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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을바람 Apr 22. 2022

실망으로 끝날뻔한  독서

처음엔 그랬습니다.  최영미 작가님.

  도서관 소설 서가에서 낯익은 작가의 이름을 발견하고 반갑고 놀라웠다.

'최영미'

어라? 이제 소설도 쓰는가 보네... 하면서 발행 연도를 보니 2014년에 이미 초판이 나온 책이고 2020년도에 새로낸 개정판이었다. 

90년대를 보낸 청춘이라면 '서른 잔치는 끝났다.'가 주었던 명료한 메시지와 감각적 시어에 빠졌던 사람이 많았고 나 또한 그중 한 사람이었기에 기대를 가지고 빌려왔다.

처음에 일으켰던 센세이션이 점점 사그라들고 작가는 몇 년 전 문단의 미투 활동의 선두에 서서 원로작가의 어두운 면을 세상이 알게 했고  또 갑자기 호텔 협찬 요구 문제로 자세한 내용을 알길 없는 사람들을 뜨악하게 하기도 했다는 정도가 내가 작가에 대해 알고 있는 근황이었다.

이 소설은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이다.

서울대 80학번 , 입학 후 1년이 지나도록 운동과는 거리가 있던 전형적인 고지식한 자아로 뭉친 문학소녀.

이후 이념서클 활동으로 소위 말하는 의식화가 되고 시위참여로무기정학과 휴학,  운동권 선배와의 너무나 짧지만 고통으로 남은 결혼 생활, 문단 등단 등의 개인사를 '애린'이라는 주인공에 투영시키고 있다.


 책을 읽는 동안 나는 몇 번이나 이 책을 끝까지 읽어야 하는가를 고민했다.

그건 솔직히 말하면 책의 내용을 떠나 작가에 대한 실망 때문이었다.

내가 90년대 작가의 작품을 좋아하고 책을 샀던 이유는 어쩌면 작가가 가졌으리라 생각했던 사고의 깊이를 동경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책에 등장하는 애린 즉 작가는 세상의 힘듦을 표현하는 문구에서 정제되지 못한 표현을 쓰고 있었다.

서울 토박이, 고등학교 이후에는 나아진 가정형편으로 인해 그 당시 여대생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을 누린 것으로 보이는 데......

작가와 나는 5년의 차이가 난다. 나이로도 학번으로도... 많은 것을 공감할 수 있는 60년대생, 80년대 학번이다.

나는 지방의 대학을 나와 동생들과 방 하나, 부엌 하나의 공간에서 4년을 자취하고야 부모의 도움 없이 13평짜리 주공아파트로 옮겨 갈 수 있었다.

자취하던 집은 동생의 고등학교 앞이라 학생들이 세 든 방이 많았고 화장실도 조금 떨어져 있어서 우리는저녁에 급한 용무는 부엌 바닥에서 해결하고 물로 흘려보내고 씻는 걸 감수하며 지냈다. 물론 간단한 샤워도 부엌에서, 손빨래도 부엌에서 해결했다. 정말 열악한 환경이었지만 그렇게 지내는 사람이 많았고 그게 90년대 초반이다.

이 이야기를 장황하게 설명하는 데는 작가의 책의 일부 표현이  정말 많이 불편했기 때문이다.

작가는 대학 휴학 후 방황하던 시기에 대구의 제과점에서 일하며 여러 사람이 같이 숙소 생활을 했다는데 아마도 그 주거 형태가 나의 자취방과 비슷했나 보다. 저녁에 부엌 바닥에 용무를 해결하는 것을 '포로수용소'와 같다고 표현하는 대목에서 나는 정말이지 화가 났다.

 그 전의 내용에서도 이 작가가 나르시시스트가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고 내가 작가에 대해 가졌던 긍정적 이미지가 점점 부정적으로 바뀌어 가는 중이기도 하였다.


 작가에 대한 실망으로 끝날뻔한 독서는 책의 마지막에 가서야 실망을 거둘 수 있었다. 책의 내용보다 에필로그 한장이 그 역할을 했다.


책의 제목이 왜 '청동 정원'일까? 원래는 다른 제목이었다가 수정한 것이라고 한다.

청동과 정원은 반대의 이미지이다.

어둡고 고정되고 딱딱한 이미지의 청동은 오래 변하지 않는다. 작가의 만만치 않았던 젊은 날과  삶과 사회에 대해 고찰하는 작가의 변하지 않는 정신을 나타내는데 적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청동과 정원의 이미지는 상충된다.  견고하고 싶으나 아름답고도 싶은 작가의 바람이 아닐까 하고 스스로 해석해보았다.


 책을 다 읽고 나의 책꽂이에 오랫동안 꽂혀있는 작가의 책들을 다시 읽어 보았다.

의미 없이 읽었던 시 속에 이 소설의 일부가 쓰여있음을 알 수 있어 새삼스러웠다.

소위 운동을 했던 작가가 어려운 삶의 환경을 표현하는 거친 표현을 보며 실망했던 건 작가의 모순을 발견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 또한 나의 갇힌 생각일 것이다.

작가는 누구보다 치열하게 젊음을 살아냈기에 갇힌 청동의 정원에서 벗어날 수 있기를......



최영미 작가님, 실망할 뻔해서 죄송합니다.

앞으로 행복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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