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카마츠 이야기>는 3편의 겐지의 50년대 시대극-<오하루의 일생>, <우게츠 이야기>, <산쇼다유>-과 마찬가지로 시대극이며, 유교 기반 시스템의 폐단에 주인공이 희생당한다는 서사의 틀 또한 유사하다. 앞에서부터 각각의 특징을 열거하면, '주인공이 끝을 모르고 추락하는 플롯', '정서를 담지하는 카메라의 움직임과 쇼트의 지속성', '아이러니를 활용한 역설적 실태의 폭로'이다. <치카마츠 이야기>는 상기한 바들 각각이 비교적 약한 비중을 차지한 채 결합된 영화라고 말할 수 있다. 실은 4편의 영화 모두 그런 식으로 설명할 수는 있지만, 요지는 <치카마츠 이야기>만큼은 별다른 특장점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단점은 아니다. 오히려 본작이야말로 가장 안정적인 얼개로 짜맞춰진 시대극으로서 겐지의 인간관과 사회 시스템에 대한 견지를 적확히 드러낸다는 점에서 그의 대표작으로 칭할 만하다. 안정적이라는 말은 단순한 이야기 구조와 분명한 선악 구도를 일컫는다. 이야기를 간단히 요약하면 성공한 표구상 '이슈운'보다 스무살 가량 어린 아내 '오산'이 동년배 하인 '모헤이'와 금단의 관계를 형성해 결국 처형당하는 결말이다. 물론 양상은 조금 더 복잡하다. 겐지 시대극에서 유달리 대두되는 정서는 '어찌할 수 없음'으로, 두 사람이 처음부터 이슈운을 대놓고 기만한 것이 아니라 말그대로 '어쩔 수 없이' 결합하는 방향으로 상황이 조성된다. 이는 우연의 연속으로 가장해 억지로 내용을 전개시키는 방식이 아니라 인물들에게 달리 선택할만한 옵션이 없는 것처럼 보이게끔 하는 훌륭한 극작술의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발단은 오산이 친정 오빠의 도박 빚을 남편에게 탕감해달라고 부탁해야 하는 상황에서 기인한다. 일전에 혼인할 때 거액의 돈을 받은 바 있어 부탁하지 못하고 전전긍긍하던 와중에, 모헤이가 방법을 제시한다. 결제 대금을 빌미로 이슈운의 명의를 도용해 돈을 잠시만 유용하자는 것. 그러나 곧바로 동료 하인에게 들켜버리고, 주인님에 대한 충절을 지키고자 모헤이는 숨기지 않고 이실직고한다. 근시안적인 인물로 묘사되는 이슈운은 진의를 파악하지 못하고 배신감에 사로잡혀 모헤이를 창고에 가둔다. 그러자 모헤이에게 홀로 연심을 품던 하인 '오타마'가 오랜 기간 동안 이슈운에게 첩 요구와 희롱을 당한 사실을 오산에게 고백한다. 오타마와 방을 서로 바꾸어 오타마의 방에 찾아올 남편을 꾸짖으려던 오산과 몰래 창고를 탈출하려던 모헤이의 동선이 겹쳐지며 두 사람이 부정을 했다는 오해를 받기에 이른다. 하루 차이로 집을 빠져나온 두 사람은 거리에서 마주친 후 발걸음을 같이 한다.
영화의 도입부에서 어느 집안의 사모님과 남자 하인이 부정을 했다는 이유로 동반 처형되고, 가문은 도리를 소홀히 했다는 명목으로 재산을 몰수당하는 사례가 나온다. 엑스트라의 입을 빌려 "남자가 첩을 여럿 거느리는 것은 되면서 왜 여자가 남첩을 만드는 것은 죄가 되냐"라며 작품의 주제 의식을 요약하는 동시에 이후 전개를 암시한 바 있다. 마찬가지로 이를 목격했던 두 사람은 어차피 붙잡혀 불명예스럽게 죽을 바에는 강물에 동반 투신하기로 결심한다. 빠지기 직전, 모헤이가 실은 오산을 오래전부터 사모했다고 고백한다. 그는 전날밤 괴로우니 동침하자던 오산의 청을 거절했던 남자다. 절체절명의 순간에 이르러서야 참아왔던 감정을 밝힌 것이다. 이 고백 전까지 모헤이는 충절의 명분으로만 오산을 돕는 것처럼 보였고, 이미 주종 관계가 희미해진 상황에서도 하루를 더 기다렸기에, 관객 입장에서는 앞서 조성된 상황과 더불어 이 둘이 이어지는 것에 분명한 당위성을 느끼게 된다.
