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형이 회피형을 만나면.

관계 패턴에 눈을 뜨다

by yunhana

남편이 출장을 간 지 6일째 되는 날, 저녁이었다.

평소와 다름없이 간단한 대화를 나눴다.

그날은 뭔가 달랐다. 술기운이 느껴졌다.

“술 마셨어?” 조심스럽게 물었다.

“응.”

그리고는 덧붙였다.

“나 오늘 숙소에 혼자야. 형은 본가에 가고, 동생은 여자친구 만나러 갔어.”

“그럼 지금 혼자야?”

“아니, 지금은 같이 있어. 이거 다 먹고 헤어져서 간다고.”

“여자 친구가 남자 일하는데 이 밤에 놀러 와? 내일 일 하지 않아?”

“응, 내일 일 하지.”

그날은 금요일이었다.

나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남자 일하는 데 방해되게, 내일 일 하는데 얼굴 보러 서울에서 ㅇㅇ까지?’

그 말에 남편은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나도 몰라. 남 일에 관심 없어.”

그리고 서둘러 대화를 끝내려 했다.

뭔가 나는 의아한 느낌이 들었다. 여자의 촉은 정말 무서운 것 같다.

“숙소 들어가서 전화할게.”

그가 그렇게 말하고 끊었지만, 한 시간이 넘도록 전화가 오지 않았다.

불안이 밀려왔다.

몇 통의 전화를 걸어도 받지 않자, 나는 함께 밥을 먹었다던 형에게 전화를 걸었다.

“밥 같이 안 먹었어요.”

다음은 동생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자 친구 와서 퇴근하자마자 나왔어요. 밥 같이 안 먹었어요.”

불안이 깊어지고, 그와 동시에 화가 치밀었다.

다시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지금 어디야?”

“길에 혼자 있어.”

“누구랑 밥 먹은 거야?”

“형이랑 동생.”

“아니야, 내가 통화 다 해 봤어. 둘 다 아니래.”

“너는 내 말을 안 믿고 누구 말을 믿는 거야, 그 형이랑 동생이랑 먹었다고.”

남편은 짜증을 내며 말했다.

“네가 내 말을 믿지 못하니 들어가서 전화할게.”

그리고 전화를 끊었다.

그 후 연락이 끊겼다.

금요일 밤, 나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

토요일 아침까지 기다렸지만 전화는 오지 않았다.

하루 종일 미친 듯 전화를 걸고, 음성을 남기고, 문자를 보냈다.

하지만 아무런 답도 들을 수 없었다.

연락을 멈춰야 하는 걸 알면서도, 멈출 수 없었다.

불안과 분노가 뒤섞인 마음을 쥐어짜듯, 나는 계속 그에게 닿으려 애썼다.


그러면서도 나는 남편이 형과 동생이 거짓말을 했다는 말을 믿으려 애썼다.

‘왜 그들이 나에게 거짓말을 했을까?’

그 답을 찾으려고 머리를 싸매고 고민했다.

그날 하루 종일, 나는 미친 듯이 흔들렸다.

그리고 토요일 저녁,

휴대폰 화면에 한 통의 문자가 떴다.

“거짓말해서 미안해. 지금은 말할 기분이 아니야. 내일 전화할게.”

그 짧은 문자 한 줄이

내 마음을 조금은 가라앉혔지만, 동시에,

결국 그 모든 게 거짓말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나는 남편의 말을 믿고 싶었다.

그래서 '왜 그들이 거짓말을 했을까, 왜 나를 속였을까'

머리를 쥐어뜯으며 생각하고 또 생각했는데...

그 시간들이 너무 억울하고 화가 났다.

문자를 받자마자 바로 통화 버튼을 눌렀다.

하지만 예상대로 그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연결음이 울리고, 곧 여자 목소리가 나오는 음성사서함으로 넘어갔다.

그 목소리가 점점 무섭고 공포스럽게 들려왔다.

내 안의 불안과 분노가 뒤섞여서,

내 마음은 점점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아이들이 있었기에 겨우 정신을 차렸다.

