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고 있다면 누구나 공감할 이야기

뮤지컬 '몽유도원' 리뷰

by 윤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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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특히 생이별을 당하는 연인의 이야기 앞에서 나는 속수무책으로 눈물이 난다. 그래서 지난 주말, 뮤지컬 〈몽유도원〉을 보는 내내 울 수밖에 없었다.

학창 시절 국어 시간에 한 번쯤 들어봤을지 모른다. 백제의 개루왕이 도미의 아내를 취하기 위해 그의 눈을 멀게 했으나 도미의 아내는 끝내 도망쳐 남편과 다시 만나 객지를 떠돌며 살았다는 이야기. 뮤지컬 〈몽유도원〉은 이 도미 부부 설화를 각색한 최인호의 소설 〈몽유도원도〉를 원작으로 한 작품이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아버지의 암살로 왕좌에 올라 늘 불안과 위협에 시달리던 ‘여경’은 어느 날 꿈에서 본 여인에게 마음을 빼앗긴다. 그는 충직한 신하 ‘향실’에게 그녀를 찾아달라 명하고, 결국 꿈속 여인과 꼭 닮은 ‘아랑’을 찾아낸다. 그러나 그녀는 부족의 지도자 ‘도미’와 이미 혼인한 사이였다. 사랑에 눈이 먼 여경을 위해 향실은 계략을 써 도미와 아랑을 궁궐로 끌고 온다. 끝내 아랑에 대한 사랑을 숨기지 않은 도미에게 분노한 여경은 그의 눈을 멀게 만들어 배에 실어 버린다. 하지만 아랑 또한 일식이 일어난 틈을 타 도망치고, 모든 비극이 자신의 외모 때문이라고 여긴 그녀는 스스로 얼굴에 상처를 낸다. 그 후 운명처럼 재회한 두 사람은 객지를 떠돌며 가난하지만 행복하게 살아간다.


2026 뮤지컬 몽유도원 공연 사진 (유리아, 김성식)_제공 (주)에이콤.jpg

줄거리만 놓고 보면 뻔한 고전 사랑 이야기처럼 느껴질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배우들의 연기와 노래로 꾸며진 무대를 보고 있자면 이만큼 서글픈 이야기도 없다. 사랑하는 이들이 권력자나 불가항력에 의해 이별하게 되는 일은 고전적 러브스토리에만 존재하지 않는다. 한국 근현대사와 오늘날 세계 곳곳에서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 지극히 실재적인 비극이다. 독재나 전쟁에 의해 연인, 가족과 이별하게 되는 일은 백제 시대가 한참 지난 후에도 끊이지 않고 반복되어 왔다.

그래서 연인 뿐 아니라 가족, 친구 등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 관객이라면 누구나 아랑과 도미의 이별에 금세 감정을 이입하게 된다. 비극에 주목한 극의 특성상 아랑과 도미가 사랑을 키워간 과정은 생략되어 있는데, 오히려 그 여백 덕분에 〈몽유도원〉의 이야기는 특정 인물의 서사를 넘어 누구나 몰입할 수 있는 보편적이고 현대적인 비극으로 확장된다. 그래서 나 또한 다른 어떤 뮤지컬을 볼 때보다 많은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다른 콘텐츠보다 촘촘하게 서사를 쌓기 어려운 뮤지컬은 넘버를 통해 관객을 설득해내고 감정을 끌어내야 한다. 특히 분위기가 무거운 극일수록 음악의 역할은 더 중요해지는데, 〈몽유도원〉의 넘버는 그 책임을 충실하게 완수한다.

친숙하면서도 서정적인 선율의 음악은 감정의 흐름을 놓치지 않도록 돕고, 아랑과 도미의 비극에 공감하게 만든다. 서양식 멜로디에 국악적 요소가 더해진 덕분에 더욱 구슬퍼진다. 궁궐로 끌려간 도미와 그를 애타게 기다리는 아랑이 서로를 그리워하며 부르는 듀엣곡 〈그리고 그리며〉와 도미가 아랑과 두 눈을 잃은 후 절규하며 부르는 〈어이해 이러십니까〉는 특히 가슴을 울린다.

배우들의 열연과 열창은 넘버의 설득력을 극대화한다. 아랑 역 유리아 배우는 호소력 짙은 목소리와 압도적인 가창력으로, 도미 역 이충주 배우는 한국적 정서와 어울리는 음색으로 인물들의 비애를 절절하게 표현한다. 또한 여경 역 민우혁 배우는, 극이 진행되는 내내 이해하기 어렵고 분노만 유발하던 여경을 2막의 솔로 넘버에서 압도적인 가창력과 감정 연기를 통해 단번에 납득시킨다.

시각적 연출 또한 인상적이다. 무대 뒤편을 채우는 한 폭의 수묵화 같은 영상 배경과 안개처럼 깔리는 드라이아이스는 작품에 몽환적인 분위기를 더하고, 전통 춤의 움직임을 차용한 앙상블들의 안무 또한 여타 뮤지컬에서 볼 수 없었던 이 작품만의 매력을 선사한다.


2026 뮤지컬 몽유도원 공연 사진 (하윤주, 이충주, 홍륜희 외)_제공 (주)에이콤.jpg

이처럼 뮤지컬 〈몽유도원〉은 몰입도 높은 서사, 감정을 섬세하게 전달하는 넘버, 아름다운 무대 연출, 그리고 이를 완성하는 배우들의 연기까지 고루 어우러져, 감상 후에도 여운이 짙게 남는 작품이다.

공연은 2월 22일까지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오는 4월부터 샤롯데씨어터에서 이어진다. 제작사에서 공개한 넘버 뮤직비디오와 시츠프로브 영상도 있으니 먼저 넘버를 감상해보는 것도 좋겠다. 아마 슬프고 아름다운 음악에 반해 공연장을 찾고 싶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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