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ur Paradise, 아마도 멋진 곳이겠지요.

두산인문극장 2019 전시 #1

by 김얼레

‘아마도’와 ‘아파트’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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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ur Paradise, 아마도 멋진 곳이겠지요.> ‘아마도’라는 말은 많은 가능성을 함축한다. 그 말은 마치 영어에서의 ‘or’과도 같다. A or B. A일 수도 있고, B일 수도 있지만, 동시에 A와 B가 아닐 수도 있다. 그래서 그 말은 애매하고 모호해서 답답하기도 하지만 한마디로 설명할 수 없는, 복합적인 것들이 얽혀있는 대상에 대해 이야기하는 데에 어울리는 말이기도 하다.


그러한 관점에서 ‘아마도’라는 말은 지금의 우리가 아파트를 설명하기 위해 사용할 수 있는 가장 적절한 말일 수도 있다. 지난 두 달 동안 두산아트센터에서 진행된 다양한 강연들과 공연들을 보면서 인간의 욕망이 덕지덕지 붙어있는 대상으로써의 아파트도 마주했고, 누군가의 고향과 기억으로써의 아파트도 목격했다. 단순히 삭막한 회색 숲으로 보기에 아파트는 인간의 기억들을 가득 담고 있고, 순수하게 인간이 삶을 살아가는 곳이라고 하기엔 새까만 이해관계들도 많이 묻어있다. 복합적이고 입체적인 관계들을 가득 담고 있는 아파트에 대해서 ‘아마도’라는 표현이 들어간 전시 타이틀이라니. 분명 아파트에 대한 누군가의 생각을 수동적으로 전달 받는 곳이 아니라, 각자 다양한 아파트에 대한 생각들을 띄워볼 수 있는 공간이겠거니 생각했다.


한국전쟁 이후에 꾸준히 진행되어온 무분별한 도시 건설은 어느 지역을 막론하고 오래된 도시 조직들을 파괴하며 비어 있던 땅뙈기 하나 남기지 않고 구옥들을 철거하면서 거대한 아파트 숲을 만들어갔다. 이것은 누구에게나 기존에 경험해 보지 못한 새로우면서도 두려운 변화였을 것이다. 특히 1970-80년대 한국에서 태어난 세대들은 그 변화의 중심에서 유년기를 보냈다. 그리고 이 세대의 많은 예술가들은 이러한 급격한 변화들을 이해하고 소화하기 위해 자신들에게 익수하고 의미 있는 매체를 통해 질문을 던진다. 이번 전시에 참여하는 다섯 작가들은 윌리암 블레이크의 ‘작은 모래알에서 우주를 보라’는 말처럼, ‘아파트’라는 파편에서 우리가 생각해 보지 못했거나 지나쳤던 풍경의 이면을 제시하면서,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도록 한다.

- 전시 설명, 두산아트센터 제공




이용주, <아파트-경(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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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을 들어가자마자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이용주 작가의 <아파트-경(景)>으로, 전시장 전체에 아파트의 단면처럼 생긴 흰 색의 외벽들을 구불구불하게 설치한 작품이다. <아파트-경(景)>은 작품 전체를 한 눈에 담기 어렵고, 그 사이사이에 설치되어 있는 다른 작품들도 가리면서 전시장을 작은 미로처럼 만드는데, 그 거대함과 한 공간을 미로화하는 것이 도시에 우후죽순 솟아있는 고층의 아파트들 같았다.