나라에 현 상황을 들키면 패가망신할 처지에 놓인 이슈운은 수하를 보내 두 사람을 추격하고, 이를 피해 모헤이 아버지 집에 당도한 두 사람은 표면상으로 가문을 배신했다고 보여질 수 밖에 없는 모헤이를 괘씸히 여긴 아버지의 밀고로 인해 생이별을 겪는다. 오산은 이슈운에게 송환되고, 모헤이는 관아에 넘겨질 처지가 된다. 옛정으로 아들을 풀어주자마자 모헤이는 오산에게로 달려간다. 이슈운과 친정어머니의 회유에도 아랑곳않던 오산, 그리고 은둔해서 새 삶을 살 수도 있었던 모헤이는 결별 너머의 삶을 거부하고 함께 있기를 선택한다. 결국 수미쌍관의 구조로 도입부의 일이 반복되는데, 말 위에 포박된 채 함께 연행되는 두 사람이 손을 잡고 있으며 오산이 슬며시 웃는 장면이 제시된다. 한편 이슈운 역시 몰락하는 모습을 끝으로 퇴장한다. 극의 초반부 겉보기에 멀쩡히 잘 돌아가던 집안을 생각해보면 그야말로 비약적인 결말에 다달은 셈이다. 남녀를 동등한 존재로 여기지 않는 시스템이 공고히 자리잡은 채 악법으로 백성을 유린하는 것에 대한 비판은 자명하며, 치정 관계 따위로 수십명의 인생이 연결된 한 가문을 풍비박산내는 권력이 얼마나 건강하지 못한 것인지도 눈길이 가는 부분이다.
겐지의 스타일은 롱테이크, 롱쇼트로 대표된다고 알려져 있다. 둘의 결합은 상기한 이야기를 통속극적인 차원에서 관객에게 의미를 충분히 전달하는 방식으로 훌륭히 기능한다. 쇼트가 오래 지속되는 동안 등장인물들끼리 액션과 리액션을 주고 받으며 이전 쇼트의 맥락, 해당 쇼트의 감정, 이후 쇼트의 전개 암시가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쇼트의 단위 수가 적을수록 개별 쇼트의 가치는 상승한다. 또 카메라와 인물 간의 거리가 일정한 간격을 두고 유지될 때 관객은 눈 앞에 펼쳐지는 양상 이면에 자리한 의미를 찾기 시작한다. 이전 장면의 여운이 지속되는 동안 현재 장면이 오버랩되고, 이러한 연결이 유기적으로 이어지며 겐지적 세계의 영속성이 몇 세대를 견뎌도 유지된다.
무한정 반복되는 주인공의 좌절에 피로감을 느끼거나(<오하루의 일생>), 무소불위의 권력에 대한 비판이라는 메세지에 매몰되어 가부장제의 내부적 모순을 지적하는 은은한 화술을 눈치채지 못할 우려가 있는 것(<산쇼다유>)과 달리, 본작은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았기에 관객 입장에서 어렵지 않게 작품의 주제 의식 및 만듦새를 받아들일 수 있다. 오산과 모헤이가 한차례 헤어졌다가 재회하고 결국 처형에 이르는 과정의 낙차가 긴장감을 유지시킨다. 또 <우게츠 이야기>가 네 작품 중 가장 화려한 스타일을 자랑하는 대신 일관성없는 캐릭터, 작위적인 전개가 아쉬운 반면 본작은 그런 지점이 전혀 없다. 결코 현명했다고 말하기는 어려운 오산과 모헤이의 마지막 선택이 작중 행적에 의거한 강렬한 감정과 결부됐다는 점, 그리고 그 원인이 시스템의 폐단에서 기인했다는 점은, 시대가 아무리 좋아져도 잔존할 수 밖에 없는 인간 개인의 한계와 집단의 모순을 꼬집는 겐지 영화의 호소력을 역설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