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히 앉아 보는 것이 너무 힘들었던 뮤지컬

뮤지컬 〈스웨그에이지 외쳐, 조선!〉리뷰

by 윤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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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앉아서 관람하는 것이 이만큼 고역인 뮤지컬이 또 있을까. 뮤지컬 〈스웨그에이지 외쳐, 조선!〉을 보고 있으면 입과 손이 근질거려 못 참을 지경이다. 절로 흥겨운 노래와 안무를 당장이라도 따라 하고 싶기 때문이다.


〈스웨그에이지 외쳐, 조선!〉은 ‘시조’가 국가 이념인 상상 속의 조선을 배경으로 진행되는 극이다. 시조를 부르며 삶의 고단함을 이겨내던 백성들은, 시조 활동이 금지된 이후 더 심한 핍박과 억압 속에서 살아간다. 주인공 단과 비밀시조단 골빈당은 백성들에게 자유를 되찾아주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실제 조선 후기, 서민들은 해학과 풍자, 고달픈 삶의 애환을 사설시조에 담아 부르며 목소리를 냈다. 사설시조 가사를 직접 인용하기도 하며, 시조의 나라 조선을 무대로 하는 〈외쳐, 조선!〉은 지배층으로부터 핍박받는 백성들의 한과 흥을 모두 담아낸다. 이 글에서는 보는 이로 하여금 웃고 즐기게 하면서도, 슬픔과 고통도 해학으로 승화하는 민중의 삶에 더욱 뭉클한 감정이 들게 했던 흥에 집중해 살펴보겠다.



흥1. 다채로운 넘버와 춤


해학적인 시조처럼, 이 작품에서는 관객을 웃게 만드는 흥겨운 멜로디의 넘버가 끊임없이 등장한다. 꽹과리, 태평소, 가야금과 같은 국악기 뿐만 아니라 클래식, 밴드 악기까지 조화롭게 어우러진 넘버들은 마치 영화 〈전우치〉의 OST ‘궁중악사’나 국악 밴드 이날치의 ‘범 내려온다’를 들을 때와 같은 쾌감을 선사한다.


전통적인 국악 장단부터 현대적인 EDM이나 레게, 재즈 장르로까지 전개되는 음악은 독특하면서도 익숙한 즐거움을 자아낸다. 특히, 틀에 박힌 시조를 거부하고 자유롭게 노래하는 주인공 단의 시조는 랩으로 표현되는데, 힙합 특유의 리듬감으로 빠르고 낮게 읊조리는 랩은 처음에는 익살스럽게 느껴지지만, 후반부에서는 주인공의 울분을 생생하게 전달하여 극에 더욱 몰입하게 만든다.


신명 나는 넘버에 화려한 안무도 빠질 수 없다. 뮤지컬이 원래 연기와 노래, 춤이 결합된 장르이긴 하지만, 이 작품에서는 특히 고난도의 화려한 춤과 군무가 끊임없이 등장한다. 모르긴 몰라도 주연과 앙상블 가리지 않고 춤을 어지간히 잘 추지 않으면 캐스팅되기 어려울 게 분명하다.


‘이것이 양반놀음’이나 ‘정녕 당연한 일인가’와 같은 넘버에서 단과 골빈당 대여섯 명이 함께 춤추며 노래하는 장면들은 흡사 K-POP 아이돌 무대를 연상시킨다. 골빈당이 팬들 사이에서 조선 아이돌이라고도 불리는 이유다. 또한 백성들이 자유롭게 시조를 부르며 즐기는 것이 주인공 무리의 목표이자 극의 주제인 만큼, 앙상블 배우들이 다 함께 춤추는 장면들도 많다. 중독성 강한 후렴구와 춤이 결합된 무대를 보고 있으면 노래를 따라부르고, 자리에서 일어나 함께 춤을 추고 싶은 충동이 인다. 나와 같은 관객들이 한둘이 아니라, 기획사에서는 이전부터 싱어롱 데이, 댄스어롱 데이 같은 이벤트를 마련해 마치 콘서트나 페스티벌처럼 극을 즐길 수 있도록 만들어놓았다.



흥2. 관객과 적극적으로 호흡하는 극


일반적인 뮤지컬에서 찾아볼 수 없는 싱어롱 데이 이벤트에서도 알 수 있다시피, 〈외쳐, 조선!〉은 관객과 가깝게 호흡하며 진행되는 극이다. 주조연 배우들이 무대에서 내려와 객석 통로를 누비며 관객들에게 부채를 나누어주기도 하고, 수차례 객석에서 등장해 관객들을 놀라게 하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관객은 〈외쳐, 조선!〉의 만백성의 일원이 된다.


‘전국노래자랑’ 오프닝 음악으로 시작되는 ‘조선시조자랑’이 진행될 때 관객은 시조자랑을 구경하러 온 백성이 된다. MC 역할의 ‘엄씨’는 대회를 보러 온 백성을 대하듯 직접적으로 박수와 환호를 유도한다. 동시에 개그를 뽐내는데, 최신 유행하는 밈과 유명한 뮤지컬 넘버를 패러디하며 웃음을 유발한다. 내가 관람한 회차에서는 유노윤호의 ‘Thank U’와 뮤지컬 데스노트의 넘버를 활용한 개그를 선보여 객석에서 큰 웃음이 터졌다.


이외에도 동시대 대중문화를 기민하게 반영해 극 중 코미디 요소를 발전시킨다. 이를테면 재연에서는 조선시조자랑 본선에 나온 팀 중 하나가 삼천궁녀 콘셉트였다면, 이번에는 〈스트릿 우먼 파이터〉를 차용한 콘셉트와 넘버로 변화를 준 것이다. 이처럼 관객에게 보다 허물없이 다가가고 함께 호흡하는 극인 만큼, 재미는 물론 애정까지 느끼게 된다.



흥3. 백성을 비추는 스포트라이트


앞서 말한 것처럼, 〈외쳐, 조선!〉은 여타 뮤지컬에 비해 앙상블의 비중이 높고, 그들에게 스포트라이트를 자주 비추는 편이다. 첫 넘버인 ‘시조의 나라’를 시작으로 ‘놀아보세’, ‘이것이 양반놀음’과 같은 여러 대표 넘버들에서 무대에 함께 등장해 노래를 부르며, 솔로 파트를 맡기도 한다. ‘조선시조자랑’이 진행되는 장면들에서는 두세 명씩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솔로나 듀엣, 트리오로 노래하며 관객들에게 각자 개성과 매력을 뽐낸다. ‘백성들이 자유로운 세상’이라는 극의 주제가 단지 줄거리에 머무르는 게 아니라, 전반적인 구성에까지 반영되어 있는 것이다. 이처럼 일관되게 민중에 초점을 맞추는 〈외쳐, 조선!〉의 메시지에 관객은 쉽게 설득된다. 결국 다 함께 춤추고 노래하는 장면을 넘어 1막과 2막의 막바지에 모든 배우들이 다 같이 객석을 올곧게 바라보며 “외쳐 조선!”이라고 외치는 장면에서 백성들과 온전히 동화된다.


결국 이 작품은 신명 나는 음악과 춤을 매개로 관객과 백성, 우리 모두가 함께 호흡하도록 만든다. 여기에 현대 사회가 겹쳐 보이는 백성들의 고통이 담긴 장면들까지 더해지면, 어느새 가슴이 찡하고 벅차오르는 느낌이 물밀듯이 밀려들고 만다. 한바탕 웃고 들썩이다가도 어느 순간 울컥하게 만드는 한이 담긴 흥, 〈스웨그에이지 외쳐, 조선!〉은 그런 흥으로 가득 찬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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