다던 할머니가 비로소 내 손을 놓아주며 나직이 말했다.

"이제 가라 우리 또 보재"

나는 엄마를 향해 정신없이 달렸다.

"엄마!" 하고 크게 외치는 순간, 현실의 눈이 번쩍 뜨였다.

실제로 나는 잠결에 엄마를 아주 크게 불렀다고 했다.

엄마는 이제 됐다며 나를 꼭 안아주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무당 할머니는 나를 보자마자 그 산 할머니의 존재를 느끼셨다고 했다.

잘못 건드리면 초상이 날 형국이라, 향 끓인 물로 부정을 씻어내게 한 뒤

뒤도 돌아보지 말고 집으로 가라고 신신당부했다는 것이다.


그날 이후로 나는 더 이상 그 할머니 꿈을 꾸지 않는다. 엄마와 나, 그리고 언니.

우리 셋만 알고 있는 이 일은 가끔 화제로 꺼낼 때마다 여전히 서늘한 한기를 몰고 온다.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 그 누가 믿어줄까. 직접 겪은 우리조차 믿기 힘든 일이었는데 말이다.


가끔은, 아주 가끔은 멍하니 궁금해질 때가 있다.

그때 그 할머니는 대체 나를 어디까지 데려가려 했던 걸까.

물가 너머, 산 중턱 너머에서 할머니는 나와 무엇을 하고 싶었던 걸까.


잔인하기도, 무섭기도 했던 그 노파의 손길은 어쩌면 내 생의 어느 대목을 통째로 움켜쥐려 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그 지독한 손길을 끊어낸 것은 결국,

캄캄한 어둠 속에서도 나를 포기하지 않고 불러 세웠던 엄마의 목소리였다는 것을..



-윤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