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실재를 포착하는 손의 활용법
브레송 영화에서의 몸
일반적인 영화에서 인물의 몸은 서사적인 맥락을 나타내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된다. 인물의 전사, 상태, 감정, 상징 따위를 드러내며 그 인물을 하나의 개별자로 만드는 것이다. 그런데 브레송 영화에서의 몸은 매우 상이한 접근법으로 나타난다. 신체의 일부분, 그 중에서도 특히 눈과 손이 세계를 지각하는 독립 주체로 표상된다. 그 밖의 신체부위 혹은 육체 전체가 주체적으로 표현되는 경우도 있지만, 눈은 시선을, 손은 동작을 담지하기 때문에 각각 시선과 시선이 닿는 대상, 동작과 동작이 가해진 대상을 쇼트-역쇼트 구성을 통해 지각 행위의 양상으로 표현하기 쉽다는 이유로 빈도수가 비교적 높다고 생각된다. 물론 여기서의 쇼트-역쇼트는 꼭 일치하지만은 않는다. 오히려 브레송 영화에서의 시선은 종종 그 시선이 닿는 대상과 불일치하며 가공된 세계의 제공이 아니라 불확실성으로 점철된 세계의 체험을 유도한다.
이러한 접근법은 브레송의 영화관 '시네마토그래프'에서 기인한 것으로, 그 뜻은 문학적이며 연극적인 영화라는 의미인 '시네마'와 구별되는 영화이다. 문학적이란 것은 내러티브를 중시한다는 의미이고, 연극적이란 것은 배우의 연기를 중시한다는 의미이다. 즉, '시네마토그래프'는 내러티브와 연기라는 가시적 요소를 단호히 배제하고, 이미지간의 이접(異接)을 통해 비가시적인 실재를 드러내고자 하는 방법론이다. 브레송은 가공되고 독립된 화면 자체에서는 실재를 파악할 수 없고, 이미지간의 관계에서 그것을 포착할 수 있다고 믿은 것 같다.
<돈>에서 '돈'이 갖는 가공할 위력
브레송의 이전 영화들인 <소매치기>와 <사형수 탈출하다>에서는, 각각 소매치기와 탈옥을 위해 도구를 만드는 손동작이 반복적인 익스트림 클로즈업 쇼트로 제시된다. 건조하게 묘사되는 일련의 행위는 사건을 발생시키고 서사적인 흐름을 생성한다. 이미 셋업한 서사의 부산물로써 기능하는 몸이 아니라 행위의 주체로서 세계를 지각하는 몸인 것이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이 손동작들은 본래의 목적-소매치기와 탈옥-을 대전제로 등장한 것이기에 온전히 주체적인 행위라고 보기 어렵다. 즉, 몸이 서사를 스스로 만드는 듯 하지만 실은 이미 설계된 서사를 충실히 구현해내는 상징적 행위의 수단이 되는 것에 불과하다. 반면 <돈>에서의 손은 물건값을 지불하는 목적, 노동료를 지급하는 목적 등으로 돈을 주고 받는 일상적인 행위로 나타난다. 여기에는 맥락을 포함하거나 사건을 발생시킬 의식 따위가 일체 반영되지 않는다.
그러나 <돈>은 이러한 일상적 상황에 위조지폐를 개입시킴으로써 서사를 발단하는 것과 동시에 텍스트를 부여해낸다. 영화가 시작되면 상류층 청소년 '노베르'가 위조지폐를 카메라샵에 제시하고, 가게 사장은 이를 뒤늦게 알아챈 뒤 곧이어 들어오는 주유회사 직원에게 노동 대가로 위조지폐를 건넨다. 이 직원은 처음에 주유를 하는 손만 등장하고, 돈을 받은 뒤에야 얼굴이 등장하는데 그가 바로 주인공 '이본'이다. 신원불명의 누군가에게 위조지폐가 유통되는 상황이 손에서 손으로 돈이 이동하는 쇼트를 통해서 파악될 뿐, 이본이 이 장면 이후부터 줄곧 나올 거란 점은 관객이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이본을 미리 관객에게 인식시킨 후 위조지폐가 그의 손에 들어가는 순서였으면 이후 그에게 발생하는 파국이 순전히 특정한 개별자를 위해 마련된 인상이었겠지만, 불의(不意)의 힘이 익명의 누군가에게 가해진 것이 그 누군가의 파국의 계기로 작용하는 순서이기 때문에 관객이 스스로를 서사에 투영하게 된다.
이본에게 있어서 노동을 했기에 응당 받아야 할 돈을 받은 '주체적인 손'이 가게 사장에게는 위조지폐로 인한 손해를 떠넘길 '대상으로써의 손'이 된다. 행위의 주체가 역설적으로 세계가 내뿜는 영향력의 대상이 되는 구성은, 상기한 시네마토그래프가 추구한 '이미지간의 관계에서 보이지 않는 실재를 포착'하는 것의 훌륭한 성공 사례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돈에 맞서서 스스로를 구원하는 두 가지 방식
이본은 그 위조지폐를 멋모르고 카페에 유통시킨 이후로 다소 비약적인 전개를 통해 투옥된 상태로 돈, 직장, 집, 가족 등 사실상 모든 것을 잃는다. 세상에 대한 적개심을 키우던 그는 출소 직후 호텔에 가서 묻지마 살인을 저지른 뒤 돈을 챙기고, 그 다음엔 길에서 우연히 마주한 노년의 여성을 따라간다. 이 여성은 대가족을 부양하는 성녀처럼 묘사되고, 그녀의 헌신적인 모습에 어느덧 감화되는 듯 보이던 이본은 그러나 결국 가족을 모두 학살하기에 이른다. 우연의 힘에 휩쓸린 그가 스스로 그 힘을 자처한 셈이며, 그 결과로 투옥될 명분을 획득했다고 판단했는지 곧바로 자수한다.
한편 카메라샵에서 이본이 위조지폐를 받을 때 옆에서 지켜보던 직원 '루시앙'의 서브 플롯도 주목할 만하다. 그는 사법 시스템을 초월하려 하며 일당과 함께 가는 행적마다 좀도둑스러운 절도를 저지르고 다니다가 결국 붙잡혀 이본과 같은 교도소에서 마주치고 대화를 나눈다. 이본의 속사정을 꿰고 있는 그가 동반 탈옥을 시켜주겠다며 꼬드기지만, 곧이어 이본이 속한 감방 안 시점에서 루시앙이 홀로 탈옥하려다 붙잡히는 듯한 보이스오버가 제시된다. 외화면으로 처리했기에 정말 붙잡힌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정황상 루시앙이 돈을 극복하려던 시도는 무위로 돌아간 듯 보인다.
이같은 두 인물의 최후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 점은 애시당초 <돈>의 세계관이 상당히 염세적으로 설정되었다는 것이다. 습관적인 손의 행위의 의미를 전복시킴으로써 관객이 영화의 매 순간 쇼트가 바뀔 때마다 반응하도록 유도하는 방법론이 탁월하게 적용된 영화인 것은 자명하지만, 결국 이본과 루시앙의 서사에 방점을 찍는 방식이 앞선 이야기에서 파생된 감정과 상징을 전형적으로 경유한다는 점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결국 브레송이 말하는 영화 속 '보이지 않는 실재'는 감독이 구상했을 어떠한 사유의 편린을 반영하는 것이기에, 내러티브와 배우의 연기만이 지니고 있는 '실재', 혹은 그 풍부한 가시적 요소가 브레송 특유의 기민한 편집 방식과 조응하며 변증법적으로 생성될만한 '또 다른 실재'의 발견 가능성을 생각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