그러나 그 작품 자체가 아파트에 대한 답답하고 부정적인 이미지를 담고 있는 것은 아닌 듯하다. 흰 색의 깨끗한 외벽과 창문처럼 뚫린 사각형 사이로 들어오는 빛, 그리고 작품의 입체성에 따라 형성되는 그림자가 중첩되면서 오히려 신비로운 느낌을 줬기 때문이다. 또한 작품의 제목에 들어가는 한자 ‘景’ 또한 ‘볕 경’으로, 햇볕을 뜻한다. 작가의 의도를 정확히 알지는 못하지만, 돌이켜보면 나 또한 어느 날에는 사각진 아파트가 아름다워 보일 때가 있었다. 들어오는 빛에 따라서 단면의 색이 달라지고, 해가 지고 뜨는 시간에 따라 그 모습이 완전히 다를 때에는 그곳을 둘러싼 인간의 정치나 사회적인 문제들이 떠오르기보다도 아파트 자체가 작품인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었으니까. 작품에 대해 너무 얕게 생각하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맨 처음 이용주 작가의 작품을 접했을 때, 아파트에 관한 수많은 이론들과 문제들보다도 그곳의 아름다움을 담기 위해 셔터를 눌렀던 예전의 내 모습들이 생각났고, 그 또한 내가 가진 아파트에 대한 이미지 중 하나라고 생각했다.




황문정, <무애착 도시-소실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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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의 중심에는 황문정 작가의 <무애착 도시-소실점>이 있었다. 총 두 개의 작품이 설치되어 있었는데, 잎이 무성한 무늬의 천이 크레인 걸이에 걸려 흘러내리는 듯한 작품이었고, 또 다른 하나는 아파트 단면 무늬의 천에 공기를 주입해서 아파트가 뭉개지고 무너진 느낌을 주는 작품이었다.


작품을 보면서 대단한 의미를 부여하기보다도, 그것이 보여주고 있는 것을 그대로 바라보기로 했다. 전시 팜플렛에는 황문정 작가의 작품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황문정은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는 도시의 생태와 변화의 과정에서 벌어지는 충돌과 낯섦을 나타낸 설치로 개입한다.”


‘나무가 흘러내리다.’ ‘아파트가 뭉개지다.’ 이 문장들은 우리가 일상에서 목격하기 어려운 일들을 표현하고 있다. 나는 이 자체가 빠르게 변화해왔던 지난 시간들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전에 전혀 존재하지 않았던 것들이 대거 등장하고, 이전에 존재했던 것들이 대거 사라지는 경험을 지나치면서, 지금은 일상이 된 존재들이 그 변화의 중심에 있었던 이들에게는 일상이 아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게 ‘이전’이라는 기억이 존재하는 이상, 변화 이후의 상태가 아무리 오래 지속되었다 해도 그것에 대한 이질감을 지우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아파트가 들어선 이후의 변화를 계속해서 지켜본 이들에게 아파트는 여전히 낯설고 다른 존재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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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서 언급한 두 개의 작품 이외에도 조익정 작가의 <아파트 뒷길>, 구지윤 작가의 <감정 소모>, 그리고 김인배 작가의 <무거운 빛은 가볍다 – 기둥> 등 다양한 작품이 모여 있었다. 전시장 규모 자체가 그렇게 크지는 않았지만, ‘아파트’라는 하나의 대주제를 중심으로 각각의 상이한 시각을 담고 있는 작품들을 한 공간에서 볼 수 있다는 것이 좋았다. 뿐만 아니라, 이용주 작가의 거대한 작품을 중심으로 각각의 작품들이 독립된 공간에 존재하면서도 서로 상호작용하는 듯한 디스플레이를 보여줬다. 이러한 어우러짐 속의 독립성은 작품의 전체 주제를 강조하면서도 그 속에 무한히 존재할 수 있는 많은 이들의 생각을 모두 품을 수 있는 이유 중 하나였다고 생각한다.


어떠한 답을 내놓는 것보다도 중요한 것은 어떤 이의 고유한 생각을 이끌어내는 것이라고 믿는다. 그런 의미에서 <Our Paradise, 아마도 멋진 곳이겠지요>는 아파트에 대한 생각을 충분히 자극하는 전시였다고 느꼈다. 아마도 누군가에게 아파트는 파라다이스였을 것이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혼돈과 낯섦 그 자체였을지도 모르겠다. 누군가에게는 '아마도' 그랬을 아파트이지만, 나에게는 아파트가 어떤 존재인지 고민하게 하는 전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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