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남부를 조금은 여유 있게 둘러보려고 세비야를 떠나며 렌터카를 빌렸다.
남편은 잔뜩 긴장한 채 난생처음 유럽에서의 운전을 시작했고 세비야시내를 벗어나자 그야말로 평원 위로 쭉 뻗은 도로와 맑은 남부의 하늘이 우리가 낯선 곳에 와 있음을 다시 한번 실감 나게 해 주며 여행의 행복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론다를 가는 단 한 가지 이유를 꼽는다면
'누에보 다리'이다. 누에보란 영어의 NEW와 같은 뜻이라 하니 새로운 다리라는 뜻이지만 1793년에 태어났으니 역사는 결코 짧지 않다.
다만 엘 타호 협곡의 다리 중에서 '누에보'이다.
론다 자체가 해발 750m에 위치한 도시이고 누에보 다리는 협곡을 사이에 두고 구시가지와 신시가지를 연결하는 100여m 높이와 120m 길이의 다리이니 다리 위에서 내려다보는 아래의 모습은 아찔하기만 하였다.
그 옛날 40여 년에 걸쳐 이런 다리를 건설하다가 희생된 사람의 노동이 숭고하게 느껴져 단순한 관광지라기보다는 경이로운 장소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랑하는 사람과 로맨틱한 시간을 보내기 좋은 곳'
헤밍웨이가 론다를 두고 했다는 말이다.
절벽 위의 파라도르호텔은 헤밍웨이가 자주 묵었던 곳이고 그 주변은 헤밍웨이의 산책길로 불리고 있다.
실제 이곳에서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를 집필했다고 하니 론다는 도시 자체로의 특별함에 하나를 더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론다의 투우장을 둘러보지 못하고 구시가지의 아랍식 골목을 감상한 뒤 차가워진 론다의 오후 공기를 느끼고 언제일지 모를 다음에는 하룻밤 묵으며 더 많이 느껴보리라 생각하며 말라가를 향해 출발했다.
말라가의 첫인상은 현대적 건물들로 기억된다.
그동안 여행했던 스페인의 다른 도시들과 다르게 도시 입구는 넓고 높고 밝은 불빛의 건물들로 가득했다.
원래계획은 오후쯤 도착하여 히브랄파로성을 둘러볼 예정이었으나 도착하니 초저녁에 가까워 말라가의 저녁풍경을 먼저 만났다.
겉에서 본모습과 달리 시내안쪽의 모습은 스페인 남부의 관문 도시답게 화려한 번화함과 역사를 간직한 모습이었다.
골목의 식당마다 사람들로 넘쳐나고 구글에 평점이 좋은 곳은 대기 또한 길어서 정말 많은 사람들이 사랑하는 도시임을 알 수 있었다.
말라가는 피카소의 고향이다.
궁전의 하나였던 곳을 미술관으로 만들어 유족이 기증한 작품들을 전시하고 있다.
한국어오디오 가이드가 없어 나중에 찾아볼 요량으로 몇몇 작품을 찍어 왔는데....(열정은 거기까지)
피카소의 연대별 작품을 전시하는 공간에 작업하는 피카소의 모습과 더불어 그의 파트너연인들의 모습도 보이고 소개도 되어있었다.
다른 피카소미술관을 가보지 못해 비교는 할 수 없지만 연대별 작품의 변화도 알 수 있고 무엇보다 피카소고향에 세워진 미술관이니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작은 아이 가는 장난스레 피카소의 작품이 그리기쉽다며 흉내 내어 그려보기도 하였다.
유럽인들이 은퇴 후 살고 싶어 하는 도시인만큼 가족단위의 관광객도 많았고 나이가 어느 정도 있는 부부관광객을 정말 많이 볼 수 있었다.
이번 여행에서 내가 눈여겨보고 부럽기도 했던 장면이 있다.
우리는 나이 들어 손을 잡고 걷는 부부를 보기 쉽지 않은데 그곳의 나이 든 부부들은 하나같이 손을 잡고 걸었다.
젊은 부부가 손을 잡고 걷는 모습보다 나이 든 부부가 서로 의지하며 손 잡고 걷는 게 너무 편안하고 아름다워 보였다.^^
론다와 말라가
두 도시와 연관이 있는 헤밍웨이와 피카소.
분야는 다르지만 두 사람의 공통점을 찾자면 위대한 예술가. 전쟁을 소재로 한 작품, 그리고 여성편력이다.
그리고 생각해 보니 론다의 높은 지형으로 인한 외로움과 쓸쓸함이 헤밍웨이와 어울리고 말라가의 햇빛과 지중해의 푸른 파도와 같은 열정이 피카소에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표적인 지중해도시답게 무언가 세련미를 풍기는 매력을 간직한 도시 말라가도 아쉬움을 뒤로하고 안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