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에서 주요 인물끼리 조우시킬 때 개연성을 확보하기 위해 보통은 각 인물의 목적지를 미리 설정한다. 그들의 동선이 겹쳐야만 하는 이유가 제시된다는 말이다. 그런데 <아사코 I & II>는 조우하기까지의 과정을 결코 설명하지 않는다. '아사코'와 '바쿠'가 사진전에서 처음 만나는 오프닝, 그리고 '료헤이'가 하필 아사코가 근무하는 카페 옆 회사에 부임해서 둘이 만난다는 설정은 발단 부분이니 차치하더라도, 우선 료헤이의 퇴근길인지 모를 동선상에 오프닝에서와 동일한 고초 시게오의 <셀프 앤 아더스> 사진전 입장을 기다리는 아사코가 놓인 장면. 이 장면 전에 료헤이는 상사에게 꾸중을 듣고 동료에게 하소연하는데, 가령 일반적인 이야기라면 료헤이의 감정적 동기와 아사코의 상황을 매개하여 사진전에 가야만 하는 이유를 억지(로 보이지 않게)로 만들겠지만 본작은 두 장면 사이에 일말의 연관이 없다.
실은 해당 지점부터 영화상에 한 번 등장한 장면은 다시 한 번 반복된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영화는 '왜' 반복이 되는지에 주안을 두지 않고 '어떻게' 반복이 되는지를 다룬다. 료헤이의 시점에서 동일본 대지진이 불현듯 발생하고, 회사에 돌아가려는 동선이 교통마비로 지지부진해지며, 여기에 전차 운행 중지라고 외치거나 길바닥에 맥없이 앉아 흐느끼는 엑스트라들의 잉여가 덧붙는다. 그 동선상에 또 다시 아사코가, 이번엔 마치 기다렸다는 듯 결연한 표정으로 서 있다. 이게 어떻게 가능한 상황인 것일까. 이 물음은 일견 덧없어 보이지만 동일본 대지진의 비현실성에 관한 물음이기도 하다. 사랑과 재난이 공유하는 속성의 은유로 볼 수도 있겠다.
고향 친구 '하루요'가 불쑥 재등장할 때, 그녀와 아사코가 바쿠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데 마침 통창 너머로 '어디에나 있는 듯한' 그의 대형 광고가 보일 때, 그리고 하루요와 아사코가 공원에서 배드민턴을 치는데 대뜸 바쿠가 타 있다는 차가 등장할 때. 지나치게 우연에만 의존한다는 의식보다 단지 그 시간, 그 장소에 그 인물이 배치되었다는 사실을 직시하게 되는 이유는 상기한 것들이 작위성을 애써 감추려는 시도의 실패가 아니라 오히려 대지진으로 말미암아 극단적으로 돌출시킨 결과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무질서한 개입으로 인해 의미를 만들지 못하는 영화도 아닌 것이, 두 번 반복의 규칙이 맥락을 형성하고 함의를 지닌 대화가 향후의 전개를 빌드업한다. 바쿠의 재등장과 아사코가 어떻게 선택할지에 대한 긴장이 주변인들의 반응과 기호에 관한 아사코의 대사로 유지되고, 마침내 레스토랑 씬에서의 양상으로 촉발될 때 완전히 매료되었다.
구구절절 <아사코 I & II>의 외피를 읊어댔으나 진정 눈길이 가는 것은, 감정의 태동을 표현하는 듯한 전자음을 배경으로 터지는 폭죽과 스치는 바람의 슬로우 모션, 익스트림 롱 샷의 추격전에서 비가 그치고 햇빛이 남녀가 뛰어가는 방향으로 점차 드리우는 모습 따위의 것이다. 단순히 시각적으로 아름다운 개념이라기보다 구태여 설명하려 하지 않고 지리한 인과를 점프컷마냥 건너뛰어 보여주는 방법론에 납득이 간다. 또한 센다이에 도착, 드높은 방파제 너머의 바다를 응시하며 거듭난 아사코 II가 오사카에 돌아가는 과정에 걸리는 디제시스적 시간의 소요가 상당히 긴 점에서 하마구치 류스케가 완급 조절에도 능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편 '에이코'가 왕년의 애정을 추억하는 썰은 아들이 지루할 정도로 계속 들었다는 묘사로 하여금 상대가 남편이라고 인식하게 되지만, 극의 후반에 이르러 실은 그 상대가 외간남자라는 일종의 서술 트릭이 제시된다. 단조롭게 반복되는 일상을 다른 각도로 바라봤을 때 의미 부여가 가능하다는 영화의 테마와 관련됨과 동시에, 강의 예측 불가능성을 긍정하는 아사코와 심정적 연대를 이루는 이 부도덕한 고백의 의도적인 배치가 사회적 관점에서 저열해 보이기는 해도 아사코를 상식과 동떨어진 단독자로 보이지 않게끔 한다는 점에서 사족으로 여겨지지 않는다.
료헤이는 아사코에게 "난 아마도 평생 널 못 믿을 거야"라고 말한다. 이 말은 언뜻 보면 손절의 표현이지만 실은 "그럼에도 다시 한 번 믿어볼게"라는 뒷말이 생략된 것이다. 믿을 수 없는 존재와 불안을 껴안고 공존한다는 것. 보편적인 일본인을 표방하는 료헤이에게 어쩌면 아사코와 동일본 대지진은 동의어일 것이다. 흥미로운건 바쿠와 함께 떠나는 아사코를 쫓다가 실패하는 료헤이의 구도가, 료헤이를 아사코의 위치에 놓은 뒤 '마야'를 료헤이의 위치에 놓은 채 변주된 장면이다. 이 전에도 마야가 료헤이를 흠모하는 듯한 대사가 몇 개 있었으나 역학관계를 가시화한 것은 이 장면이 유일하다. 셋, 넷 이상의 인물이 엮이는 이상 일방성보다 상대성이 성립할 것이라는 의미일지, 짐작할 뿐이다.
카라타 에리카의 다른 출연작을 보지 않아 단정하기는 어려우나 경직된 무표정과 일정한 톤의 목소리가 설령 촬영 당시 역량의 한계에 봉착한 결과물이라 하더라도, 표현에 능숙하지 못한 캐릭터의 면모에 부합하기 때문에 적절한 캐스팅으로 보인다. 히가시데 마사히로의 1인 2역 연기 테크닉이 비교적 부각되는 측면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