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방황하고 있을까?...
방황하는 순간에도 당황하지 않기를, 방황하더라도 힘들어하질 않길
-데미안 중에서-
나에겐 그냥 공부가 필요했다.
19살, 홍대를 간절히 원하는 게 아니었다. 하지만 다른 학교는 생각해보지도 않았다.
그냥 그림을 그리고 그냥 공부를 했다. 힘들지도 않았다. 그냥 했다.
그렇게 합격을 했다.
28살, 교사가 간절히 되고 싶진 않았다.
그냥 공부를 했다. 그땐 공부가 필요했다. 그 시간이 소중했고 집중하고 몰입했었던 그 시간이 행복했다.
1년 반을 공부하고, 임용시험 원서 접수를 하고 그렇게 합격을 했다.
43살, 무얼 해야 할지 모르겠다. 왜 이렇게 의미를 찾아 방황하는지 모르겠다.
미술치료 공부를 시작했다. 교사를 그만두고 싶어졌다. 미술치료사가 되고 싶은 것도 아니었다.
아동미술학원이 하고 싶어졌다. 왜 하고 싶은지를 찾아보는데 마땅한 '왜'가 생각나지 않는다.
그것이 어디로 가는지 누가 알겠는가, 어디서 온 것인지조차 모르는데
-괴테-
답을 찾지 못하거나, 없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그 문제가 어디서 온 것인지 모르기 때문이다. 어디서 온 것인지 아는 사람은 그것이 무엇이든 어디로 가는지도 알 수 있다.
19살, 28살의 나는 공부가 필요했다. 공부를 통해 나를 성장시킬 수 있는 시기였다. 홍대 합격과 임용고시 합격은 한 단계 성장한 결과였다.
가족들에게 교사를 그만두고 다른 일을 하고 싶다고 했을 때 '그렇게 열심히 공부해서 합격했는데 아깝지 않아?'라는 물음에 나는 아깝지 않았다. 나에겐 '교사'라는 타이틀보다는 한 단계 성장한 '나'가 중요했다.
43살, 공부가 필요한가 보다. 한 단계 성장이 필요한가 보다.
'교사'라는 '직업'이 문제의 본질은 아니었다.
나는 공부가 필요하다. 나를 성장시킬 무엇인가가 필요하다. 이 방황은 거기서부터 온 것이다. 거기서부터 온 것이라면 나의 목적지는 미술치료사나 아동미술학원은 아니다.
이 책에 답이 있을 것만 같은 느낌에 도서관에 가 부랴부랴 빌려 왔다.
프롤로그 첫 페이지에 답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