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이 강할수록 그림자도 짙어진다

뮤지컬 〈마리 퀴리〉 리뷰

by 윤하원
2025 마리퀴리 메인포스터, 제공 라이브(주).jpg




빛나는 것은 아름답다. 그러나 빛이 강할수록 그림자 또한 짙어지기 마련이다. 이 원칙을 무엇보다 선명하게 보여주는 존재가 있으니, 바로 원자번호 88번 원소 ‘라듐’이다.


라듐은 스스로 빛을 내는 원소다. 그래서 이름도 ‘빛살’을 뜻하는 라틴어 ‘radius’에서 왔다. 라듐이 방출하는 방사선은 실로 강력해서 암 세포를 파괴하는 효과도 있었다. 그러나 라듐은 인간이 바라는 대로 암 세포만을 파괴하는 구원의 빛은 아니었다. 정상 세포 또한 무차별적으로 파괴하며 사람들의 생명을 위협했다. 무서우리만치 강한 빛 뒤에는 치명적인 어둠이 도사리고 있었다. 뮤지컬 〈마리 퀴리〉는 바로 이 라듐을 발견한 과학자 마리 퀴리의 빛과 그림자를 무대 위로 소환한다.


과학을 사랑한 마리 퀴리는 여성이 대학에 갈 수 없었던 조국 폴란드를 떠나 프랑스 소르본 대학에 입학한다. 하지만 그곳에서도 마리는 여성이자 약소국 출신 이민자로 끊임없는 편견과 차별에 맞서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학에 대한 열정으로 연구에 몰두한 그녀는 마침내 새로운 원소 폴로늄과 라듐을 발견한다. 이 업적을 인정 받아 여성 최초로 노벨상을 수상하고, 이후 프랑스 소르본 대학 최초의 여성 교수로 임명되기에 이른다. 그녀는 더 많은 사람들이 라듐을 활용하고 발전시킬 수 있도록 라듐 추출 방법에 대한 특허권을 포기하고,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이동식 X선 장비와 함께 전쟁터를 누비며 부상병을 치료하는 등 과학계와 인류를 위한 삶을 살아간다.


이는 고난을 극복해 업적을 이루고 인류에 공헌하는 전형적 영웅 서사 같다. 그러나 뮤지컬 〈마리 퀴리〉는 그녀를 위대한 업적을 이룬 위인이 아니라, 누구나 공감할 수밖에 없는 보편성을 지닌 인물로 그려낸다.


실제로 라듐의 위험성은 마리가 원소를 발견하고 한참 뒤에야 밝혀졌지만, 픽션을 가미한 이 작품은 그 시기를 조금 앞당긴다. 모두가 스스로 빛을 내는 라듐을 찬양하고 마리의 명성은 드높아지던 그때, 라듐에 노출된 공장 직공들이 하나둘 죽어가기 시작한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마리는 고뇌에 빠진다. 라듐의 의학적 효과를 입증하기 전, 그 위해성이 세상에 먼저 알려진다면 앞으로 마리에게 다시는 기회가 없을 게 분명하므로. 온갖 차별을 견디며 가까스로 움켜쥔 빛줄기, 라듐을 잃으면 다시 어둠 속에 남겨질 것이었다. 여기에 연구비를 후원하는 루벤이 라듐 공장 가동을 멈출 테니 우선 의학적 성과를 내는 데 집중하라고 회유하자, 추락에 대한 두려움과 윤리적 책임 사이에서 갈등하던 그녀는 라듐으로 종양을 치료하는 실험에 매달린다.


마리의 명성을 드높인 라듐은 곧 마리의 또 다른 이름이 되었다. 그러므로 라듐의 치명적 결함은 곧 마리 본인의 것이다. 마리는 자신의 이름을 지키기 위해 현실과 타협한다. 인류에 공헌하고자 바라는 사람도 본인의 몰락 앞에서는 흔들릴 수밖에 없다. 우리는 라듐처럼 불안정한 존재이므로.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는 모순을 끌어안고, 끝내 다시 선으로 향하려 애쓰는 마리의 모습에서 오히려 깊은 공감과 애정을 느끼게 된다.


라듐의 그림자는 안느 코발스카로 대표되는 라듐 공장 직공들의 이야기로 나타난다. 극은 라듐의 위해성을 세상에 알린 라듐 걸스의 실제 이야기를 마리 퀴리와 겹쳐놓는다. 당시 라듐은 전 세계적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어 라듐 화장품, 라듐 생수, 치약 등 온갖 제품으로 만들어졌다. 그중 라듐 도료를 칠한 야광 시계도 있었다. 시계 공장에 고용된 10대 소녀들은 붓끝을 핥아 뾰족하게 만들어 세밀한 페인트 작업을 진행했다. 그 과정에서 지속적으로 라듐을 섭취한 소녀들은 잇몸, 치아, 턱뼈가 괴사하거나 암에 걸려 죽어나갔다. 하지만 회사는 문제를 은폐하며 성병인 매독에 걸려 사망한 것이라고 조작했다. 직공들은 건강을 잃고 죽는 와중에 사회적 낙인까지 찍히게 된 것이다. 이들을 보면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산업 재해와 그 피해자들, 그리고 모르쇠로 일관하는 악덕 기업들이 떠오르며 씁쓸해진다. 이처럼 마리 퀴리 개인의 성장 서사를 그리는 것을 넘어, 위인전과 업적에 가려져있던 소수자들의 고통까지 조명한다.


뮤지컬 〈마리 퀴리〉는 고난을 이겨내 빛을 쟁취하며 마무리되는 단순한 영웅담은 아니다. 언제라도 다시 어둠이 닥칠 수 있으며, 빛이 있으면 그림자는 반드시 존재한다는 불편하고도 모순적인 진실을 모두 보여준다. 갈등하는 마리를 통해 평범한 인간의 복잡한 내면을, 안느와 다른 직공들을 통해 평범한 노동자들이 겪는 자본의 폭력성을 비추며 우리 모두를 연결시킨다.




https://www.artinsight.co.kr/news/view.php?no=76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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