밥을 차려 먹이고, 아이들 챙기느라 마음을 추스르려 애썼다.

견디기 힘든 마음을 달래려, 일요일 아침 아이들과 함께 가까운 카페에 갔다.

빵으로 아이들 아침 겸 점심을 먹이고, 나는 카페라테를 한 모금 마셨다.

그 공간에서 나는 내 일에 몰두하며 마음을 안정시키려 애썼다.

남편이 오늘 전화를 한다고 했다.

그 전화를 받고 대화를 해 보면, 모든 게 풀릴 거라 생각했다.

‘그때까지만 버티자.’

하지만 오후 5시가 다 되어가도록 전화는 오지 않았다.

불안이 다시 몰려오고, 화가 치밀어 올랐다.

나는 또다시 휴대폰을 들고 통화 버튼을 눌렀다.

정말 바보 같은 짓임을 알면서도 멈출 수 없었다.

역시 그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다시 이상했던 첫 통화의 장면이 떠올랐다. 동생의 여자 친구가 서울에서 ㅇㅇ까지 ktx를 타고 온다고 했다. 다음 날 쉬는 날도 아닌데, 밤에 잠깐 놀기 위해서 ㅇㅇ를 왔단 말인가? 토요일에 일한다고 했던 말도 거짓말이 아니었을까? 그런 생각이 들자 온갖 생각들이 소용돌이쳤다. 확인을 해야 했다. 지금 어디에 있는 것인지 나는 확인을 해야 했다.

수치스러워서 죽을 것 같았지만, 아는 동생에게 전화를 걸었다.


고맙게도 그 동생은 전화를 받아주었다. 남편은 작업 중이어서 전화를 받을 수 없다고 한다.

다행이다. 일하는 것은 맞나 보다.

“끝나면 전화 좀 하라고 전해줘요.”


전화는 오지 않았다.

그리고 한 통의 긴 문자 메시지가 왔다.

금요일 저녁 상황을 설명하는 내용이었다.

“지금 감정이 너무 힘들어서 일을 간신히 하고 있다.

별거 없었다. 그냥 설명하기 싫고 힘들어서 거짓말을 했을 뿐이다.

내가 너무 힘드니 시간을 달라.”


‘전화한다고 했잖아. 왜 문자 메시지 하나로 모든 걸 덮으려는 거야?’

화가 치밀었다.

화가 나자 나는 다시 전화에 매달렸다.

마침내 남편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는 별거 아니라며 그냥 덮으라고 했다.

난 담담하게 받으리라 다짐했지만,

그 말에 그 다짐은 무너졌다.

내가 무너지자 남편은 말했다.

“네가 이러니까 내가 전화를 안 하는 거야.”

내 탓을 하려는 듯한 그의 말에,

더 내려갈 곳 없을 것 같이 내려간 내 마음이 또 내려갔다.


“전화하지 마.”

그 말과 함께 남편은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또다시,

그의 '연락두절'의 시간들이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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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형 애착은 사랑받지 못할까 봐 두려워하고, 관계에서 확신을 얻기 위해 끊임없이 확인하려는 경향이 있으며, 거절이나 무관심에 과도하게 민감하게 반응한다.

회피형 애착은 감정 표현과 친밀감에 부담을 느끼고, 거리 두기를 통해 자기 자신을 보호하려는 경향이 있어 갈등이나 불편한 대화를 피한다.

애착의 역설 : 불안형은 "가까워지고 싶다"는 마음으로 다가가지만, 회피형은 "멀어지고 싶다"는 마음으로 대응한다. 결과적으로 서로의 상처를 자극하며 악순환에 빠진다.

회피형은 불편한 대화를 “통제 불가능한 위협”으로 느낀다. 자신의 감정을 직면하는 것도, 상대의 감정을 받아주는 것도 정서적으로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진실을 말하는 것보다, ‘상황 자체를 피하는 것’을 택한다. 그 결과는 거짓말, 회피, 침묵 — 즉 불안형이 가장 견딜 수 없어하는 반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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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각자 서로의 방식으로 서로를 파괴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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