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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을바람 Apr 22. 2022

A형 남자 세 명과 살고 있습니다.

 속이 터지는  저도  A 형 여자입니다.

 우리 가족 4명은 모두 혈액형이 A형이고 나를 제외한 남자 세명은 MBTI도 I로 시작하는 내향형의 사람들이다.

나는 A형이지만 AO타입이라서인지 O형의 기질을 적당히 섞어 놓아서인지  내향의 자아를 숨기고 있어서인지 주위에서 흔히 말하는 A형의 특징을 조금은 덜 나타낸다고나 할까?


속이 터지는 두 달의 시작은 2월 말에 떠난 제주여행이었다.

큰아이와 작은 아이 모두 상급학교로의 진학을 앞두었기에 으쌰 으쌰 하면서 힐링하고자 떠난 2박 3일의 제주여행은 맛있는 거 먹고 여유 있게 즐기면서 잘 흘러가나 싶었다.

천지연 폭포 아래 해변에서 작은 아이가 미끄러지며 짚은 팔을 살짝 삐끗 하지 전까지는....( 사실 심각한 건 아니었다)

남편은 착하고 성실해서 얻는 점수를 어느 순간에 꼭 필요한 센스 있는 말과 행동이 늦어서 몽땅 깎아먹는 스타일이다.

사춘기를 지나고 있지만  사랑만 받은 탓인지 다분히 자기애가 강한 작은 아이는 조금만 다쳐도 세상 힘든 상태가 되어 다른 가족들이 자기만을 위해 주기를 바란다.(나는 또 그걸 귀엽게 봐 주었을 뿐이고)

그런 아이가 다쳤는데 남편은 조금 일찍 호텔로 돌아가 쉬자는 나의 의견은 가뿐히 흘려들으시고 정해 놓은 스케줄대로 큰아이와 사격장에서 낄낄대며 거의 두 시간을 즐기는 거다.( 남편아! 눈치 챙겨.. 우리를 먼저 데려다주던지)

그러는 사이 아이는 진통제와 파스로 응급 처치하고 차에서 2시간이나 자고 있었다.

저녁에 조금 기분과 컨디션이 풀린 아이와 저녁을 먹고 정말 어이없는 사건? 이 생긴 거다.


 제 딴에는 우울을 날려 버리려 해외축구 마니아답게 여행지에서도 실시간 중계를 보고 있는데 남편이 갑자기 리모컨을 뺏어 다른 데로 채널을 바꾸려 하자 그걸 방어하던 아이의 팔이 남편과 겹치며 다시 더 다치고 만 것이다. 남편은 평일에 혼자지내서인지 TV 보는걸 굉장히 좋아하고 특히 축구예능 시간에는 리모콘을 사수한다.

그래서 둘의 유치한 설전이 한바탕 오고 가고 나는 아이에게는 예의 없는 말버릇을 혼내고 남편에게는 상황 파악 못하는 TV중독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아이는 잘못이 아빠로 부터 시작되었다며 말을 들으려 하지 않았다.

그런데 두 남자, 그 시간 이후로 서로 눈도 안 마주치고 말도 안 해서 그다음 여행은 정말

"나 돌아갈래"를 외치고 싶은 시간이었다.

두 사람이 서로 이렇게 말을 안 하는 경우가 처음이 아니었다는 것이 문제다. 남편은 회사가 먼 관계로 주말에만 집에 오는 데 이렇게 서로 냉랭한 분위기가 되면 쉽게 해결되지 않고 2~3 주가 그냥 흘러가 버린다.

감정을 밖으로 표현하기보다는 입을 닫아버리는 방법을 택하는 건 아마 대대 대문자 A형 남자인 영향이 절대적일 것이다.


 나도 한창 예민한 사춘기 시절에는 친구와 토라지고 나면 아예 1년도 말을 안 하는 나쁜 습관이 있었다.

지나고 나니 그 시절의 친구가 없는 것이 그 성격 탓인 거 같아 많이 후회도 되고 대학생활, 사회생활을 거치며 내 내면의 다른 자아가 더 활성화가 되었는지 그런 행동은 스스로 조율하고 밖으로 내 감정을 표현하고 갈등을 조정하려 애쓰는 편이다.

그런데 남편과 결혼하고 나서 문제가 생겨 내가 말을 좀 안 하면 남편도 덩달아 말을 안 하는 거 아닌가?

그래서 결국은 원론적 문제 상황보다 답답하게 말을 안 하는 상황이 더 문제가 되어 부부싸움을 한 적이 꽤 있다.

거의 문제 상황이 없이 생활하고 있지만 언제든지 문제 상황이 생긴다면 남편은 또 입을 닫고 말을 안 할 것이 분명하다. 어떻게 상대방과의 문제를 해결해야하는지가 어렵고 상대방이 차가워지면 자기는 얼어버리기 때문이다.

그런 남편과 내재적 A형인 나의 분신이니 아들들의 기본 성향은 유전이 아니겠는가?



 나는  아이들의 기질을 이해하는 것에서 갈등을 해결해야한다고 생각하는 편인데 남편은 아니었나 보다.

본인 잘못이 아니라고 생각하면 그 주장을 굽히지 않고 엎드려 절 받기식의 사과는 부모에게도 절대 하지 않는

아이의 태도에 잘못이 분명히 있었지만 새로운 상급학교 진학으로 받을 스트레스를 생각해서 잘 달래서 풀자고 했지만 남편과 아이는 거의 두 달이나 서로 입을 닫고 지내다가 요즘에야 서로 겨우 묻는 말에 대답한다.

중간에 낀 큰아이는 서로 조금 중재하다가 제풀에 신경을 꺼버렸다.

결국 가장 속이 터지는 건 나이다. 말 안 하는 두 사람의 속은 어땠는지 모르지만 겉으로는 서로 별 신경 안 쓰는 것처럼 보였다. 아들 말 들어주고, 남편 이해시키느라 진이 빠지는 건 왜 모른단 말인가?

평상시에는 세상 친절하고 친구 같은 아빠, 막냉이 노릇하며 말도 잘하던 아들이 이렇게 두 달이나 데면데면하게 지낼 줄이야.....

간혹 텔레비전에서 서로 몇 년을 말 안 하고 지내는 부모 자식 이야기가 나오면 황당하다했는데 우리라고 그러지 말라는 법은 없겠다는 최악의 생각까지 하게 만들었다.


예전에 나는 내가 가진 A형의 소심함이 싫었다. 그래서 일부러 다른 나를 의식적으로 불러 내었다.

그런데 세 명의 남자가 A이라니....  그것도 대대 대문자 A형 말이다. 정말 맙소사가 아닌가?

하지만 어쩌겠는가?

대대 대문자 A형이어도 그 들과 함께 사랑할 수밖에 없는 나도 의리를 지키고 책임감 강하고 심지 곧은 A형 여자이니 말이다.

세 남자도 내재된 다른 자아를 불러오길 바라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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